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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이 병실에서도

by 허정 Mar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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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폈다. 일요일 아침, 성당에 가는데 길 옆의 아파트 단지에 하얀 매화와 노란 산수유, 홍매화가 화사하게 펼쳐졌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목(裸木)에는 앙상한 가지만 있었다. 어느새 그 가지 위에 봄이 나왔다. 여태 이렇게 꽃을 보고 마음이 환해지고 위안이 된 적도 없다. 생명의 봄기운과 달리 나의 주변에는 그 기운이 부족하다.




 그제 서울의 두 개의 병원을 다녀왔다. 금요일 저녁에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부리나케 아내와 같이 막차를 타고 올라갔다. 장염으로 설사를 너무 많이 해 병원으로 모시고 진료를 받던 중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별별 생각이 떠오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걱정으로 이어졌다. 가면 알 것이고 그때 대응하면 되는 것을 또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계셨다. 누워있는 아버지의 좌우로 각종 링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알 수 없는 의료장비의 여러 줄들이 아버지의 몸에 연결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모니터에서는 숫자와 그래프가 움직이며 아버지의 몸 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고비를 넘긴 기적과 같은 의술도 대단하지만, 자연적으로 몸이 작동해서 살아냈던 우리의 인체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담당 의사는 동생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까지 했다 한다. 아버지의 위독한 상태를 감안해서, 중환자임에도 지방에서 올라온다고 하니 특별히 면회를 허락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와 나, 아내가 하는 말에 아버지는 일일이 대응을 하며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가 의식이 있는 것을 확인하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생각은 기우였다.


 다음 날 아내와 나는 오전에 아버지 면회를 하고, 며칠 전 서울로 수술을 하기 위해 올라온 처형에게 가기로 했다. 다시 만난 아버지는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의식만 있을 뿐 움직임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계속 그 상태로 계속 누워만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 별일 없으니 안심하시라 했다. 얼굴은 굳어 있고 팔과 다리는 그 사이 더 말랐다. 눈이 안 보여 2년 넘게 고생하며 삶을 이어오셨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내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아버지는 왜 우냐면 울지 말라했다.  



 

 처형의 병문안을 위해 아내와 같이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처형은 위암 4기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다시 재발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3월 초 같이 여행을 가서 연포탕도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날 통증을 일으켜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후 복통으로 수차례 진통제를 맞았고 서울로 올라와 검사를 한 결과, 일주일 후 수술을 하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햇볕은 따스했다. 창 옆의 침대에 처형이 누워있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에서 예전의 처형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강한 성격으로 생기가 넘쳐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도 환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생기를 잃은 얼굴과 검어진 손가락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전에 먹었던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해 장속에서 음식을 호스로 빼고 있었다. 가스도 빠지지 않아 통증으로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아내는 언니의 부은 손을 풀어준다고 계속 주물러주었다. 처형은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면회하는 동안 통증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따금 찌푸리는 얼굴을 보면 통증이 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술날짜가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 순간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힘내라”, “잘 될 것이다”라는 뻔한 말은 무거운 침묵을 피하겠지만 무책임해 보일 것 같았다.환자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 모르고 위로한답시고 무심코 던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아내의 옆에서 앉아 있기만 했다.   


 병원을 나오기 전 같이 기도를 했지만 처형은 워낙 통증이 심했던지 기도도 잘 안 된다 했다. 아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병원을 나와 기차를 타러 가는 중에 나는 아내에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 기적과 같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고 말했다. 아내도 동의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친한 선배가 있다. 시력의 장애가 진행되면서 직장에서 더 이상 승진을 하지 못했다. 이혼 후 디스크와 여러 병을 앓고 있었다. 착하고 명석했지만 순탄치 않은 선배의 삶이 안타까웠다. 몇 년 전 선배에게 전화로 안부 인사를 했었다. 선배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있어 잘 지낸다고 했다. 의기소침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치 깨달은 사람처럼 선배는 의연하게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픈 사람을 보고 삶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는 것이 미안한 일이지만 처형을 통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도 기본적인 행위를 제대로 못하면 삶을 제대로 살 수 없으니 선배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처형에게 오전에 봤던 봄의 꽃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삭막한 병실에서 통증으로 시달리다 보면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생명의 봄기운이 전해지길 바랐다. 내일 중환자실에 있는 아버지에게도 봄이 왔다고 알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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