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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wol Feb 13. 2024

요망지게 하쿠다예*

05. 문화생활




“여행으로는 괜찮지만, 제주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산다는 건 어려울 것 같아. 너처럼 여기저기 다니기 좋아하고 공연이나 전시도 보러 다니는데 제주라는 지역은 너무 제약적이지 않니?” 길고 길었던 팬더믹 시대가 드디어 끝을 보이고 그동안 멈춰있던 문화의 시계추가 다시 가동을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 음악을 좋아하고 공연이나 음악 페스티벌을 ‘문화'를 넘어 ‘생활'처럼 하는 오랜 친구가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코로나19 팬더믹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제주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당시에는 공연이나 전시를 비롯해 국내외 여행이 쉽지 않은 시기였으니 문화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감각도 없었고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시대가 드디어 끝을 보이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때쯤 잠들어 있던 공연이나 전시, 여행 상품들도 긴 동면에서 깬 듯 크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문화생활에 조금씩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해외 뮤지션이 제주도로 내한 공연을 올 리 만무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직 페스티벌이 제주도에서 개최될 리도 없다. 유명 전시나 관심이 있는 전시는 대부분 서울의 유명 미술관에서 관람 기한이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마이너 한 예술 영화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가 얼마 없는 제주의 영화관에서 상영할 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 연극이 무엇이며 뮤지컬이 무엇이겠느냐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라고 부르짖는 친구처럼 나는 딱히 한 분야에 무한한 관심을 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취향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깊고 오래 마음을 두는 것이 나의 패턴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해외 뮤지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직 페스티벌도, 영화와 연극, 뮤지컬도 제주에서 즐길 수 없다면 제주에서만 할 수 있는 우물을 찾아 마른 목을 축여 보자


그렇게 찾은 우물은 뮤지엄 투어였다. 전시 관람이 아닌 투어인 이유는 상설 또는 특별전의 전시를 관람하기보다는 뮤지엄이 있는 주변 환경과 그 뮤지엄 건물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었다. 제주 시내권이나 서귀포 시내권에도 도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이 있어 어렵지 않게 전시 관람이 가능하지만, 내가 주로 찾는 곳은 산 중턱이나 바닷가를 끼고 있는 외곽에 있어 어렵게 시간을 내서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중 가장 자주 찾고 좋아하는 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뮤지엄이다. 일방적인 그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10여 년 전, 워킹 홀리데이비자로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함께 살던 룸메이트와 우연히 휴무가 겹쳐 자전거를 끌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익숙한 곳을 지나 새로운 골목을 만나기도 했고, 처음 보는 상점을 둘러보기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띄는 작은 건물을 만났고,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이끌림에 한참을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룸메이트와 대화를 나눴고 그러다 문득 그것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데뷔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었다면 바로 요금을 지불하고 관람했겠지만, 사유지였고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사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더 멋진 모습을 한 내부 공간이 궁금했지만 아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일본 각지를 여행할 때마다 그의 건축물이 있는지 찾아가면서 다녔고, 한국에 돌아와서 국내에도 꽤 많이 있는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즐겼다. 그리고 그 생활이 지금, 제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본태박물관'은 2012년에 개관한 그의 작품으로, 제주를 비롯해 한국의 전통 공예품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인 백남준, 쿠사마 야요이 등의 현대적인 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조용한 산 중턱의 한 마을에 거대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뮤지엄은, 단순히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을 넘어 자연과의 조화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나뉘어있는 여러 전시관을 도보로 이동하며 때로는 신발을 벗고 전시를 관람해야 하고, 불특정다수와 작품을 관람하다가도 오롯이 혼자 또는 일행과 관람하는 작품을 만나기도 하며 해가 쨍한 날과 흐린 날, 비 오는 날에 따라 주변 풍경이 달라져 매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뒤로하고 가장 마지막에 관람하게 되는 전통 공예품의 전시관을 제일 좋아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보는 부분이다. 내려가는 계단의 초입부터 한눈에 꽉 차게 들어오는 다양한 소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혹여나 계단에서 구르지는 않을지 주위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나오면 전시관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우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석탑의 자태가 끝까지 시선을 끌어당긴다


관광으로 방문해서 관람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이 보통이겠지만,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카페 본태 이용도 추천한다. 커피 외에 간단한 식사도 판매하고 있는데 비싸지 않은 가격에 식사와 카페 타임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은 서비스


다양한 전시도, 공연도 없고 영화나 뮤지컬, 연극에 대한 선택권은 없지만 오늘도 나는 요망지게* 발견한 한 우물을 깊고 깊게 파낸다




* 요망지게 하쿠다예 : ‘야무지게 하겠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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