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wol Feb 13. 2024

맛꿀마! 문화생활!

05. 문화생활




별의별 소리 다섯 번째 챕터 주제는 드디어 <문화생활>이다. 드디어,라는 게 기다렸던 주제라는 건 아니고 반대로 별 할 말이 없단 이야기다. 서울에 살면 뭐가 좋아?라는 질문이 훅 들어올 때 외려 답을 골몰하는 건 주로 나다. 내가 음, 오, 아...를  연발하면 상대가 대신 답을 해준다. 즐길 거리 많지 않아? 문화생활하기 딱 좋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꽉 들어맞는 답도 아닌 것 같다. 문화생활이란 게, 내 여가 시간을 투자해서 좋아하고 흥미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고, 직접 경험해 현장감을 흡수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라면 이 주도적 경험의 저변엔 어느 정도 계획적 인간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든 덕력을 실현시킬 의지와 의지를 발동시킬 행동력이 추가로 또 붙어야 하는데… 서울살이 N 년 차에 그 의지와 행동력이란 게 이제 거의 0에 수렴된 나로서는...


그런데 또, 의지력과 행동력 파워게이지가 자꾸 줄어드는 것 같긴 하지만 소셜 미디어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전시 소식이 보이면 눈이 반짝, 심장이 두근대는 건 여전하다. 하트만 찍고, 책갈피로 저장만 해두고 있어서 문제지. 해서, 이번에 소개할 <문화생활>은 의지나 투지를 불태우지 않아도 접근성이 꽤 괜찮은 데다 공간 보는 재미도 엄청나고, 매번 바뀌는 전시는 몹시 흥미로운! 그런 곳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어디냐하면 서울역! 그냥 서울역 아니고 옛 서울역사 원형을 복원해 복합문화공간으로 2011년 개관한 <문화역서울 284>다(여기서 잠깐 큐티상식! <문화역서울 284>의 ‘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 번호로, 역사와 예술경험이 한데 어우러지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한다). 서울역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오른쪽에 위치한 옥색 돔이 상징적인 곳. 바로 구 서울역사다. 테마를 정해 전시가 기획되는데(인스타로 전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 그 주제가 매번 흥미롭다


내가 처음 경험했던 전시는 2018년 개최된 <커피사회>였다. <커피사회>를 시작으로 <호텔사회>까지 연달아 이어졌는데 특히 <호텔사회>는 1880년대 개항과 함께 시작된 우리나라 ‘호텔’을 시작으로 전시장 곳곳을 실제 호텔처럼 꾸며 생동감을 높였더랬다.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었는데 그 이유는 전시장 곳곳을 옛 호텔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때 그' 복식으로 차려 입고, 지나치는 관람객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그들의 일을 수행하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사는 현대인이지만, 전시된 공간과 기물을 사용했던 1800-1900년대의 과거로 돌아간 생경한 느낌이 전시를 더 흥미롭게 해 줬다


<문화역서울 284>에서 기획한 모든 전시를 관람한 것은 아니지만, 봤던 전시 중 가장 좋았던 전시를 꼽으라면 <프리츠한센 150주년>이다. 1872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리빙 브랜드 프리츠한센의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는데 세 번 방문할 정도로 좋았다. 구 서울역사 곳곳과 기가 막히게 매치해 배치한 프리츠한센 가구들은 황홀했다. 특히 2층에 기획된 <프리츠한센>의 다큐멘터리가 압권이었다. 어두운 구 서울역사 안에서 프리츠한센의 세븐체어에 앉아서 보는 프리츠한센의 스토리 16분... 160분이어도 가만 앉아서 봤을 것 같다. 침묵의 공공칠빵도 아니고 관람객도 있었는데 사위가 무척 조용해서 영상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문화역서울 284>가 기획하는 다양한 전시와, 그 전시 주제가 무엇이든 구 서울역사와 어우러지는 맛이 단연 묘미다. 서울역을 지나다 홀홀히 들어갔다 묵직하게 나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료 전시관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서울에서 나도 즐기고 너도 즐길, 서울에 놀러 오는 친구들에게 전시 주제가 무엇이든 자신 있게 추천할 코스!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고 뭐가 됐든 지쳐버리는 바람에 주말엔 누워있는 게 최고긴 한데, 주말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일어나 나를 단정히 하고 씩씩하게 걸어서 <문화역서울 284> 앞에 서기만 하면 된다.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혹여 전시가 재미없더라도, 전시와 별개로 내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계속 참방질하는 이색적인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구 서울역사를 천천히 거닐며 느끼는 그 맛! 그 맛이 아주 맛꿀마! <문화역서울 284>에서 2024년 첫 전시로 <오늘전통>을 개최한다고 하니 서울역을 스치든, 서울역을 지나든, 서울역에 당도하든 들어가 보시라. 게다가 무료니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꽤 괜찮은 갓성비 문화생활이 아닐까!







이전 09화 꼬닥꼬닥 걸으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