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당의 탄생 1

큰 공을 세워서 두 번이나 철십자 훈장을 받다

by 꿈많은 미소년

어두운 가을. 1918년 11월 10일 일요일,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깊은 증오와 좌절로부터 이 세기의 가장 극악무도한 악행이라고 스스로 불렀던 것을 경험했다. 한 목사가 베를린의 북동쪽에 있는 포메라니아의 한 마을인 파제발크의 군 병원에 있던 부상병에게 믿을 수 없는 뉴스를 가지고 왔다. 히틀러는 이프르 근처에서 한 달 전에 영국군의 화생방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고, 그 탓에 그 곳의 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회복하던 참이었다.


그 일요일 아침, 목사가 부상병들에게 통지하기를. 카이저는 황제의 제위에서 퇴위하였으며, 네덜란드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 전날 베를린에서는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다음 날인 11월 11일에 프랑스의 콩피에뉴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독일 제국은 전쟁에서 패했다. 독일은 승리한 연합국의 자비 아래 놓인 것이다. 목사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히틀러는 그 때 상황을 회상하면서 말했다.

"내 눈앞의 모든 것이 다시 암흑이 되었다. 내가 입원해 있던 병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어 가면서 비틀거려서 돌아갔다. 가서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웠고, 불타는 듯한 머리를 이불과 베개에 파 묻었다. 모든 것이 헛된 일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희생과 궁핌했던 세월들이 헛된 일이었다.. 죽음의 공포가 우리의 심장에서 매달려 있던 그 여러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이것들이 헛된 것이었다.. 이미 죽어간 이백 만 명의 죽음이 헛된 것이었다.. 그들이 고작 이러한 결과를 위해서 죽어갔던 것인가? 이러한 모든 일이 고작 저 빌어먹을 범죄자 일당이 손을 들어 우리 조국을 덮치도록 하려고 있어났더란 말인가?"


히틀러가 자신의 어머니의 무덤에 서 있었던 그 때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의하면, 무너져서 울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수백 만의 다른 독일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후에도 영원히 그러했듯, 히틀러는 독일이 전장에서 패하고 전쟁에서 졌다라고 하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했다.


다른 모든 독일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는 용감하고 용기 가득한 군인이었다. 이후에 히틀러가 몇몇 정치적 반대자들로부터 전투에서 검쟁이였다고 비난 받았지만, 공정함을 위해서 말해 두자면, 히틀러의 기록을 보았을 때 그러한 혐의를 받을 만한 어떤 증거도 없었다. 제 16 바이에른 예비 보병 연대의 1중대 소속의 정령병으로서, 히틀러는 가까스로 석 달이 될까말까한 훈련을 마친 후에 1914년 10월 말이 되어갈 무렵, 전선에 도착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속한 부대는 독일이 해협으로 진격하는 것을 영국이 저지했던 첫번 째 이프르 전투에서 나흘 동안 치열하게 싸워서 심각한 피해를 본 상태였다. 포프라는 이름의 재단사인, 뮌헨의 집주인에게 히틀러가 써 보낸 편지에 따르면, 히틀러의 연대는 나흘 간의 전투 후에 3,500 명의 병력이 600 명으로 줄어 있었다. 서른 명의 장교들만 생존하였으며, 네 개의 중대는 해체해야만 했다.


전쟁 동안 히틀러는 두 번 부상을 당했고, 첫 번째 부상은 1916년 10월 7일에 솜므 전투였는데, 거기서 히틀러는 다리에 총을 맞았다. 독일에서 장기간의 입원 생활을 한 후에 히틀러는 리스트 연대 - 창설할 때의 연대장 이름을 딴 연대였다 - 에 1917년 3월에 복귀했고, 하사로 승진해서, 그해 여름 동안 아라스 전투와 세 번째의 이프르 전투에서 싸웠다. 히틀러사 소속된 연대는 1918년 봄과 여름에 독일의 마지막 총공세 동안 가장 치열한 싸움 속에 있었다. 10월 13일의 밤에 히틀러는 마지막 이프르 전투 동안 워웍의 언덕 남쪽에서 영국군이 감행한 대규모 화생방 공격을 당했다.


"가스 공격을 받고 눈이 불타는 것같이 되어서 휘청거렸다. 그것이 내가 전쟁에서의 마지막 전투 경험이었다. 몇 시간 후, 내 눈은 빛나면서 타고 있는 석탄이 되었고, 내 주변은 모두 검은 색이 되었다."


히틀러는 전쟁 중 보여준 용감함으로 두 번 훈장을 받았다. 1914년 12월에 철십자 훈장 이등장을 받았고, 1918년 8월에는 철심자훈장 일등장을 받았다. 그런데 이 일등장은 구 제국 육군에서는 일개 병사에게는 거의 수여 되지 않는 것이었다. 히틀러와 함께 복무했던 한 전우는 히틀러가 한 손으로 열 다섯 명의 영국인을 포로로 잡은 것에 대해 모두가 탐내는 훈장을 수여 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이는 내용은 맞지는 그건 영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었다고 증언했다. 리스트 연대의 공식 기록에는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실려 있지 않다.


연대의 기록에서는 훈장을 수여 받은 많은 연대원들의 개인적인 개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히틀러 하사가 철십자 훈장 일등장을 수여받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히틀러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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