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이 Feb 03. 2023

당신들 정말 멋쟁이군요

예수-렘브란트-고호 그리고 원더

    -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 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 슈테델미술관. 프랑크푸르트

     

식당 유리벽을 흐르는 빗방울들

둘, 셋 뭉치며 커지다가 톡 구른다, 나가자

빗속에 우산 속에 내 안에 혼자 통통통

구르는 작은 북소리가 발끝을 존귀하게 들어올리고  

내가 맞이했던 세상의 모든 비가 내린다 

정적 위에 쌓이는 소리, 동그라미들의 간지럼 

하루, 선물이 열린다    

 

오늘은 미술관 뒤편 정원을 봐야겠다  

볼록하게 솟은 잔디밭 주위에 거울 기둥들 

지하의 채광창도 볼록렌즈, 둥글둥글 어울린다 

특별한 정원, 동그라미들 가운데서 노래한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사랑의 말 새기어 놓고서...     


어제 두고 온 남자를 보러 전시실로 들어간다         

분홍 장미 앞에 뒷짐지고 서있는 남자

고요히 흔들리며 서서 꿈꾸는 사람

삶의 의미는 유한성에 있다고 

그림자가 꽃을 안고 사랑을 전한다

은은한 향기로 충분한 사랑

영원에 귀속된 시간

오오, 당신 멋쟁이군요        


종소리 들린다 

나의 미술관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진다

빛의 입자처럼 떠돌았던 시간들

오늘은 더 감상자였고 대화자였다

나는 이제 무엇을 더 그리고 싶은가

흔들려 조각난 나들은 어떻게 이어질까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연기하거나 

두고 온 것들 가운데 가능성으로 남은 건 뭘까

재배치하고 재구성할 때, 다시 편집할 때다     

 

천재들 덕분이다. 맘껏 놀다가 원하면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 경계이며 부서진 울타리는 다시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준 괴물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이라는 격언의 그 영감조차 보들레르의 말대로 ‘일상적인 훈련의 보상일 뿐’이라면 결국은 피와 땀이다. 그것 없이 삶은 없다는 것, 삶의 중요한 일부인 죽음과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끝없는 질문이자 답.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나를 도왔다. 수많은 그림과 조각과 말을 먹고 마신 덕분에 두려움과 전율 속에서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고호가 몹시도 아름답고 간곡한 불씨를 놓아 

끊임없이 흔들리는 꽃으로 피워냈기에 가능했다 

어둠과 마주한 태양의 꽃밭에서 떨면서 

어떤 나이고 싶은가 사유하도록

렘브란트는 빛의 시간을 열었다 

한 점 반짝이는 신의 비늘을 흔적으로 

굳건히 딛고 설 자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 능동적 포기와 적극적 흔들림이 가능하도록 

예수가 고통으로 내 안에 뚫어 놓은 

가능성의 자리, 틈 하나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엄마·아버지들, 진정한 내것 내 살과 삶                         

나를 찢고 솟는 기쁨     


오오, 당신들 정말 멋쟁이군요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 카를 슈피츠베크


작가의 이전글 내가 부를 수 없었던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