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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청일전쟁은 '경복궁 점령'으로부터 시작됐다

무쓰 무네미쓰의 <건건록(蹇蹇錄)>

일반적으로 우리는 청일전쟁이 1894년 7월 25일 청일 군 사이의 아산전투 또는 풍도전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대체로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온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청일 사이의 전투가 시작된 사건일 뿐이다. 실제 청일전쟁은 그 이틀 전인 7월 23일 오토리 게이스케 당시 조선주재 일본공사가 이끄는 일본군 1천여 명이 '경북궁 점령'한  사건 때부터 시작됐다.


 청일전쟁 당시 이토 히로부미 총리 내각에서 외상을 지냈던 무쓰 무네미쓰가 청일전쟁 발발부터 시노모세키조약 체결, 그리고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간섭과 요동반도 반환까지의 외교비화를 기록한 책 <건건록-일본의 청일전쟁 외교 비록>(논형출판사, 2만7천원)을 보면,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청일전쟁은 우발적인 전쟁이 아니라, 조선을 청의 세력권에서 떼어내어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일본의 기획 전쟁이었다. 1894년 민생고에 지친 농민들이 전라도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일제히 봉기했다. 바로 갑오 동학 농민전쟁이다. 무능한 조선 조정은 자력으로 농민의 봉기를 제압할 수 없자, 종주국인 청에 원병을 요청했다. 


 호시탐탐 조선을 손아귀에 넣으려던 일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맺은 제물포조약과 갑신정변 이후 청과 맺은 텐진조약을 교묘하게 활용했다. 제물포조약에서는 일본이 공관 경비를 위해 군의 주둔권을 확보해 놨다. 텐진조약의 핵심 내용은 청일 양국이 "조선에 군을 파견할 때는 동시에 파견하고 동시에 철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 두 조약을 활용해, 청이 조선에 파견한 사실을 통보받자 바로 육해군으로 편성된 대부대를 인천으로 보낸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복통 터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조약에 따른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국가 목표인 조선의 지배권 확보를 위해, 청과 무력충돌(전쟁)을 기획한다. 위에서 말한 '경복궁 점령' 사건이다. 군대를 파견돼 있지만 청과 싸울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 조정을 협박해, 청과 싸울 명분을 만들어냈다. 일본 군대가 경복궁에 진입해 왕을 볼모로 잡고, 조선의 독립을 위협하는 청 군을 몰아내달라는 위탁을 강제로 받아낸 뒤 이틀 뒤 아산에서 청군과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강화도수호조약에서 조선은 독립국으로 돼 있는데, 청이 조선을 종주국으로 취급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논리였다. 강도가 마치 피해자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이 사건을 보면, 한일 강제병합의 시발점이 된 1905년 을사늑약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청일전쟁은 1년 만에 일본의 승승장구로 끝난다.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 사이에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청으로부터 거금의 배상금 외에 요동반도와 대만을 할양받기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국, 조선 등에 이권 획득을 노리던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와 손 잡고 요동반도를 반환을 요구한다. 이른바 3국 간섭이다. 


 이 책은 1894년 7월 청일전쟁 발발에서 1895년 5월 삼국간섭의 타결까지 1년여 동안의 외교 비사를 다루고 있다. 외국 외교 사절과 협상, 각 국에 파견된 일본 외교관들의 보고와 본국의 지시 공문, 일본 정부의 비밀회의 내용 등이 책 곳곳에 생생하게 나와 있다. 몇 년 동안이나마 외교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실감나는 장면이 많았다. 국익을 다루는 외교관의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저자가, 내가 근무했던 오사카총영사관 관할지인 와카야마현(기슈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묘한 인연도 느꼈다. 물론 이 책의 기록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일부 내용은 빼거나 은폐하고 기록됐다고, 이 책을 교주한 나카쓰카 아키라(청일전쟁의 최고 권위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팠던 부분은 조선을 두고 강대국 청일이 벌인 전쟁이지만, 거기에 정작 조선의 목소리는 없었다는 점이다. 청과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 영국, 독일, 미국 등 모든 열강들이 조선을 '장기판의 졸'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나눠먹기 게임에만 몰두했다. 세상이 아무리 진보하고 인권 의식이 커졌다고 해도, 120년 전의 그때나 지금이나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은 변함이 없다.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나라는 강한 자의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결코 돕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 <건건록( 蹇蹇錄)>의 건은 '한쪽 다리를 절름거린다'는 뜻이다. 청일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일본의 국익을 위해 군주와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헌신 때문인지 일본의 역대 외상들 가운데 무쓰 무네미쓰의 동상만이 유일하게 일본 외무성에 세워져 있다 한다. 반면, 조선은 그 때문에 너무 고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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