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내외 종합 정보기관이 없다. 총리실 안에 있는 내각정보조사실(내조)과 공안경찰, 공안조사청이 세 정보기관이 국내외 정보 수집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3두 체제다.
그렇다고 일본의 정보 수집 및 분석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본은 미국과 맞짱을 뜬 태평양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국제전쟁을 치른 나라인 만큼 정보력의 수준은 대단하다. 한가지 좋은 예가, 1983년 일어난 옛 소련 전투기에 의한 대한항공 격추 사건이다. 처음엔 소련이 대한항공의 격추를 부인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자위대가 소련 전투기 조종사와 지상 기지 사이에 오간 무선 연락을 완전히 포착해 해독한 내용을 공개하자, 소련이 격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도 내조의 협력기관인 <라디오프레스>였다.
<내각정보조사실>(현동신서, 이마이 료, 2019년 5월)은 경합하는 세 정보기관 중에서 가장 앞서 달리고 있는 내각정보조사실의 조직과 활동 등을 주로 다룬 책이다. 내조뿐 아니라 경합 기관인 공안경찰과 공안조사청에 관해서도 각각 1장씩을 할애해 다루고 있어, 일본 정보기관 세계의 전체 모습을 대략적으로 엿볼 수 있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정보 요원들과 인터뷰, 관련자들의 저서, 자료, 보도 등을 통해 베일 속에 있는 일본 정보기관의 모습을 들춰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저자가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정보기관의 내막을 취재해 책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저저는 "내각정보조사실을 테마로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면서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 선배들이 쓴 책을 보고 노력했으나 수수께기가 많은 정보기관의 전모는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남의 비밀은 캐되 자신의 비밀은 감추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전모를 밝힌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을 보면, 일본의 정보기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윤곽은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내조가 일본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매주 화, 목요일에는 내조의 수장인 내각정보관이 반드시 총리와 만나 대내외 정보 상황을 보고하는데, 동석했던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 공안조사청장관이 이석한 뒤 단독 보고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본 신문은 매일 총리의 동정을 분 단위로 정리해 보도하는데, 2017년 통산 기록으로 볼 때 총리와 가장 빈번하게 만난 인물이 내각정보조사관었다고 한다. 그만큼 내각정보관은 총리에게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정보정치의 폐해를 이유로 정보기관의 장과 대통령의 독대를 없앴는데 국가를 위해서 이것이 과연 좋은 결정인지 의문이다. 정보기관을 정치공작이 아니라 나라의 안보를 위해 잘 쓰면 될 일인데 아예 원척적으로 독대를 없애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 삼칸을 태우는 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국정원이 전직 국정원장들을 고발하는 이상한 일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돼 있다. 1장에서 일본 정보기관의 전체적인 스케치를 하고, 2장과 3장에서는 내각정보조사실의 탄생 배경과 내각정보조사실의 정보활동을 다룬다. 4장과 5장은 각각 내조의 경쟁기관인 공안경찰과 공안조사청의 정보 활동을 다룬 뒤, 마지막 6장에서 다시 내조로 돌아가 내조의 미래를 전망한다.
내조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되지 직전 생겼다. 일본의 국제무대에 복귀하면서 점령군사령부가 했던 국내 극좌세력과 소련 및 중국의 적대국에 대한 정보 수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조는 총리실의 권한이 커지면 덩달아 권한도 커지고 있다. 또 아베 정권 때 내각정보관이었던 기타무라 시게루는 아베 총리의 특명을 받아 외무성을 제치고 북한 정보당국과 접촉하며 납치 사건 해결에 나서기도 했다. 인원은 250명 정도로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각 부처의 엘리트들이 파견돼 근무하고 있어 정보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내조가 국익 수호와 관련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국정원처럼 국내정치에 관여하거나 공작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베 정권 때 내조는 아베의 총재선거 경쟁자인 이시바 시게루 의원의 동향을 밀착 마크해 보고했고, 정권에 비판적인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성 사무차관의 명성에 흠을 내려고 그가 마치 성풍속업소에 출입해 난잡한 일을 한 것처럼 매스컴에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이 내용은 일본 영화 <신문기자>에도 나온다.
공안경찰은 경찰의 첩보조직이다. 전국적으로 10만명의 공안경찰이 '전국 일체의 원칙' 아래 수사활동을 벌인다. 규모가 최대이고 미행, 도청, 시찰 거점 설치 등의 독특한 수법을 상용해 밑바닥 정보 수집에 발군의 능력을 보인다. 경찰서 안에서는 경비국이 공안경찰을 지휘한다.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있을 때도 경비국 소속 경찰이 청사 경비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이 경비도 하면서 정보 수집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공안경찰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대상조직에 협력자를 만드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데, 저자가 구한 매뉴얼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협력자를 만든다. 우선 대상으로 발굴하고 기초조사를 한 뒤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리고 접촉을 통해 협력자를 확보하고 운영에 들어가며, 협력자가 더욱 협력을 하도록 누진 육성을 한다는 것이다.
공안조사청은 샌프란시스코조약 체결 이후인 1952년 7월 극좌폭력집단의 활동을 감시하는 정보기관으로 탄생했다. 법무성 외청으로 설치됐고, 현재 전국적으로 2000명 정도의 요원이 활동한다. 이 기관의 특성은 다른 정보기관과 달리 강제수사권이 없고, 정부 수집과 분석을 분리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원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고, 정보원에게 보수도 두둑하게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의 가장 주된 임무가 파과활동방지법에 따라 위험 단체를 해산하는 것인데, 아직도 한 번도 해산에까지 이른 적은 없다고 한다. 1997년 옴진리교가 가장 해산에 근접한 곳까지 갔지만, 이런 극약 결정이 사회에 주는 악영향 때문에 적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정보기관들은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맏아들 김정남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체포된 사건이다. 공안경찰은 김의 입국시켜 일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확인하려는 생각을 했으나 법무성 입국관리국에서 현장에서 체포해 조산한 뒤 귀국시켰다. 이런 불협화 때문에 항상 나오는 것이 통합정보기관의 신설이다. 하지만 각 성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없던 일로 끝나곤 한다. 일본의 정보기관들은 주로 국내 좌익세력에 대한 정보 수집을 명분으로 탄생했다. 따라서 점차 국내에서 좌익세력의 위세가 시들해지면서 이들의 위상도 자연히 흔들리게 됐다. 이런 가운데 이들 정보기관들이 생존을 위해 개쳑한 새로운 분야가 경제, 국제, 테러 등이다. 이 책을 보면 일본의 정보기관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