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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한국전쟁은 일본에서도 여전히 '진행중'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1952년은 '전후 일본'의 역사에서 큰 변곡점을 그린 해다. 우선, 패전 후 미군의 점령 아래 있던 일본이 이 해에 미국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또 중국의 공산 통일과 한국전쟁의 발발로 냉전 분위기가 가속화하면서 미국의 대일정책이 그동안 일본군의 무장 해제 및 재벌 해체, 사회 민주화에 중점을 두던 데에서 공산주의자 추방과 일본의 군비 증강과 대공산권 포위망 구축 등 반공주의적 정책으로 방향을 튼, 이른바 '역코스'가  크게 강화됐다. 


 이런 급격한 미국의 대일정책 선회는 그동안 미군정의 정책을 환영하고 지지했던 진보세력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전쟁 발발 2년을 계기로 1952년 6월 24일 오사카 일원에서 일어난 '소요' 사건이 바로 스이타 사건이다. 재일조선인과 일본의 공산당 등 좌익세력 1천여명이 한국전쟁에 사용될 포탄 등을 실어나르던 열차가 집합해 있는 일본 국철의 스이타 조차장을 기습해, 물자 수송을 저지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무력충돌을 빚었다. 이로 인해 111명이 '소요죄'로 기소돼 20년 동안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서는 법원이 검찰의 소요죄 주장을 부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내새운 피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스이타 사건은 같은 해에 일어난 도쿄 메이데이 사건(5월 1일), 나고야 오스 사건(7월 7일)과 함께 '3대 소요 사건'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그 이후 파괴활동방지법 제정과 경찰법 개정 등 많은 변화를 불러온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사건>(논형, 2020, 니시무라 히데키 저)은 스이타 사건 발생 50년을 2년 앞둔 2000년, 오사카 지역의 전, 현직 언론인 등이 '스이타 사건 연구모임'을 만들어 그때까지 전모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일본어 원본은 <조선전쟁에 '참전'한 일본>(삼일서방, 2019)이다.


 이 책의 저자 니시무라 히데키씨는 오사카에 있는 마이니치신문사 계열의 방송사 <MBS, 마이니치방송> 출신의 진보 성향 언론인이다. 남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 관계와 인권에 관심이 많다. 연구모임 당시는 현역이었는데, 지금은 은퇴해 간사이지역 대학에서 방송저널리즘과 인권 등을 강의하면서 저술 및 강연 등의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나도 오사카에 근무하면서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눈 선배 언론인이다. 2019년 일본에서 책이 나왔을 때도 받아서 읽어봤는데, 1년도 되지 않아 한국에서도 책이 나와 깜짝 놀랐다. 2020년이 한국전쟁 70주년이기 때문에, 한국판 출판 시기를 그에 맞춘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돼 있다. 1부 '3대 소요 사건의 하나, 스이타 사건'에서는 스이타 사건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면서 주모자의 한 사람이었던 꼬치구이집 주인 부철수씨와 만남을 통해 스이타 사건을 추적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2부 '한국전쟁과 일본'에서는 전력과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에도 불구하고 해상수송과 항만 노동, 소해 활동, 간호 지원 등을 통해 일본이 한국전쟁에 직, 간접적으로 참전한 사례를 관계자의 인터뷰와 기사, 자료 등을 통해 보여준다. 심지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한 일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3부가 다시 스이타 사건을 추적하는 것으로 돌아가고 있어, 2부의 내용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일본이 한국전쟁에 직, 간접으로 참전하거나 관여했으며 이런 구도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성이다.


 3부에서는 스이타 사건의 '3명의 주모자'라고 할 수 있는 부철수, 김시종, 미키 쇼고의 얘기가 밀도 있게 전개된다. 너무 극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와, 르포르타쥬라기보다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미키 쇼고는 사건 당시 시위를 지휘했던 일본공산당 소속의 간부였고, 부철수씨는 재일조선인 2세 활동가로 미키씨 옆에서 시위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사건 당시 체포돼, 20년의 재판투쟁을 거쳐 무죄를 받았다. 김시종 시인은 당시엔 체포되지 않았지만 1천명 규모의 시위대 맨 뒤의 안전을 담당한 주역이었다는 사실이, 이 모임의 초정 강연에서 본인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김 시인은 "나는 시위대의 후미에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에 보내지던 군수 열차를 10분간 멈추면, 1000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다고 해서 필사의 심정으로 참여했습니다."고 스이타 사건에 참여한 심정과 이유를 털어놨다. 일본인 주모자 미키 씨는 재판 과정에서 전향선언을 해, 배신자로 몰리고 가족들도 그 멍에를 지고 살다 죽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는 이미 숨졌지만 그를 잘아는 동료, 아들과 조카 등 친족을 끈질기게 추적해 만나 얘기를 들으며 그가 단순히 변절하거나 배반한 것이 아니라는 심정을 굳힌다. 당시 전투노선의 공산당 전략을 비판하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자는 결심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니시무라씨를 비롯한 전, 현직 기자와 당시 사건에 관계했던 사람들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사건의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더 찾기 위해, 도서관의 묶은 자료를 뒤지고 조그만 실마리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먼곳이라도 기어이 찾아가 만나는 모습을 책을 통해 보면서, 나는 언론인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했다. 역시, "기자에게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 책은 스이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일본에서 재일동포 운동사 및 일본 전후 현대사에 대한 이해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니시무라씨는 한국판을 위해 쓴 <들어가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일본제국 정부가 천황제 존속을 위해 시간을 끌지 않고 7월 말에 포츠담선언을 바로 수락했더라면,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20만명이 넘는 희생자는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가 미소에 의해 분단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한반도 분단의 직접적인 책임은 미국과 소련에 있지만, 전후 처리에 미숙했던 일본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이런 일본의 미숙함 때문에 지금도 일본에서 한국전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로, 나에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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