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과 창가학회>, 일본 연립정권
일본의 정당 중에서 공명당만큼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당도 없을 것이다. 공명당은 '평화의 당' '복지의 당'을 표방하면서도 전혀 색깔이 다른 자민당과 20년 이상 '찰떡 궁합'의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다. 연립정권 안에서 자민당의 우경화를 견제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론도 있지만, 자민당의 우경화에 대한 바판여론을 중화시켜주는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박쥐'라는 비판론도 있다.
공명당의 힘은 모체인 종교단체 '창가학회'에서 나온다.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정당이기 때문이다. 창가학회는 일본의 승려 니치렌(일련)의 가르침인 '생명철학'을 믿는 신도단체에서 출발했다. 통칭 800만명에 달하는 창가학회 회원들의 조직 및 자금 동원력이 공명당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또 창가학회 3대 회장 출신으로 지금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이 아직도 학회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즉, 공명당 뒤에는 창가학회, 창가학회 뒤에는 이케다 회장이 있다고 보면 된다.
공명당의 위세는 일본의 선거제도가 '소선구제-비례연립제'로 바뀌면서, 그리고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맺은 뒤 더욱 강해졌다. 선거에서 대략 7% 전후의 득표율을 올리고 있지만 중대선구제보다 조직 및 자금 동원력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쉬운 소선거구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명당은 지역구에서는 일부 자신들이 정한 소선구에서만 전력하면서 그 외의 지역구에 나온 자민당 후보를 지원하는 대신 비례구에서 자민당의 지지를 얻는 식의 선거 협력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민당을 '공명당에 업혀 있는 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은 윈-윈이라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무이념 이권 야합'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과 창가학회>(집영사신서, 사다카 마코토 지음, 2016년 5월)는 자민당과 창가학회의 무이념 야합의 과정과 위험성을 다룬 책이다. 자민당보다 창가학회와 공명당에 더욱 초점을 맞춰 비판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자민당의 당 기관지인 <자유신보>가 1994년부터 95년까지 20차례에 걸쳐 창가학회를 무자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를 뼈대로 하는 정치단체가 국가권력을 핵심에까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나온 지 5년 뒤인 1999년, 자민당은 태도를 돌변해 자민당, 자유당, 공명당의 자자공 연립 정권을 맺는다. 그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2차 내각인 2003년부터는 아예 '자공'만의 연립을 꾸린다. 이런 체제는 그 뒤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민당의 공명당에 대한 결렬한 공격은 정치개혁 문제를 둘러싼 갈등 끝에 자민당을 탈당한 오자와 이치로가 공명당과 손을 잡고 비자민 호소카와 정권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됐다. 이때 자민당 쪽은 "오자와가 금기를 어겼다"(고토다 마사하루 전 관방장관의 표현)고 비판했다. 그러나 자민당 안의 권력 및 노선투쟁과 연결되면서 공명당은 자민당과 연립정권 파트너로 초대됐고,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로 이어지는 보수강경파의 '세이와카이' 정권이 이어지면 자공연립의 밀착은 더욱 강해졌다. 서로에 대한 비판은 이런 속에서 사라지고 야합만 남게 됐다.
특히, 자민당 안에서 가장 보수강경 파벌인 세이와카이가 정권을 잡으면서부터 평화와 복지를 앞세우는 공명당과 자민당 사이에 이념의 모순이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자민당도 공명당도 이런 이념의 차이에 마음 쓰지 않고 오직 수적 우위의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공명당의 정책과 이념으로 볼 때 찬성하기 어렵고 공명당이 반대하면 통과하기 어려웠던 국가국기법(1999년), 이라크특조법(2003년), 교육기본법 개정(2006년), 특정기밀보호법(2013년) 등은 모두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의 지지 속에서 통과됐다. 특히, 저자는 2004년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의회 승인안이 채택될 때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 고가 마코토, 가메이 시즈카 등 3명의 중진 의원이 반대 또는 기권을 한 데 반해 공명당은 찬성했던 점을 거론하며 "그 결과 가토와 고가보다도 공명당이 '전쟁의 당'인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통박했다.
저자는 이런 공명당의 처신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공명당 비판자였던 후지와라 히로다쓰의 말을 몇 차례 되풀이 인용하면서 강력하게 경고를 한다. 후지와라는 이미 1969년에 "자민당 안에 있는 '우익 파시즘적 요소'와 공명당 안에 있는 '종교적 파나틱한 요소'가 결합하면, 일본의 의회정치, 민주정치는 아웃된다"고 갈파했다고 한다. 저자는 후지와라가 말한 '자민당 안의 우익 파시즘적 요소'는 세이와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공명당이 결합한 것이 지금의 자공연립정권이라면서, 후지와라의 경고를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을 보면 '평화' '복지' '교육'이라는 고상한 이념을 앞세운 공명당이 자신의 권력 유지와 이권을 위해 얼마나 집착하는지, 또 지원단체인 창가학회, 특히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케다 명예회장의 뜻에 얼마나 좌지우지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일본 정치도 한꺼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때의 당혹감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의 미덕은 일본 정치에서 보이는 것, 보여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상호 추천을 고리로 한 자민당과 공명당의 선거 협력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최근 솔솔 나오고 있다. 이런 파열음이 과연 공명당 의 홀로서기일까 아니면 더 많은 실리를 얻기 위한 몽니일까. 이 책의 주장대로라면 후자일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 그런지 한 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