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스데이의 탄생

by 민쌤


스스로 배우는 힘을 기르는 날, 수스데이의 탄생



교육 현장에서 가장 자주 느끼는 질문은 이것이다.
“아이들은 왜 공부를 힘들어할까?”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방법의 부재’에 가깝다. 초등학생들은 공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리듬으로 이어가야 하는지조차 아직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하루 50분의 학원 수업 안에서 문제 풀이, 채점, 설명까지 모두 끝내야 하는 구조는 ‘배움의 과정’보다 ‘효율’에만 초점을 맞추게 만들고, 그 결과 아이들은 공부를 ‘따라가기 벅찬 일’로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나는 오래 고민했다. 교육은 결과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배움의 방식을 길러주는 일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설명만 들으며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학습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탐색하고 시도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깊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고민의 결실이 바로 ‘수스데이’다. 수스데이는 ‘수요일엔 공부하는 날’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일정표의 한 칸이 아니다.


이 시간은 “학습자 중심 교육”을 실천하는 장이며,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이 주도권을 갖는 특별한 실험 공간이다. 국어가 약한 아이는 국어를 선택하고, 수학이 미흡한 아이는 수학을 고르며, 방향을 찾지 못한 아이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무엇이든 좋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경험을 통한 자기 결정 학습"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해보는 순간, 학습은 ‘지시받는 일’에서 ‘내가 만드는 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자율학습의 첫 번째 문이다. 스스로 하는 경험은 적고 느리지만, 깊게 스며든다.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 패턴을 관찰하고, 무엇이 어려운지, 어떤 방식이 편한지 탐색하며 ‘메타인지의 기초’를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또한 수스데이는 작은 학습 공동체의 역할을 할 것이다.


서로의 공부 방법을 나누며 “학습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배움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협력적 성장의 장이 되길 바란다.


물론 모든 아이가 이를 반길 수는 없다. 새로운 시도에는 늘 혼란과 저항이 따른다. 하지만 교육은 때로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더 나은 방향’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시작이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배움은 본래 시행착오 속에서 자란다는 것을 교육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몇 번 하다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바란다.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단순한 ‘공부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배움을 일구는 자기 삶의 첫 연습이 되기를. 성인이 되어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힘, 다시 자기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시간이 되기를.


교육자 장 피아제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수스데이가 바로 그 시작점이 되어, 아이들이 스스로의 배움을 창조하는 존재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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