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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코리아타운 재일화가, 홍성익씨의 그림과 음식

<그림의 길, 음식의 길>

"저는 오사카 이쿠노에서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 손주들도 여기서 살아야 하겠지요. 이 거리가 저의 고향입니다. 저의 기반은 이쿠노이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란 점입니다."(283 페이지)


재일동포 3세 화가이자 경영자(일본 오사카에 있는 한국식품회사 '도쿠야마물산'의 전 회장)였던 홍성익씨(66)가 그의 회고록 <그림의 길, 음식의 길>(논형, 19,800원)의 마지막 대목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혼이자 정신,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길, 음식의 길>은 그가 2019년 12월 일본어로 펴낸 책 <どや, どや, どや 繪のみち食のみち奮鬪記(우당탕탕, 그림의 길 음식의 길 분투기)>(동방출판)를 한글로 번역해 출판한 것이다. '도야, 도야, 도야'는 오사카의 방언이다. 홍씨는 2019년 오사카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이를 "우당탕탕"이라는 의성어로 번역해 소개한 바 있는데, 이번 한글 번역책에서 '작품해설'을 쓴 재일동포 소설가 김길호씨는 "어때요, 괜찮죠, 안 그래요?"의 의미로 풀이했다. 오사카에서는 어감이 잘 통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애매하니까 한글 번역본에서는 아예 이를 생략하고, 부제로 돼 있던, '그림의 길, 음식의 길'을 주제목으로 바꾼 것 같다. 역시 한국 뿌리를 가지고 있는 재일동포가 쓴 책이라도 번역은 이렇게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은 반역",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고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한글 번역본은 일본어 책을 충실하게 잘 번역했다. 나는 먼저 일본어 책을 본 뒤라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읽게 됐다. 원저에는 일본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국현대사(한국전쟁, 박정희 군사정권과 유신체제, 6월 항쟁) 등에 관해 자세한 주석을 달아놨었는데, 한글판에서는 이를 생략하는 대신 재일동포사와 관련한 사건에 관한 주석이 길게 더해졌다. 또 책 뒤에 작품 해설을 별도로 넣어 독자의 이해를 돕게 했다. 마침 나는 오사카총영사 시절, 홍씨뿐 아니라, 인터뷰어인 가와세 슌지, 작품을 해설한 김길호씨와 친분이 있었던 터라 더욱 애정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어찌보면, 한 책을 일어와 한글로 두 번 읽은 셈인데, 감각은 전혀 다른 책을 두 권 읽은 느낌이다. 그만큼 모국어와 외국어는 차이가 심하다. 아무리 외국어가 능숙하다고 해도 모국어로 읽고 말하는 편안함을 당할 수 없다. 김길중 전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녹색평론선집3 수록)라는 글에서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분에게서 들은 고백인데, 자신은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동안에 IQ 20쯤은 깎아먹고 소통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모국어의 아늑함과 편안함을 잘 알 수 있다.


 이 책은 제주도 출신인 그의 부모가 겪었던 현대사의 비극  4·3 사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오사카 이쿠노구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겪었던 개인사를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그가 어느 날 후두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책이니 만큼,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털어놓자는 결심을 한 듯하다.


 이쿠노의 코리아타운에서 떡장사를 하면서 조총련 활동가(특히, 교육 분야)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홍씨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조선학교를 다녔다. 만화를 좋아해 조선대학교 사범대 미술과에 들어갔고, 졸업 뒤 조선학교에서 미술선생을 한 것이 화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또 오사카에서 연 개인전을 본 한국 유학생과 인연이 되어 1989년 잠실 롯데미술관 개관 기념  개인전을 하면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동안 한국적이 아니라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던 부모 및 처와 함께 한국적을 택하고, 한국에서 오코노미야키(일본식 파전), 떡과 냉면, 김을 제조하는 사업을 한다. 남북화해의 흐름을 타고 고추장과 냉면 등을 북한에서 만들어 남한에 팔려는 사업도 계획한다. 이때부터 '그림'과 '경영'이 인생의 두 기둥이 됐다.


  내가 보기엔, 그는 모국에서 두 가지 분야에서 모두 쓴 맛을 봤다. 먼저 그림 쪽에서는 '조총련 출신 미술인'에 주목한 민중미술 진영 쪽의 사람이 같이 정치활동을 하자고 수 차례 제의해온 것을 거부한 것이 화를 불렀다. 그는 '정치와 그림은 다르다'는 생각으로 정치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책에서 털어놓고 있지는 않았지만 일본에 살면서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했을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의 두려움이 필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급기야 그 사람으로부터 '배신자' '쪽발이'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림 그리기를 생명처럼 삼았던 그가 그림을 포기하기로 한 계기가 됐다. 


 사업 면에서는, 한국에서 그의 '솔 푸드'인 오코노미야기 가게의 성공 등 일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할 수있다. 특히,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친대기업 정책의 희생물이 됐다. 잘 나가던 김 제조회사를 국내의 대기업에 빼앗기다시피하고 철수했다. 또 북한에서 하려던 사업은 때마침 터진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대북강경책을 취한 이명박 정부의 등장, 유엔의 대북제재가 겹치면서 기계만 갖다 놓고 생산도 하지 못한 채 좌절됐다.


 그는  암으로 생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하려는 뜻으로 책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책을 출판한 시점에서는 건강을 회복하고 활기찬 제2의 삶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20년 정도 놓았던 붓을 잡고 그림 그리기 작업을 재개했다. 한국에서 그를 발굴해 소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19년 12월 이쿠노 코리아타운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직접 참석해 "창작 활동을 그만두고 20년 만에 다시 붓을 든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그의 재기를 격려했다. 그는 지금, 구상에서 추상으로 화풍을 바꿔 '심상 리얼리즘'(마음 속의 리얼리즘이란 뜻으로, 친우인 재일화가 박일남씨가 붙인 표현)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제도 통일을 기원하는 '기원'에서 삶을 강조하는 '살다'로 바꿨다.


 또 그는 코리아타운(미유키도리) 중앙상점회 회장으로 복귀해, 코리아타운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평생 코리아타운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하고 코리아타운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선친 홍여표씨의 유업을 잇는 의미가 있다. 그의 꿈은 한국에 재일화가 그림을 상설전시하는 재일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코리아타운에 재일동포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재일동포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다. 건강을 되찾은 그가 꿈을 꼭 이루기 바란다. 


 어쩌면 그의 책은 '재일동포로 태어나 끝까지 재일동포로 살면서 죽겠다'는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다. 그의 아버지에 관한 책 <코리아타운에 산다-홍여표 라이프히스토리)(만천당, 고찬유)는 2007년에 초판이 나왔고, 올해 1월 개정신판이 출판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한글 번역판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을 쓴 고찬유씨는 재일동포 자유기고가(프리저널리스트)로, 2019년 일본 안의 민족교육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들의 학교>를 감독했다. 이런 책과 영화를 함께 보면, 재일동포의 삶과 생각, 고통과 바람을 더욱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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