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준후 독감 예방접종을 맞혔다. 언제 맞혀야 되나 고민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어제 학교도 일찍 마치고 센터수업도 없는 날이라 마음 단단히 먹고 소아과로 갔다.
준후는 병원에 가는 걸 극도로 거부한다. 아프지 않다고 구슬려 보지만 배에 청진기를 대는 것도 기겁을 한다. 의사가 청진기를 대기 전에 먼저 준후 발이 선생님 정강이를 찰 때가 많아 나는 다리를 차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 청진기도 무서워하는데 주사는 말 다했다. 예방주사 맞으러 가야 된다고 장난감 주사기를 팔에 갖다 대려는 순간 작년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기억이 났는지 준후는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애가 어릴 때야 나나 남편이 붙잡고 어찌 진료를 보고 주사를 맞힐 수 있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힘도 세지니 나와 간호사 몇 분이 달라붙어야 겨우 치료받을 수 있었다. 얘도 병원 가는 게 싫겠지만 붙잡아야 되는 나도 죽을 맛이다. 병원만 갔다 오면 준후나 나나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그렇다고 아픈 애를 병원에 안 데리고 갈 수 없으니 병원에 갈 때마다 대단한 결의를 다지고 들어간다.
주사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려니 준후보다 조그만 아이들이 들어가 아무 소리 없이 주사를 맞고 나왔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었지만 무서움과 아픔을 잘 참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신기했다.
“이준후, 들어오세요!”
드디어 준후 차례가 됐고 주사실에 들어가자 그제야 상황파악이 됐는지 준후는 울먹거리며 나가려고 했다.
나는 미리 시뮬레이션한 대로 준후 한쪽 소매를 미리 벗겨놓고 내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준후를 내 다리 안으로 넣은 뒤 다리를 꼬아 아이를 결박시켰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준후를 엎드리게 해 움직이지 않게 했다. 확실히 작년보다 덩치도 더 커지고 힘도 세져 벌써 내 겨드랑이며 등에 땀이 쫙 났다. 준후가 울고 버둥거려 애먹었지만 그래도 간호사 선생님과 힘을 합세해 주사 맞히기에 성공했다.
준후는 주사실뿐만 아니라 병원 대기실까지 울릴 정도로 아주 크게 울었고 계속 “스티커, 스티커!”하며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는 뽀로로 반창고를 달라는 소린 줄 알고 반창고를 더 줬지만 준후는 더 크게 “스티커!”하며 울부짖었다. 아마 주사 맞은 부위에 붙인 반창고를 떼 달라는 말 같았지만 붙이고 있어야 되니 나는 준후를 달래며 주사실로 나왔다. 주사실 앞이며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쳐다봤고 어떤 아이는 준후의 “스티커!”하는 소리를 따라 말했다.
그걸 들으니 문득 예전에 소아과에서 어떤 아이가 준후 말투를 따라한 게 생각이 났다. 준후는 자연스럽게 말을 배운 게 아니라서 말투가 어눌하고 특이한데 그 아이는 그게 재밌었는지 준후가 말할 때마다 그걸 따라 했다. 그때 준후는 몸무게 재는 기계 앞에서 그거 무섭다고 버둥거려 나도 진땀을 빼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 아이의 소리가 내 귀에 콱 꽂혔다. 그리고 그걸 말리는 그 엄마의 목소리도, 그걸 구경하는 다른 엄마들의 눈초리도 온몸에 꽉 꽂혔다. 그때는 그게 너무 속상해서 병원에서 도망치듯 나와 한참을 울었다. 머리로는 아이가 뭘 알아서 따라 했겠나 싶었지만 가슴으로는 준후를 놀리는 그 아이가 너무너무 미웠다. 그리고 나를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드는 준후도 너무너무 미웠다.
그런데 어제는 그 소리를 들어도 별로 타격감이 없었다. 물론 신경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냥 그쪽을 한번 흘겨보고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나도 어쩌면 그때 예방접종을 맞았는지 모른다. 주차장 쪽으로 가면서도 준후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그런 우리를 사람들은 쳐다봤지만 이젠 대수롭지 않았다.
예전에는 준후의 목소리, 행동에 사람들이 주목하면 그게 그렇게 부끄럽고 창피해 얼른 가만히 있으라고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손으로 입을 막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아예 아무렇지 않다 까지는 아니다. 여전히 준후가 사람들 앞에서 그러면 뒷골이 쭈뼛쭈뼛 서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무뎌졌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어차피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지나친다. '저게 당신들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구경 재밌나요?' 하며 응수한답시고 나도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볼 때도 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좀 뻔뻔해지자고 주문을 건다. 다른 아이들은 길에서 소리 질러도 괜찮고 우리 아이는 소리 지르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딨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는 준후의 행동을 어느 정도 허용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준후가 세상에게 표현하는 방식이니까.
아이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거나 걸려도 많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맞듯이 나도 이런 소소한 경험들을 따끔하게 맞으며 면역력을 키우고 있다. 여전히 준후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많이 아프진 않다. 앞으로 다가올 고난, 불안한 미래에 당당히 맞설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오늘도 예방접종 맞으러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덧. 준후도 병원에 대한 면역력을 빨리 키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