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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Jan 27. 2022

괄호(     )의 시간이 필요해

-프리랜서 작가의 일하는 습관


§괄호      

문장부호의 하나. 수식이나 문장 등에서 어느 부분을 다른 부분과 구별하거나 강조하기 위하여 그 앞뒤에 치는 기호로 묶음표라고 하며 기호는 (), { }, , 〔 〕, [ ], 「 」, (()), 《 》, 〚〛, 〖 〗, 『 』 등이 있다.

[parentheses, 括弧, かっこ]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괄호는 단어 자체가 예쁘다. 발음할 때 특별한 기분이 들어서 더 좋다. 기호를 보니 동그란 것, 물결, 각진 것, 조각처럼 떨어져 있는 것, 겹쳐진 것 등 모양도 다양하고 귀엽다.     


나의 하루에는 늘 괄호의 시간이 존재한다. 특히 집에서는 더 그렇다. 방에 틀어박혀 일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짬짬이’나 ‘틈틈이’ 집안일을 한다.      


비질을 하거나 (청소기보다 빗자루 사용을 좋아한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이들에게 학원 시간을 묻고, 어지러운 거실을 치운다. 몸은 넓지도 않은 집을 바쁘게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쓰던 글에 닿아있다.      


아까의 대사가 괜찮았는지, 스토리에서 빠진 건 없는지, 전개가 괜찮은지  되짚어본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괄호의 시간을 갖고 다시 의자에 앉으면 뭔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고 집안은 쾌적해졌다. 다시 일을 하면 된다. 괄호를 닫으면 일이 잘 된다.      


마감 요일은 하필 일요일이라서 (방학이라 요샌 평일도 주말과 다름없다.) 주말에는 ‘일-집안일-일-집안일-일-집안일-일’ 이런 패턴으로 하루가 지나간다. 가족들도 이런 내 패턴에 익숙해진 듯하다. 그러려니 하고 남편은 오전에 잠깐 애들을 챙기고는 당구장에 간다. 애들은 애들대로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집에서 놀다가도 배드민턴을 치러 나가거나 하면서 자기들만의 괄호의 시간을 갖는 듯 하다.


특히 막내는 중간중간 나를 찾아와 무릎 위에 앉는다. 댕댕이처럼 볼을 부비고 뭐하는 지 다 알면서 '엄마 뭐해?'라고 물으면서 모니터를 지그시 바라본다. 가끔은 (막장) 스토리의 대사까지 읽는다. ^^;; 이런 나와의 스킨십이 아이에게는 또 괄호의 시간.




괄호의 시간 ‘집안일’ 카테고리에는 식사 준비가 들어간다.      


주부경력 14년 차, 이제 싱크대 앞이 두렵지 않다. 지겹고 하기 싫을 때는 있다. 그럴 때는 배달앱 찬스, 아니면 후딱 라면 끓이기.   

   

솔직히 아이들 어릴 때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인간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고 계획을 잔뜩 세워놓고는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패의 경험 속에 시들어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철이 들며? 착각은 깨졌고 '한 번에 하나씩'의 마인드로 뭐든 해 나간다. 대신 몸을 좀 빨리 놀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과 집안일을 병행할 약간의 여유, 요령을 얻었달까. 이것도 다 둘째가 어느 정도 큰 다음의 이야기다. 이제 막 열 살을 넘은 녀석은 수시로 내 무릎 위에 앉아 괄호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자기는 엄연히 십대라며 '틴에이져'라는 단어를 로봇처럼 반복한다.    ^^




여기서 책 한 권 소개. 『예술하는 습관』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Daily Rituals: Women at Work   

  

창작을 하는 여성 작가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각자의 일하는 방식을 소개한 책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아이가 있고, 살림을 해야 하는 작가들의 일화가 흥미롭게 읽혔다.


 

메이슨 커리 지음 /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출판사


다양한 상황에 처한 예술가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고, 어떻게 창작활동을 했는지 작가 한 명당 2~3페이지 정도로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술술 읽히고 무겁지 않다. 아래는 목차의 일부.


/쓰는 사람들의 집필 습관

/루틴을 지키는 예술가의 엄격한 하루

/아름답고 지독한 글쓰기의 감옥

/여자들은 대체 어떻게 해냈을까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그냥 쓸 것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무계획의 자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


9TO6 로 일정한 루틴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영감이 충만해져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미친 듯이 몰아쓰는 타입도 있다. 일하는 방식, 장소, 영감을 풀어내는 방식, 사소한 습관에 따라 작업방식이 나뉜다.



몇 부분 발췌 『예술하는 습관』


미란다 줄라이 / 산책이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

…"아이를 갖자마자 자기관리 올림픽에라도 출전하는 것 같았죠. 그러니까 '이제 몸 좀 풀어볼까! 하루에 45분씩 쓰면서 소설 한 권을 완성할 수 있을지 알아보자고!'하는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사실 줄라이는 아이들을 출산해 세 살이 될 때까지 키우는 동안 데뷔 소설 『최초의 나쁜 남자』를 쓰기 시작해서 완성했다. "아이를 보모에게 30분 동안 맡겨놓고 제 방에 가서 아무 글이나 막 썼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간이 저에게 정말 필요했네요." 줄라이가 말했다. …


매기 햄블링

… 햄블링은 매일 아침 5시에 '낙관주의에 가득 젖은 채로'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고 나서 차 한잔을 마시고 곧장 스튜디오로 향한다. 하지만 스튜디오에 들어가자마자 낙관주의가 시들기 시작한다. "햄릿이 그랬듯이 곧장 불안에 잠식당하기 시작하죠. 의혹은 영원한 제 동반자예요. …


도로시 파커 / 어느 게으른 작가의 마감 날

… 『베니티 페어』와『뉴요커』에서 높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데다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가가 됐음에도 파커는 글을 쓰기 싫어했고, 마감에 맞춰 기사를 보내지도 못했다. … 파커는 편집자들만큼이나 자신의 집필 습관을 싫어했지만 고칠 수가 없었다. 한때 한 인터뷰 기자한테서 재미로 무엇을 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파커는 "글쓰기가 아닌 건 다 재미있어요."라고 대답했다. ...


유명 작가들도 게으름을 피우고 마감 직전에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쓰기 자체가 싫어 고통받았다고 생각하면 묘하게 위로가 된다. ^^;

아래는 나의 로망.


조앤 조나스 / 영감은 일상에서 얻는 것

... 선국적인 비디오 및 퍼포먼서 예술가 조나스는 1974년부터 임대한 맨해튼의 소호 아파트에 살면서 일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일정대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대개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푸들 오주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그러고 나서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아파트로 돌아가서는 일을 시작하고, 거의 하루 종일 일을 계속하는데 종종 음악을 틀어놓는다. … 조나스는 그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중략-

조나스는 창의성이 막히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영감을 얻는다. 예컨대 공원을 걷다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갔다가, 혹은 새로운 장소를 방문했다가 영감이 떠오른다. … 조나스는 영감이란 것이 특히 소중하거나 비범한 것이 아닐고 생각한다. "조사하며 뭔가에 관심을 갖는 것과 영감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요" ...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괄호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잘 쉬는 것은 그 자체로 일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혼자라면 괄호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걸 다 똑같이 쓰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진실에 위로받으며 난 오늘도 '한 번에 하나씩' 그러나 좀 바쁘게 해내며 하루를 채워간다.


슬슬 괄호의 시간을 닫아볼까?

무시무시한 일요일, 마감이 다가오고 있다. 정말이지 설 연휴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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