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늑한 서재 Feb 15. 2022

엉덩이로 이름쓰기가 아니라 글쓰기

-'지금 쓰고 싶은 걸 쓰고 싶다'는 작지만 큰 소망에 대해

일주일에 서너 편, 편당 만 사 천자의 글을 씁니다. 유튜브 용이고요. 초반부터 청취자 이탈을 막기 위한 '재미'는 필수요소입니다.  


채널이 다져놓은 기반도 있지만 원고는 원고대로 '재미' '호기심' '감동' (혹은 놀람, 사이다 등등)을 갖춰야 하는데요


써야 할 양도 많고 여러가지 신경쓸 게 많지만 글쓰기에 있어서 1타 2피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쓰고 또 쓰고, 덧붙이고 또 살을 붙이고를 반복합니다. 보통 한 편 마무리하는데 9~10번 정도 원고를 만지는 것 같아요.  


전 동시에 2~3편을 씁니다. 제가 지루한 걸 정말 못 참거든요.  A편의 승 부분을 쓰다가, 쉬고 B편의 전 부분을 쓰다가 쉰 다음에 C편의 초안을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원고를 돌리면서 일해요. (갑자기 적금 풍차 돌리기가 생각나네요.)


산만한 것 같지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뼈대가 얼추 서게 됩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붙였는데 나중에 봐도 크게 덜어낼 것은 없고 '처음 생각이 서툴지만 맞는구나~'라며 원고를 완성해 나가요.


일단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니 뭐라도 덧붙이는 건 좋은거죠. 나중에 빼는 건 일도 아니고요. 일단 만들어놓은 생각에서 가지를 치거나 수정합니다. 그러니까 뭐라도 써야 일이 진행된다는 얘깁니다.


#흐렸던 캐릭터를 진하고 풍성하게. 


제 작업은 종잇장처럼 얇았던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처음, 설정은 30대 여자. 혹은 40대 남자 이렇게 단편적입니다. 여기에 딸려온 정보가 있어요. 가족관계, 직업, 처음에 일어난 사건, 후에 일어날 사건을 참고해 납작했던 인물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말투, 직업, 성격, 평소의 가치관 같은 것들을 집어넣는 거죠.


그런데 일관성이 필요합니다. 변화에는 반드시 계기가 있어야 하고요. 내레이션보다는 대사로 캐릭터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설명 같지 않게 설명하는 게 포인트예요. 그렇게 대사를 쓰고(치고!), 사건을 대하는 캐릭터의 마음을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풍성해지죠.


# 찰진 대사를 머릿속에 써보며


전 대사 쓰는 게 참 재미있어요. 드라마 볼 때 습관이 있는데 대사가 찰진 드라마를 볼 때, 들으면서 그걸 문자로 떠올립니다. 인기가 많은 드라마를 유튜브로라도 꼭 챙겨보는데요. 그때마다 대사를 주목해서 듣는 편이에요.


지금 쓰는 원고는 연배 있으신 분들이 타깃이라 김수현, 김정수, 임성한 작가님의 대사를 한참 유심히 듣고 참고했죠. 전원일기, 인어아가씨, 청춘의 덫. 그런 드라마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한 때 드라마 작가를 꿈꿨기 때문에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을 많이 봤던 것도 도움이 됐고요. 웹소설을 쓸 때도 대사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전 스토리에 문제가 있었으면 있었지(ㅜㅜ) 대사는 쓰면서 즐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원고를 쓰며 중얼중얼거려요. 이건 마감할 때 특히 심해지는데 공정률 80% 정도 가까워지면 원고를 쓰면서 내레이션과 대사를 읽어나가며 고칩니다. 그럴 때면 애들이 한 번씩 물어봐요. "엄마, 뭘 그렇게 말하는 거야?" 매번 물어보는 걸 보면 그런 제 모습이 신기하거나 이상한가 봐요.


대학 때부터 창작에 관심이 많아서 문창과 수업을 학기마다 들었는데요. 그때 소설과 희곡을 써서 합평하면서 대사에 대한 공부,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전 소설보다 희곡 쓰는 걸 좋아했는데 정말 대사가 한가득인 희곡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가 스물셋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지금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문창과 친구들한테 실컷 까이고 난 후라 교수님의 칭찬이 더 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죠. 그 희곡을 다듬어 무대에 올릴 날이 오긴 올까요?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 


브런치를 시작하고 여러 글을 봅니다. 다들 여러 상황에서 글을 꾸준히 올리고 계셔서 자극이 많이 됩니다. 저는 사실 요새 좀 힘이 드네요.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서요. 사실 그건 핑계가 아니라 현실이고,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건데 필요 이상 자책하는 것일 수 있겠죠. 체력 문제일 수도 있고요.


더 나은 조건이었다면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의 나는 지금 쓰고 싶은 글과는 아예 다른 걸 쓰고 싶어 하겠죠.


다른 분들의 열정을 보며 배우는 게 많습니다. 브런치는 확실히 쓰기와 읽기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책 리뷰 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에세이는 또 어떻고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런 '쓰기의 장'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켜보니 브런치 측에서 글로 수익을 내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기회로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화요일, 벌써 내일이 수요일이네요. 지금 제 원고의 공정률은 30%입니다.  @






이전 09화 괄호(     )의 시간이 필요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