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마지막 여행을 남겨 놓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이 땅에서 위대했던 삶을 살았던 믿음의 거장들을 우린 잠시 후 만나러 갈 것이다.
거장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갔던 사람들이다. 당신은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배우고 익히게 되면 당신도 이 시대의 거장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무엇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당신은 그들을 만나 깊이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 이 여행에서 처음 만날 분은 초대교회의 일군이었던 빌립이다. 그는 그의 멈추지 않는 발걸음으로 주의 나라를 세워나간 분이다. 동방의 의인이며 완전했던 사람 욥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발가벗긴 몸으로 이웃나라의 국경을 넘었던 요셉은 그 후로 십삼 년이 지난 후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다. 그도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만날 사람이다.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라고 주님이 높였던 세례요한도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브라함, 다니엘, 바울과 실라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흔들리는 그들을 만나러 어서 길을 떠나자.
당신에게 무한한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32일
인생에 있어 가장 강력한 자산은 성실이다
_ ‘홀연히’일어나는 역사엔 ‘날마다’흘리는 땀이 베여있었다.
이 세상 교회의 모체가 되었던 인류 최초의 교회는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교회였다.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예수는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여 그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갔다. 그 후 다시 그 하늘로부터 내려 온 성령을 만난 그 제자들은 변화되어 깜작 놀랄만한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데 그 초대교회는 그들로 인해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 세계 중심이었던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시작한 그 초대교회는 날마다의 놀라운 부흥을 통해 삼백년도 채 되지 않은 세월동안 그 로마제국마저 기독교로 물들어 놓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역사는 추운 겨울 온실 안에서 딸기가 자라고 고추가 열리듯 그렇게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피의 역사, 죽음의 역사
변방 마을이었던 갈릴리 어부 몇 사람과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전직 세리와 어디 내 놓을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몇몇 남자들과 여인네들로부터 시작된 그 초대교회는 삽시간에 수도 예루살렘을 흔들어 놓았다. 그들로 통해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과 능력들로 인해 병든 자가 그 병에서 놓임 받고 귀신들이 소리치며 떠나는가하면 하루에도 삼천 명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기도 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재산을 공유하고 그것들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었다. 그들은 깨달은 진리를 즉시 생각으로 옮기는 말과 행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살았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던 기득권자들은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에 너무나도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스데반이 순교하다
당시 그 초대교회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해져 큰 기적과 능력을 백성들에게 베풀었다.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그에게로 와서 논쟁을 벌였지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그를 능히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던 그를 결국 사람들은 돌로 쳐서 죽였다.
집을 잃고 정든 고향을 빼앗기고
스데반의 순교 사건은 초대 교회에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박해하는 자들은 이를 계기로 교회를 목조르기 시작했고 집마다 들어가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옥에다 넘겼다.
그리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정처 없는 길을 떠나게 되었다.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만이 목숨을 담보하고 예루살렘에 남았고 그 외의 수천수만의 사람들을 집을 버리고 고향을 등지고 가슴속의 진리와 신앙의 순결을 사수하려하여 유리하는 자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집과 고향을 앗아갔지만 그들은 결코 행복을 잃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찬양했고 그들 속에서 용솟음치는 복음을 소리쳐 외쳤다. 그들이 머무는 곳마다 그들의 기쁨을 전했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생명을 전했다.
그들 중에 빌립이 있었다
빌립은 스데반과 함께 같은 날 교회의 지도자로 뽑힌 사람이었다. 그도 집을 잃고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에게서 우린 슬픔의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여러 마을을 지나며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곳은 기쁨의 땅이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러왔다가 돌아가는 에티오피아 재정 장관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필립을 만나고 돌아갔던 그를 통해 에티오피아는 기독교를 믿는 나라가 되었다.
나는 전날 나의 선교지였던 모스크바에서 에티오피아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나 그들 나라의 기독교 역사가 바로 그 빌립을 만났던 그 사람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서술해 놓은 사도행전에서 빌립의 이야기는 그가 고향을 등지고 복음을 전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다 가이사랴라는 도시에 정착한 것을 끝으로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울이란 이름의 핍박자
초대교회를 박해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사울’이다. 그만큼 그는 열렬히 교회를 박해했다. 스데반을 죽이고 초대교인들을 옥에다 가두는 일에 그는 정열을 쏟았다. 그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었고 출세한 정치인이었고 또한 종교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빗나간 열정을 하나님은 보고만 계시지 않았다.
사울에게조차 손을 내민 예수
그가 박해의 줄을 더더욱 팽팽히 당기며 사람들을 잡아들이려 다메섹을 향해 달리고 있었을 때 하늘의 예수는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의 항복을 받아냈다. 삽시간에 사울은 핍박자에서 박해받는 전도자로 변하고 말았다. 그는 그의 무지했던 자신의 지난 행동을 사죄하듯 그는 그가 핍박했던 예수라는 이름을 위해 목숨 걸고 전도자의 길을 달렸다. 그의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었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자신의 구원자를 만났던 바울은 줄기차게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당시의 세계를 몇 바퀴나 돌면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냈다. 물론 전도자로서 마땅한 핍박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전날 무지했던 자신이 행했던 박해보다 더한 박해를 받으며 전날 그가 몰라서 행했던 핍박보다 더한 핍박을 몸으로 받으며 그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며 순교자보다 더 진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사역 말기에 세상을 돌아다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가이사랴를 잠시 방문한다.
가이사랴에서 빌립을 만나다
삼십 여년이 지난 그때 적들에 의해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있었던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빌립은 만난다. 삼십 년 전 유랑하는 전도자로 떠돌다 가이사랴에 정착한 빌립은 그때까지 그 가이사랴에서 살고 있었다.
그 세월동안 빌립은 결혼을 했고 세 딸을 낳아 신앙으로 잘 양육한 아버지가 되어 전날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을 맞았다.
그날 빌립의 집에서 만난 그들의 감회는 어떠했을 까.
빌립은 삼십 년을 하루 같이 살았다
삼십 여 년 전 교회가 당한 총체적인 핍박을 피해 길을 나섰던 전도자 빌립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빌립은 그 후 가이사랴에 머물렀다. 그것으로 사도행전의 기록자에게서 멀리 떠나있었던 빌립은 아무도 보는 이 없어도 그는 자신의 땅에서 전도자로 살았다. 누구하나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며 그 땅에서 ‘큰 바위 얼굴’로 살았던 것이다.
전날의 핍박자가 회심하여 돌아와 교회의 스타가 되어 세계를 누비고 있을 때에도 전도자 빌립은 소리 없이 자신이 서있는 땅에서 성자로 살았던 것이다.
빌립의 도시
빌립이 그 땅에서 살았으므로 가이사랴는 복 받은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빌립이 무릎 꿇은 그 땅을 마귀는 함부로 넘겨다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빌립이 깨어있는 그 땅에서 구원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삼십년을 하루 같이 살았던 빌립이 그 땅에 있어 가이사랴는 축복의 땅이었음을 나는 믿는다.
날마다의 피와 땀이 ‘홀연히’ 역사를 만든다
‘홀연히’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갑작스럽고도 돌연히 뭔가가 이루어질 때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그 ‘홀연히’와 ‘날마다’라는 단어는 반대편에 서있는 말들 같지만 그 둘은 아주 가까이 붙어있는 개념이다. ‘날마다’의 노력이 없이 ‘홀연히’일어나는 역사는 불가능하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술해놓은 사도행전엔 ‘홀연히’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온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2),”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9:3).”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10:30),”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12:7).”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16:26).”
위에서 보면 알겠지만 ‘홀연히’라는 단어가 포함된 위의 사건들은 모두다 사람이 주체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그런데‘날마다’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에서 여덟 번 나온다.
이 여덟 번 나오는 구절을 살펴보면 이 ‘날마다’라는 단어는 두 구절을 제외하고는 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들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행 3: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행 16:5).”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행 17:17),”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행 19:9),”
날마다 행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고 홀연히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홀연히’일어나는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날마다’땀 흘리는 사람의 몫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결국은 놀라운 역사를 만드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옳은 일을 위해 날마다 열심히 행할 때 그 일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날마다’를 위해
‘날마다’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당신이 날마다 하고 있는 가운데 가치로운 일들을 적어라. 그리고 그것을 신념을 가지고 날마다 반복하라. 그리고 그 <날마다의 리스트>에 더 많은 날마다의 일로 채워가라.
나의 큰 아들 필립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래의 아내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 그는 또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키가 자라도록 하루에 네 번씩 날마다 기도한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주신 복을 받고 평생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도록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
‘날마다’하는 옳은 일이 당신을 위대하게 만들고 ‘날마다’하는 불의한 일이 당신을 악의 구렁텅이로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