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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언론 불신시대'에 다시 읽는 책

<한국언론의 품격>

요즘 한국사회에서 가장 가혹하게 비난 받는 직종이 기자직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때 일부 사람 사이에 특수어 정도로 소비됐던 '기레기'라는 용어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유통되는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다.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자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의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만  봐도, 언론사와 그 종사자인 기자가 얼마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0년 이상 언론계에 종사하며 글을 쓰며 살아왔던 나로서도 참담한 생각을 가눌 수 없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뒀던 <한국언론의 품격>(나남 2013년, 17,000원)을 빼어들고, 다시 읽어봤다. 이 책은 내가 관훈클럽 총무를 할 당시인 2013년, '어떡하면 당면한 '언론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아래 기획 출판한 책이다. 지금도 이 책의 출간을, 당시 총무로서 최대 업적이라고 자부한다.


 나는 당시 <발간사>에서 "(한국언론의) 위기는 크게 세 방향에서 내습하고 있다. 가히 삼각파도가 휘몰아치는 엄중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구체적으로 1)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등장에 따른 전통매체의 생존 위기 2)경영의 논리에 종속되는 편집의 위기 3)진영논리와 자사이기주의의 팽배에 따른 언론 불신풍조를 위기의 실체로 지목한 바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8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이런 풍조는 더 강화됐으면 됐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일본에서 오사카총영사로 근무하면서 '기자 출신 총영사'라는 특이성 때문인지, 비교적 많은 매스컴 종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그들한테 건넨 단골 메뉴가 "예전엔 일본의 신문, 방송을 보고 한국의 신문, 방송이 많이 본받고 배웠는데 요즘은 그런 면을 찾을 수 없다. 일본 매스컴이 많이 열화됐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3년 만에 돌아와보니, 우리의 열화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다. 특히, 내가 3대 위기로 지목한 것 중에서 세 번째의 정파주의와 자사이기주의로 인한 불신풍조는 더 심화할 곳이 없을 정도로 보인다.


 <한국언론의 품격>을 낼 당시만 해도 위기감도 있었지만 희망도 있었다. 필자로 나선 5명의 언론학자와 언론인도 이 책에서 분석하고 제시한 대로 언론계가 노력하면, 언론 상황이 조금은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작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위기가 더욱 깊어졌고, 언론계를 둘러싼 환경도 질적, 양적으로 많이 변했다. 대표적으로 전통 미디어는 더욱 약해졌고, 인터넷과 에스앤에스를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미디어 또는 개인 미디어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돌아보니 <한국언론의 품격>은 전통미디어의 분석과 대안에만 촛점을 두었지, 인터넷과 에스앤에스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 미디어는 외면했다. 이것이 이 책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관훈클럽이 전통미디어, 즉 회사(조직) 미디어의 성원 또는 그 출신자의 모임이므로 범위를 개인 미디어까지 확대하는 것은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와 변화된 언론환경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이 책에서 지금의 언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5개 분야, 즉 기사의 질(필자, 박재영 고려대 교수) 기자제도(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자기성찰(김세은 강원대 교수) 언론법제(심석태 서울방송 기자) 편집과 경영의 관계(남시욱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로 나눠, 위기 타개책을 제시하고 있다.    


 박재영 교수는 기사의 품질이 높아지지 않으면 독자가 기사를 외면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언론사의 경영까지 어렵게 한다면서, 기사의 품질 제고에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릭 수를 겨냥한 선정성, 속보성의 날림 기사가 남발하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제기는 지금도 타당하다고 본다. 이재경 교수는 일본식의 공채제도를 기초로 하고 인턴제 등의 미국식을 일부 더한 한국의 기자제도가 가지고 있는 현실 부적합성을 지적하며, 공채제도의 전면 폐지와 저널리즘스쿨의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국식 기자제도의 재건축을 제안했다. 회사 미디어에 치중한 감이 짙지만, 현재와 같은 '언론고시'를 통한 채용과 순환근무 중심의 기자제도로는 전문성도 기르기 어렵고 다양한 인재를 얻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김세은 교수는 미디어 내부 및 상호 간 건전한 비판이 미디어와 기자를 건강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독자인 시민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수산업자로부터 이익공여를 받은 언론사 기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해당 언론사는 아예 보도조차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언론의 자기성찰과 상호 비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안타깝게도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심석태 기자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에 비중을 두면서 더욱 근본적인 가치인 언론의 자유는 경시하는 언론법제 환경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언론자유를 주, 사회적 책무를 종으로 삼으면서 둘 간의 균형을 잡는 언론법제의 전면 개편 필요성을 주장했다. 요즘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는 5배 징벌적 배상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남시욱 전 국장은 "언론 역사상 좋은 신문과 좋은 방송이 존재한 배경에는 반드시 모범적인 경영주와 모범적인 편집 책임자가 있고, 그들의 관계 역시 모범적이었다"며 제도 개선보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전성 시대의 <동아일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사례를 들었다.


 지금 아무리 언론이 모든이의 공적이 됐을 정도로 욕을 먹고 있다고 해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언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언론 없는 사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언론, 신뢰 받는 언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지금의 변화된 언론환경까지 두루 감안한, 제2의 <한국언론의 품격>이 나와 이런 작업의 돌파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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