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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꽉 막힌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대전환시대의 한일관계>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앞으로 7개월 정도 남았다. "꽉 막혀 있는 한일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당위론적 얘기와 달리, 현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한일관계가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양국의 정치일정만 봐도 문 정권이 임기 말에 들어갔고, 일본 정치도 9월 말에 자민당 총재 선거(스가 총리는 불출마 선언) 실시에 이어 곧 총선거 국면으로 넘어간다. 양국 모두 국내정치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한일관계를 푸는 데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양쪽에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는 더 이상 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 억제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일 사이에 갈등 또는 문제는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푸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잠시 냉각기를 거쳐 언젠가, 아마 양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를 대비해, 꽉 막혀 있는 양국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을 물밑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찾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출판된 <대전환 시대의 한일관계>(제이앤시, 2021년 6월 28일 발행, 서울대 일본연구소  한일관계 개선방안 연구 TF 저)를 읽었다. 나는 퇴직 뒤 9월 1일부터 1년간 이 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위촉됐는데, 이 글은 이런 사적인 인연과는 무관함을 밝혀 둔다.




 이 책 서론에서, TF의 팀장인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한일관계가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과거사에서 무역갈등, 안보갈등까지 번지는 복합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는데, 한국 쪽의 요인으로 1)한일 사이의 경제력의 급격한 축소(2018년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GDP 일본 추월) 2)문화적으로 한류가 세계적으로 일류를 능가 3)코로나 방역에서 일본보다 선방을 들었다. 이런 성과 속에서 과거 일본을 경외시하던 '소니 세대'에서 일본에 당당한 '김연아 세대'가 한국의 주류가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 쪽의 구조적 요인으로는 1)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며 경제 정체와 급속한 노령화 진전 2)경제규모에서 중국에 추월 당하며 3위로 전락(2010년)을 들며, 이런 속에서 잠재돼왔던 민족주의가 분출되기 시작했고 아베 신조 정권 이후엔 자학적인 역사관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적 대전환기에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리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려고 TF를 조직해 <역사화해> <외교안보> <경제통상> <사회문화>로 나누어 연구를 했다고 밝혔다.




 TF 발족 및 활동 시기를 보면,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염두에 둔 듯한 인상도 받지만, 기본적으로는 새로 탄생할 정권까지 내다본 활동이란 느낌이 든다.




 역시 가장 민감한 분야는 역사화해 분야인데, 이 부분은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가 맡았다. 남 교수는 문 정권은 과거사와 실질협력 분야를 분리 대응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접근을 기조로 삼았지만, 위안부와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에  일본이 타협의 여지를 배제하는 바람에 작동이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는 '역사적 정의의 확인', '정치적  현실의 고려', '사법부 판결의 이행'이라는 세 개의 층위를 만족시키는 복합 공간에서 해결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로 나눠 해법을 제시했다.




 강제동원과 관련해서는 역사인식이 후퇴하고 있는 일본과 바로 역사적 정의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국내 배상 등 두 번째 층위를 실시하면서 일본기업의 사과를 받아내는 식으로 사법부 판결을 이행하는 수순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2010년 발표된 간 나오토 담화 수준에서 수용하는 식으로 역사적 정의를 확보해 나가는 방안을 아이디어로 내놨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문 정부가 2015년 합의를 정부간 공식합의로 인정했지만 사법부 판결로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파기나 재협상도 아니고 유지도 아닌 제3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우선 피해자의 마음에 닿는 사과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2015년 합의를 정식 문서로 교환하고, 고노 담화의 정신을 이어받아 진상규명과 연구교육, 기억계승을 위한 시설을 도서관과 자료관, 박물관의 기능을 갖춘 라키바움(Larchiveum) 형태로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매우 정교한 접근이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일본에 외교 협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일본이 국제적으로 확립된 전시하 여성 성범죄 해결 기준(책임인정, 사과, 배상,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교육)을 스스로 준수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외교안보 분야는 국립외교원의 조양현 교수가 썼다. 그는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에 관한 미국의 관심이 커질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문 정부가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한반도 긴장을 최소화하려면 한미일 대북공조를 통해 미국과 일본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과 관련해서는, 자칫 역내국이 '미일 대 중국'의 신냉전 대결구도로 갈리면서 지역질서가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주도의 첨단기술 분야 설계(아키텍처) 경쟁에서는 반도체, 5G/6G, 배터리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협력할 것을 주문했다. 또 미중 경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한일관계 개선뿐 아니라 호주, 인도, 동남아 국가들과 다자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일이  협력해, 개도국 코로나 대응을 공동 지원하고, 국제 방역체제와 관련해 '동북아 방역공동체' 구축 등 협력 플랫폼의 구축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경제통상 분야는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담당했다. 그는 2019년 7월 1일 아베 신조 총리가 실시한 수출규제 조치로 일본의 소부장 제품 조달의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실제로 큰 부정적 효과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첨단 소재 분야에서는 불화수소를 빼고 효과가 미미했는데, 유독 불화수소만 수입이 크게 감소한 것은 불화수소가 화학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일본이 내세운 '안전보장'의 고려라는 이유에 가장 부합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우선 강제노동 관련 판결로 법원에  압수돼 있는 일본제철의 주식의 강제매각을 지연하면서 정치적 해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국제무역기구(WTO) 분쟁과 관련해서는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되 통상 환경의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또 거대지역주의에 적극 참여하면서 '국제적 가치 사슬(글로벌 밸류 체인)의 구조적 개편을 통해 수출규제의 실질적인 무력화'를 앞당길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탈일본화'와 '탈일본기업화'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문화 분야는 한림대 이지원 교수가 집필했다. 그는 사회문화 분야는 상호 교류협력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면서, "정부는 민간과 시민사회의 자생적 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내가 총영사로 일하면서 느낀 바와 매우 비슷한 시각이다. 그는 한일관계가 1965년 한일국교 수립 이후 수직에서 수평으로 가면서 전반적으로 대등관계가 됐고, 저출산과 고령화, 지방소멸, 불평등 등 유사한 사회문제를 겪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또 서로의 문화를 편견 없이 존중하고 즐기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한일이 성장 중심의 수치 비교를 넘어 더 나은 삶의 질과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자극하는 선의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코로나 사태 종식 뒤 직접 상대를 알고 이해하는 가장 좋은 통로인 인적교류를 활성화할 것을 주문했다. 나도 대찬성이다.




 마지막으로 TF는 10가지 제언을 내놨다. TF의 제언은 더욱 좋은 대안을 위한 논의의 좋은 디딤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0대 제언




제언1 강제동원 문제는 우리 정부가 선제적, 독자적 행동으로 판결 이행을 촉구할 것.




제언2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역사연구와 역사교육 기구 설치로 미래에 열린 해법을 도모할 것.




제언3 과거사와 기타 현안의 분리 대응이라는 대일 투 트랙 외교 기조로 복귀할 것.




제언4 한미일 대북 공조를 통해 미일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견인할 것.




제언5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한일관계의 개선과 함께 호주, 인도, 아세안 세력과의 다자외교를 강화할 것.




제언6 수출규제 철회를 이끌어내기 위한 무리한 정치적 해법보다, 시간을 가지고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것.




제언7 거대지역주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수출규제의 실질적 무력화를 앞당길 것.




제언8 교역에 있어서 탈일본화하되, 탈일본기업화는 주의할 것.




제언9 '선진 문제국가'라는 공통점을 인지하고 해법을 공유할 것.




제언10 성장을 넘어 '삶의 질과 행복'을 향한 선의의 경쟁 관계로 전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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