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돌봄의 무게

by 은하육수

얼마 전 할머니의 생신이었다. 생신축하 겸 주말에 친정에 내려가려고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엄마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요즘 정신이 더 없어. 오지 마."

나는 할머니 생신인데 왜 못 가게 하냐고, 엄마는 너까지 왜 성가시게 구냐며 서로 투닥거렸다.


할머니는 몇 년 전 치매판정을 받으셨다. 처음엔 경도인지장애였다가 점점 증상이 심해졌다. 원래 귀도 어두우신데다 치매까지 겹치니 혼자만의 세계와 기억 속에 허우적거릴 때가 많았다. 할머니들과 어울려 옷구경하러 다니고 손녀의 가방을 탐내하던 소녀 같던 할머니는 이제 들리지 않으면 열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닫고 주간보호센터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올해 설날에 있었던 일이다. 다 같이 식사 준비를 하는데 엄마는 따로 쟁반에 밥과 반찬을 담고 있었다. 누구 밥상이냐고 물으니 할머니 거란다.

"왜 따로 차려?"

"자리도 없고 할머니 이제 혼자 밥 먹는 게 편하시대."

엄마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손자, 손녀들과 증손자까지 옹기종기 다 모였는데 혼자 방에 티비 앞에서 식사하시게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알고 보니 이렇게 할머니 밥상만 따로 차려드린 게 오래되었단다. 아무리 귀가 어두우셔도,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이렇게 가족들이 다 모인 날에는 그래도 밥은 같이 먹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


"평소엔 그렇게 드셨어도 이런 날에는 같이 먹어야지, 따로 차리는 게 어딨어? 할머니가 혼자 먹는 게 편한 게 아니라 엄마가 편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결국 날 선 말이 튀어나왔고 주걱으로 밥을 퍼던 엄마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니? 나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니?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

엄마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동안 모진 시댁살이에 대한 앙갚음과 이 나이 때까지 시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짜증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기어이 식탁에 할머니 밥상을 차렸고 결국 엄마가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통화할 때면 항상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소연했다. 얼마 전에는 도둑년 취급까지 받아 할머니와 대판 싸웠다고 했다. 치매환자와 함께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난 엄마가 징징거린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 돌보는 것도 힘든데 엄마의 넋두리까지 들으니 감정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듣다 못한 나는 꼭 나한테 그런 소리 해야겠냐고 말했더니 엄마가 그랬다.

"넌 그래도 자식이니까 참고 돌볼 수 있잖아. 엄마는 남이니까 더 힘들지."

엄마가 보기엔 내 돌봄의 무게가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나는 나의 무게를 가볍게 보는 엄마가 미워서, 엄마는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 딸이 서운해서 한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가 내 돌봄의 무게를 모르듯 나도 엄마의 돌봄의 무게가 어떤지 가늠할 수 없다. 막연히 힘들겠다는 생각뿐이지 구체적으로 그들의 일상이 어떤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도 돌봄을 하고 있지만 돌봄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성인군자들도 돌봄 노동을 하면 과연 계속 성인군자스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군가의 은밀한 곳까지 뒤처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고 돌봄을 대행해 주는 곳도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책임은 보호자, 가족에게 달려있다. 만약 돌봄을 대행해 주는 곳에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죄책감은 언제나 보호자가 짊어지고 손가락질과 질책을 받는 사람도 최종 보호자인 가족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국가에서 치매 환자를 돌봐줘도 존재하는 이상 돌봄의 추는 분명히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아버지를 어깨에 둘러메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오면서 준성은 몇 번이고 이대로 저 시멘트 벽에 아버지의 머리를 박아 짓이기는 상상을 했다. 머리에 피가 흐르는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먹으로 턱을 갈기고, 쓰러진 아버지의 배를 발로 차 완전히 숨통을 끊어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문미순) 중에서


엄마도 이런 상상을 했을까. 할머니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는 상상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걸까. 한 번씩 ‘너희 할머니 없으면...’ 가정을 붙일 때는 듣기 불편해 자리를 피했다. 고모는 달인 약을 엎어버린 치매 시어머니가 하도 미워 뺨을 때렸다가 문득 자식과 눈이 마주쳤다. 돌봄은 가족을 더 잔인하고 악질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돌봄의 무게가 어떤지 자세히 파악하지도 않고 그저 못됐다고,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냐고 비난했다.


미워하고 원망하다 나 자신까지도 미워하게 될 것 같아. -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문미순) 중에서

결국 돌봄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고 파탄에 이르게 한다. 뉴스에서, 우리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문득 엄마가 자신까지 미워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하루 종일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아마 나도 반쯤 정신파탄자가 되지 않을까.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되고 의미 없는 단어들이 내 귀에 박히고 그들의 행동에 정신이 메말라 갈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는 어쩔 수 없다, 원래 이 병이 이렇다 생각이 들어도 마음은 점점 할머니에게 독화살이 날아갈 것이다. 내가 이 나이 먹어서까지 끝나지 않는 돌봄을 한다는 건 엄마로서도 참 열불 나고 스트레스일 것이다. 엄마가 더 이상 미치지 않고 할머니에게 손찌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고 여겨야 하나 이런 서글픈 생각까지 든다.


시대가 변하고 의학기술이 발전하고 인류의 생이 늘어나면서 돌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 운명을 맞닥뜨려야 된다면 최소한 돌봄 가족이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게 정신적으로 지지해 줘야 된다. 국가와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돌봄을 구축하고 더불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돌봄의 추가 엄마에게만 쏠리지 않게 엄마의 속내를 들어주고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와 바깥바람이라도 쐬며 기분을 맞춰줘야겠다. 그동안 친정에 가면 일부러 할머니한테는 애교 부리고 엄마한테는 할머니한테 못되게 군다고 툴툴거리며 엄마 화를 돋웠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


잘 못하지만 이번에 친정 내려가면 엄마에게 팔짱 끼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줘야겠다.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어. 힘들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여자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