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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4. 2021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의 중요함

나는 어떻게 교토대 총장이 되었나

책의 제목만 보면, 한 개인이 교토대 총장이 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쓴 성공담 정도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고릴라 연구의 세계 제1인자인 저자가 고릴라 연구 등을 통해 얻거나 깨달은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를 담담하게 설명하는 일종의 '자기계발서'다. 무엇보다 내용이 쉽고 재미 있어 경쾌하게 읽을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는 글을 잘쓰는 방법으로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미 있게"라는 모토를 내세웠는데, 이 책이 깊은 것은 몰라도 쉽고 재미 있게 쓰여진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어떻게 교토대 총장이 되었나>(에쎄, 2017년, 야마기와 주이치 저)는 2015년 일본에서 출판된 <교토대식 재미 있는 공부법>(아사히신서, 2015>번역해 펴냈다. 일본어 제목을 독자들의 눈길을 끌려는 듯 번역본에서는 더욱 튀겼는데, 사실 일본 책의 제목도 책 내용과 거리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이 한글 책을 저자인 야마기와 총장(2014~2020)한테 직접 받아 단숨에 읽은 적이 있다. 2018년 4월 오사카총영사로 부임한 뒤 대학을 거점으로 한 지식교류, 학생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관할지 안의 주요 대학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5월 8일 교토대를 방문해 야마기와 총장을 만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모든 대학의 우두머리를 총장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옛 제국대학의 우두머리만 총장이라고 한다. 교토대나 오사카대는 총장이라고 하지만, 같은 국립대라도 고베대는 학장이라 부른다. 사립대도 규모에 관계 없이 모두 학장이라고 한다.


 물론 야마기와 총장을 만나러 가기 전에 그가 고릴라 연구의 제1인자라는 것은 알고 갔지만, 접견실 벽이 고릴라 사진과 고릴라 상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와 고릴라의 깊은 관계를 새삼 확인했다. 대화 중 고릴라 얘기도 화제에 올랐는데, 갑자기 그가 집무실로 들어가더니 이 책을 가지고 나와 건네줬다.


 책을 받아온 뒤 내용이 궁금해서 읽기 떠들어봤는데 재미 있어서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게 됐다. 그리고 그중에서 두 가지 대목은 총영사로 있을 때 각종 모임이나 연설을 할 때 자주 인용하곤 했다. 물론, 지적재산권은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을 밝혀 둔다.


 그 중 첫 번째 애용한 대목이 "밥 먹기는 평화선언"이라는 글에 나온다. 조금 길기만 다음과 같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회담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로 웃으면서 악수를  하는 영상이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들이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그때 정상끼리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면 북한과 일본은 완전히 화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159페이지)


 침팬지와 고릴라 등 영장류를 관찰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무릅을 딱 쳤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같이 밥먹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많은 사람과 밥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There is no problem, there is a solution'이라고 말한다"(47페이지)는 대목이다. 나는 이것을 약간 변형해서 한일관계의 개선을 꽉 막고 있는 역사 갈등을 언급하며,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풀리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응용했다. 실제,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에서 이 두 가지를 얻은 것으로 큰 희열을 맛봤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다른 대목에서 더욱 짜릿한 인생의 교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석학인 야마기와 교수가 자신이 그동안 여러 다양한 활동과 고릴라 등 영장류 연구를 하면서 경험한 것, 느낀 것, 고민한 것, 깨달은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야마기와 교수는 마무리 말에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상황에 맞게 결론을 내린다'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한다' 세 가지로 요약하고 이를 커뮤니케이션의 길잡이로 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나는, 그가 이 책에서 디지털 문화의 폐해, 즉 빈번한 연락 속의 고독을 지적하며 아날로그적으로 시간을 들여 동료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을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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