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지고 이어질까. 처음 그를 만난 것은 10년 전 경영대학원의 수업 시간이었다. 야간 대학원이라는 것이 학위 취득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사회적 인맥을 쌓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입학 후 동기생들 대부분 열심히 술자리에 참석해 서로를 알아갔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는 술자리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었다. 조용하고 별 말이 없는 그를 알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렸다.
우연히 뒷자리에 앉은 그는 쉬는 시간에 플래너에 열심히 깨알같이 무엇을 적고 있었다. 플래너 작성법을 서울 가서 교육을 받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계획을 세우고 메모하고 있다 한다. 그가 작성한 플래너를 보면 빼곡하게 꼼꼼히 잘 정리되어 빈틈없이 생활하고 있음이 엿보였다. 쓰다 말고를 번갈아 하는 내 플래너와 비교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빈틈이 없어 보였고 자기 주관이 확실한 강한 인상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는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대표였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7년 IMF 때부터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사업을 한다 했다. 벤츠 SUV를 타고 다니고 저녁에 공부를 할 정도면 사업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여겨졌다. 공장을 갔을 때 디자인 회사와 같은 외관과 도서관 같은 분위기의 사무실이 여느 공장과 달라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지기에 신뢰가 있어야 거래가 쉽게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상대를 알고 신뢰를 쌓는 방법이 술자리다. 같이 술을 먹으며 상대를 파악하기도 하고 자신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여 사업 기회를 얻기도 한다. 술을 먹지 않는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런 기회를 얻으며 사업을 해왔는지 궁금했다.
그는 성실하게 제품가격과 품질로 진심 어린 대응으로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했다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결같은 자세로 성실하게 사업을 하다 보니 거래처에서 알아서 사업 연락이 온다 했다. 성실함이 못하는 술자리를 대신해 영업을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하고 반듯한 사업 마인드를 가진 그가 나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때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 사업장을 이전하려고 한다 했다. 지금보다 더 넓은 땅에 공장을 새로 짓고 기업을 키워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매출보다 훨씬 많은 부채가 발생하는 사업계획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부정적인 의견을 주었지만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저금리의 시대에 투자 조건이 좋아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많은 것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의 의견은 지나가는 메아리였다.
그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랐지만 나 역시 직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부서장에서 무보직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갑작스러운 신분의 변화에 큰 충격을 받았고 심한 스트레스로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50년 이상 믿었던 신에 대한 거부감도 일어났다. 그런 나에게 그는 잊지 않고 찾아와 밥을 사주고 격려해 주었다. 신앙적으로 흔들리고 고민하는 나를 보고 자신의 교회로 오라며 초정하기도 했다.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흔들림은 성당이나 교회 모두 탐탁지 않았다.
1년 뒤 나는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 그의 새 공장을 찾아갔다. 예전의 공장보다 훨씬 컸지만 덩그러니 휑한 공간, 직원 수는 전보다 적어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음이 느껴졌다. 그는 공장 건축 등 투자를 했지만 코로나 발생으로 거래처의 수요가 급감해 생산물량이 감소했다며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이야기했다.
일주일 뒤 그가 파산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만났을 때 그런 내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쉽게 어렵다는 말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 이해는 되었지만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이어리를 꼼꼼히 쓰고 계획적으로 20년 넘게 사업한 그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동반성장으로 금리를 보상해 주었던 공기업에서 갑자기 혜택을 줄여버려 이자가 두 배 이상 올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시 부채가 문제였다.
항상 나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던 그가 이제 나보다 더 심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 20년 넘게 운영했던 사업이 시쳇말로 쫄딱 망한 것이다. 사업체가 없어지고 그는 소위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그 멋진 벤츠 SUV는 없었다. 정상에서 떨어져 본 사람이 고충을 안다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공든 탑이 무너져 신에 대한 원망이 가득할 것 같은데도 그는 나와 달리 신을 열심히 믿고 있었다. 하느님은 나를 언제나 지켜주고 항상 좋은 것을 주는 분으로 믿으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나는 이번 일로 아무런 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는 신앙심으로 마음을 잡고 이겨내고 있었다. 위로한답시고 같이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지만 식당을 나오고 나면 차가운 바람이 현실을 느끼게 했다. 섣부른 위로나 말이 어려워 가끔 안부만 물을 뿐이었다.
작년에 나는 재창업 자금 지원제도가 있으니 다시 사업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안 그래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다. 그동안 쌓은 거래처와 신용이 좋아서 인지 주변에서 물량을 줄 테니 다시 사업을 해보라고 권하는 곳이 꽤 많았다 한다. 결국 그는 다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사업을 개시했다. 그는 무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사업을 해나가 어느덧 매출이 꽤 발생했다. 실수로 사업은 망했지만 그는 망하지 않았다.
나는 올해 다시 부서장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화분을 보내주며 내일처럼 기뻐했다. 같이 어려움을 겪으며 서로를 격려해 준 보람이 뒤늦게 나타나 다행스럽다. 그가 얼마 전 사무실로 찾아와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의 인상이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 마음 한 구석에 각자의 아픔을 안고 만났지만 카페 밖의 햇빛은 따사로이 둘을 비추고 있었다. 살면서 고통 없는 삶이 없겠냐만 적응하고 인내하며 사는 것 또한 인생의 한 부분임을 거역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