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당의 시작 2

히틀러 웅변가가 되다

by 꿈많은 미소년

히틀러가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자신의 여정을 시작할 때 뮌헨에는 이렇게 풍요로운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1918년 11월 말에 뮌헨에 돌아왔을 때, 히틀러는 자신이 속했던 대대가 "병사 집회"라는 것의 손아귀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히틀러에게 이것은 매우 역겨운 일이었기에, "가능한 빨리 그리고 즉시 그것을 나갈 것을" 결심했다. 히틀러는 그해 겨울을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있는 트라우슈타인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경비 업무를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봄이 되어서 다시 뮌헨에 돌아왔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자신이 좌파 정부에 대한 "불신임"에 이르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을 데리고 가려 찾아왔던 세 명의 "악당들"에게 자신의 카빈총을 들고 겨누는 대단한 위업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정권이 쓰러진 직후에 히틀러는 자신이 "거의 정치적인 첫번 째의 활동" 이라고 규정한 일을 시작했다. 이것은 뮌헨에서 아주 짧았던 소비에트 정권에 책임을 공유했던 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제 2 보병 연대에 의해 설립된 청문 위원회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이 시기에 히틀러가 했던 활동은 명백하게 육군이 자신을 계속 고용하는 일에 더 도움을 주는 결과를 이끌었다. 히틀러는 육군 군구 사령부에 있는 정치부의 언론 담당국에서 한 자리에 배치되었다. 독일 육군은 그것의 전통과는 배치되지만, 이제는 정치 영역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특히 바이에른에서는 더 했다. 결국 바이에른에서 육군은 자신이 입맛에 맞는 정부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육군의 보수적인 관점에서 더 나아가서, 병사들에게 "정치 강좌"의 수업을 제공했고, 그 중 한 강좌에서 히틀러는 수업에 열심히 참석하는 모범적인 생도였다. 히틀러 자신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는 강의 도중에 누군가가 유태인에 대해 좋은 의견을 말하자, 거기에 자신이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반유태주의 내용으로 장광설을 늘어놓자 이를 통해 히틀러의 반유태주의 성향을 파악한 상관들은 명백하게 매우 기뻐했고, 곧 히틀러는 빌둥스오피치에 라는 이름의 교육 장교로서 뮌헨의 연대로 전보되었다.

이 장교직의 주요 임무는 위험한 사상들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평화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으로서, 이 부분에서 육군은 자신이 봉사하겠다고 선서한 민주공화국에서 가진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 잘 알 수가 있었다.


히틀러에게 이것은 중요한 휴식기였고, 자신이 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던 정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냈다고 처음 인지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웅변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전제는, 히틀러가 항상 유지했던 대로, 성공적인 정치가의 자질이었다.


"바로 즉시, 나는 더 큰 규모의 청중들 앞에서 말을 할 기회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내가 항상 그것을 알지 않고서 순수한 감정에서 상상해왔던 것이 이제 확증되었다. 바로 나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이 발견에 히틀러는 대단히 기뻐했다. 비록 그렇게까지 놀랄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히틀레에게는 흡족한 것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혹시라도 앞 줄에서 들려오는 잡담 소리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가 영구적으로 약해질 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제 히틀러는 자신의 목소리를 "최소한 작은 소 회의실의 모든 구석에서도" 들릴 수 있도록 충분히 회복되었다. 이것은 히틀러가 쉽게 자기 자신을 독일에서 가장 효과적인 연설가로 만들 재능의 시작이었다. 마법과도 같은 힘으로, 라디오 방송을 차지하게 된 후에는ㄴ 자신의 목소리로 수백 만명의 마음을 흔들게 될 것이었다.


1919년 9월의 어느 날, 히틀러는 육군 정치부로부터 명령을 받았다. 명령의 내용은 뮌헨에 있는 작은 정치 그룹을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이 그룹은 자신들을 독일 노동자 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육군은 노동자들의 정당을 의심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정당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이전 단계의 정당들이기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히틀러의 얘기에 따르면 이런 정당의 이름은 자신에게 "완전히 미지의" 것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자신이 조사하도록 배정된 정당의 회합에서 연설을 하기로 일정이 잡힌 자들 가운데 한 명은 최소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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