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의 전후사>
도쿄,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일장기를 단 검은 버스나 트럭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타고 확성기로 한국과 중국을 매도한다. 사람이 악을 쓰면서 말을 하지 않을 때는 '기미가요'나 군가를 귀청이 떨어지도록 크게 튼다. 일본의 패전일이나 천황과 관련이 있는 날이면 유독 이들의 활동이 왕성하다. 바로 전형적인 일본 우익의 모습이다.
어느 나라에나 우익은 있지만 일본 우익만의 특성이 있다. 모든 나라의 우익은 대체로 국수주의, 자국중심주의, 복고주의를 내세운다. 일본의 우익은 여기에 천황을 절대로 신봉하는 '천황주의'가 더해진다. 천황이 있기 때문에 국가도 있고, 국민도 있다는 천황 절대주의를 빼놓고는 일본의 우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익'의 전후사>(강담사현대신서, 야스다 고이치 지음, 2018년 7월)는 천황주의를 모태로 태동한 일본의 우익단체가 전후에 어떻게 변용되어 지금까지 왔는지를 시대별로 더듬으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일본에 우익을 다룬 책은 수없이 많지만, 전전에 형성된 우익의 뿌리부터 최근 온라인에서 기승을 부리는 '네트 우익(온라인 우익)'까지 역사를 통사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일련종 승려인 이노우에 니츠쇼가 만든 혈맹단의 얘기부터 시작한다. "한 사람을 죽여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모토로 삼아 1930년에 설립된 혈맹단은어 잇단 테러 행위를 한다. 그들의 목적은 '폐허 위에 이상사회를 세우려는' 사회주의혁명 세력과 달리 천황을 둘러싼 간신세력을 타파하고 천황 친정의 국가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쿠데타를 벌였지만 천황의 거부로 실패한 1936년의 2.26 사건이다. 이런 테러 중심의 사회변혁 노선이 우익하면 폭력, 테러의 이미지를 형성한 원류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본 우익 사상의 원류는 에도 말기 미도번에서 형성된 '미도학'으로 알려졌다. 미도학은 유학을 기반으로 신화 및 도덕을 중시하고 신분 및 사회안정을 주장했는데, 에도 말기에 천황을 앞세워 막부 체제를 타도하는 원동력이 됐다. 우익단체의 효시는 1881년 후쿠오카에서 도야마 미쓰루 등이 주도해 결성한 '현양사'가 꼽힌다. 구미열강의 식민지주의에 대항하고 국권을 강화하는 것을 내세운 현양사의 특징은 '대아시아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현양사의 해외 부문을 담당하는 조직이 '흑룡회'인데, 흑룡회는 당시 조선이 일본에 병합하는 과정에도 많은 관여를 했다.
메이지유신 전부터 생겨 테러 등의 폭력과 천황주의로 무장한 우익단체는 일제가 본격적인 전쟁 체제에 들어가면서 군부의 협력 세력으로 포섭된다. 그리고 일본의 패전과 함께 전전 우익단체는 세력뿐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궤멸된다. 그들이 불멸의 신으로 모시던 천황이 전쟁의 패배를 통해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또 미 점령당국은 전쟁을 지원했던 우익단체의 해체하고 주요 인사를 검거하면서 우파 세력을 무력화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우파는 다시 모양을 바꿔 부활한다. 냉전의 시작과 함께 미국이 '역코스' 정책을 펴면서 궤멸 직전의 우익세력도 '반공'이란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회생한다.
이 책에는 우익세력이 반공을 내세워 활약했던 시기, 재일한국인과 연대한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일거류민단 단장을 역임했던 조영주의 활동이다. 조씨는 관동군 참모로 중일전쟁의 단서를 만든 이시와라 간지가 만든 '동아연맹'에 깊숙하게 관여하며 가라테 달인 최배달(한국이름 최영의, 일본이름 오야마 마스타쓰)과 야쿠자 조직 동성회 회장이 된 마치이 히사유키(한국이름, 정건영)을 끌어들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한 가지 한국과 관련한 대목은 일본의 우익이 '친한'에서 '반한'으로 태도가 바뀐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한 우익 인사의 설명이다.
"한국이 군사정권이었던 시대, 일본의 우익은 한국의 군부에 두터운 파이프가 있었다. 우익에게 북한은 일한 공통의 적이었기 때문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일한에서 다른 역사인식 문제는 북한이 붕괴할 때까지 선반에 올려놓으려고 생각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일본 우익의 한국관을 한 발 더 깊숙하게 알게 됐다.
이 책은 이후 60년대 대학의 안보투쟁을 계기로 이에 맞서는 신우익 학생운동이 생기고 좌익 학생운동이 몰락하면서 우익학생운동도 쇠퇴하는 과정, 우익학생권 출신들이 사회에 나와 전문 우익운동가로 자리잡으면서 2006년 아베 신조 총리의 탄생과 함께 일본회의를 통해 헌법 개정 등 대중 우익운동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추적한다.
마지막에는 1990년대 말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네트 우익'을 다룬다. 이들은 길거리의 집회와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전통적인 우익과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 재일한국인이나 중국인을 폄훼하고 비방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
"이제 극우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야스쿠니신사나 이세신궁이 아니라 국정선거 선거운동 마지막 날 아키하바라가 아닐까"라는 저자의 말은 일본 극우의 세력 교체를 잘 보여준다. 아키하바라는 이제 전자상품의 거리가 아니라 선거 마지막 날이면 온라인 우익들이 모여 자민당의 우익세력을 응원하는 장소로 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네트 우익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네트 우익의 다른 나라에 대한 배타적인 행위에 전통 우익이 비판을 하는 등 거리감도 있었지만, 점차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의 관저 사이트에 극우의 주장이 공공연히 시민의 목소리로 실릴 정도로 일본 사회 전체가 극우화됐다면서 "우리들은 우익의 큰 바다에 살고 있다"고 한탄한다.
일본 우익의 역사와 현상을 아는 것은 그들과 이웃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그들이 우리나라를 공격과 비판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