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Oct 07. 2021

일본인 교수가 쓴 <한겨레> 탄생 배경

<한국저널리즘과 언론민주화운동>


높은 산은 멀리 떨어져서 봐야 전체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도 속으로 들어가면 나무와 돌만 보일 뿐이다. 산뿐이 아니다. 어떤 현상을 대할 때도 너무 밀착하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둬야 본질이 더욱 잘 드러난다.




 모리 도모오미 세츠난대학 외국어학부 특임준교수가 2019년에 출간한 <한국저널리즘과 언론민주화운동-한겨레신문을 둘러싼 역사사회학>(일본경제평론사)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해방 후 권력에 맞서 싸워온 한국 언론민주화운동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귀결로서 필연적으로 <한겨레신문>이 탄생하게 됐음을 밝히고 있다. 또 언론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간된 한겨레신문의 이념과 편집방향, 창간 이후 실제로 이뤄진 보도와 논평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성과와 한계도 집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외국인 학자의 눈으로 한국 언론민주화운동과 한겨레신문을 분석하고 진단했다는 점이다. 나도 30년가까이 한겨레신문에서 일한 바 있지만, 한국에서 한겨레신문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이념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려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한겨레신문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인 동시에 가장 신뢰할 수 없는 미디어라는 이율배반 상태에 처해 있"(290페이지)는지도 모른다. 모리 교수는 외국인 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양극으로 나뉜 '평가의 계곡'에 빠지지 않고 사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언론민주화운동이라는 전문적인 주제를 접근하는 것은, 언어를 비롯해 한국에 대한 깊고 다양한 지식이 받쳐주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모리 교수는 이 부분에 전혀 문제가 없다. 적어도 내가 이제까지 만난 일본 사람 중에서 한국말을 가장 한국사람처럼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가 처음 한겨레신문과 한국언론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생 시절인 2003년부터라고 한다.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을 때인 2008년에는 1년간 한국에 유학하며 한겨레신문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는 자원봉사도 했다.  10년여에 걸친 이런 꾸준한 연구와 노력 끝에 2013년 <언론민주화운동에서 '한겨레신문'으로-한국저널리즘의 변동과정에 관한 일고찰>을 도시샤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고, 이번에 나온 책은 이 논문을 일부 수정, 가필한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한겨레신문을 연구하던 시절, 나도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만난 적은 없다. 오사카총영사 시절에야 비로소 그가  이런 책을 낸 것을 알고 '한일관계와 미디어의 역할'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가 한겨레신문 창간 과정에서 가장 주목한 것의 하나가 '국민주 방식'이다. 그는 소수의 대주주에 의존하지 않고 수만명의 소액 국민주주를 모집해 신문은 만든 것은 세계 언론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이런 독특한 방식이 성공한 것은 한국의 민중이 권력과 자본에서 독립한 새신문을 만들겠다는 언론민주화운동의 대의에 찬동했고 그를 지원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에서도 한겨레신문의 국민주 방식 신문 창간의 성공에 고취되어 대안 신문을 만들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간지는 만들지 못했고, 현재 그 흐름에서 생긴 <주간 금요일>이 발행되고 있다. 모리 교수는 국민주 방식에 대해 권력으로부터 독립에는 효과적이나 광고 수입이 절대 비율을 차지하는 한국언론 현실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이루는 데는 허점을 보였음을 지적하며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겨레신문이 창간  직후 기자실 제도의 폐쇄성과 이권집단으로서의 폐해를 비판한 것을 평가하면서도 기자실을 개방하는 부분에 집중했지 기자실 해체 요구까지는 주장하지 못한 한계를 보였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후 한겨레신문도 '기자실에 가입한 또 하나의 신문'이 됐다고 꼬집었다. 또 1998년 김대중 정권 이후 한겨레신문이 시민 기자제인 '하니 리포터'를 도입하는 등 온라인저널리즘에 힘을 기울인 것에 대해서도 "시민에 의해 창간된 한겨레신문이 시민참가형 저널리즘의 실현성이 매우 높은 온라인 공간에 주목한 것은 거의 필연"이라고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보면, 그런 평가가 맞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그는 결론의 보론에서 한겨레신문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해 1)가짜뉴스와 싸움에 앞장 설 것, 2)좁은 민족언론의 틀을 넘어 동아시아 민중/시민공동체를 지향할 것, 3)시민교육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할 것을 제시했다. 한겨레신문 종사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국언론사뿐 아니라 한겨레신문 창간과 이념, 보도 방향 등에 이르기까지 30년 정도 근무한 나도 잘 모르거나,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안까지 세세하게 잘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나도 한국언론사와 한계레신문을 더욱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한겨레신문사는 자신의 탄생과 활동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 책을 하루빨리 번역 출판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의무는 아니더라도 저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 종사자뿐 아니라, 한국의 언론민주화운동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이전 08화 '언론 불신시대'에 다시 읽는 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