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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01. 2022

무엇이 '평범한 도련님'을 '극우 상징'으로 만들었나

아베 신조, 아베 가문, 아베 삼대, 시모노세키

아베 신조(1954.9.21~2022.7.8) 전 일본 총리는 일본 정치사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일으키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한쪽에서는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꾼 매파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는 데 반해,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국제 흐름을 잘 읽고 대처해며 일본의 국익을 지키고 영향력을 강화한 실용적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숨진 뒤 결정된 국장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열띤 찬반 양론 그가 여전히 뜨거운 논란의 인물임을 잘 보여준다. '위에서 방침이 정해지면 모두 군말없이 따르는 순응주의가 몸에 밴 사회'라는 일본 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보면, 아베 국장에 대한 찬반 논란은 매우 이례적이다. 공기(분위기)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가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주장사회로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베라는 인물이 그 정도로 논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베 평가를 둘러싼 일본 안의 분열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그가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한국을 가장 노골적으로 멸시, 경시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극우 성향의 대표 정치인이란 점이 원래부터 호감을 사지 못하고 있던 차에 2019년에 한일 갈등의 전선을 역사에서 경제, 안보로 앞장 서 주도하면서 그에 대한 비호감이 일본 정치인 중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선두를 다툴 정도로 강화됐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한일본문화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 조문하면서 그를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고 칭송한 것은 생뚱맞기 짝이 없다. 조문 때는 되도록 가혹한 표현을 삼가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더라도 한국과 갈등, 중국과 대립을 주도해온 그를 한국의 대통령이 아시아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배알도 없는 아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이 표현은 윤 대통령의 대일인식과 관련해 두고두고 논란을 불러일으킬 게 틀림없다.


아베 신조는 유소년 및 학창 시절과 회사원 시절, 이념적 편향도 특별한 관심사도 없었던 평범한 도련님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정치에 입문해 어떻게 극우를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일본이 전후 70년 가까이 형성해온 정책을 뒤흔들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르포르타주를 통해 해명하려고 한 책이<아베 삼대>(서해문집, 아오키 오사무 지음, 길윤형 옮김, 2017년 11월)다. 저자인 아오키는 한국판 서문에서 "이 책은 일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아베 총리의 친할아버지인 간씨와 아버지 신타로씨, 그리고 본인의 유소년기부터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의 과정을 철저히 취재해, 도대체 아베 신조라는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현대 일본에 왜 이런 위정자가 탄생했는가에 대해 아무도 처음으로 분석한 르포르타주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의 서울특파원을 지낸 바 있는 아오키씨는 아베 간-아베 신타로-아베 신조로 이어지는 3대 정치인의 생각과 행적을 취재하기 위해 아베 가문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헤키쵸의 주민뿐 아니라 정치인, 가족, 동창, 회사 동료 등 아베 가문에 관해 알 만한 사람은 일일히 찾아다니며 3대의 행적을 치밀하게 추적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을 요약하자면, 3대인 아베 신조는 할아버지인 간, 아버지인 신타로와 달라도 너무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다.


저자인 아오키는 "신조의 친할어버지 간이나 아버지 신타로도 청년기부터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태어난 재능에 지성과 인맥을 쌓아가며 성장한 인물들이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나는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중략> 그러나 신조는 달랐다. 성장 과정이나 청소년기를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아무리 취재를 해봐도 특필할 만한 일화다운 일화가 나오지 않는다. 서글플 정도로 평범하고 어떤 특징도 없다. 선도 아니고, 강렬한 악도 아니다. 취재를 해도 매력을 느낄 수 없었고,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고 말했다. 아베 신조는 논픽션을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평전'에 적합한 취재대상이 아니었다고까지 폄하했다.


이 책을 보면, 아베 신조가 아베 3대 중에서 가장 열화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 간은 군부가 서슬퍼런 통치를 할 때 반전, 평화, 빈부격차 해소를 주장한 강골 정치인이었고, 아버지 신타로는 매파 파벌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단아=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알며 결코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가진 현장형 정치가였다. 반면 아베는 친가보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귀여움만 받고 자란 전형적인 안방 도련님이었다.


좀 샛길로 빠지는 얘기지만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아베 신타로의 재일동포, 한국과 개인적 인연이다. 일찍 고아가 된 그는 야마구치 지역구에서 기득권세력인 햐야시 가문(현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의 가문)과 이단아로서 대결하면서 이 지역의 또 하나의 이단아였던 재일동포 사업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아베 신타로의 시모노세키 집과 선거사무실을 제공한 사람이 재일동포 출신 사업가인 요시모토 쇼지다. 이 재산은 지금 아베 신조에게 상속돼 있다.


요시모토는 그동안 신타로와 관계에 관해 함구를 해왔는데 숨지기 2년 전인 2006년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 사람은 친척이 없다. 양친도 없고 형제도 없다. 자기 발 둘 데 없이 혼자 최선을 다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이니치와 닮았다. 선은 얇았지만 시선은 자이니치와 같았다."


신타로는 민단계뿐 아니라 총련계 재일동포로부터도 존경과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소수자를 대하는 포용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지낸 최세경씨와 고교(제6고, 오카야마고) 시절 단짝이었던 것도 친한파가 된 이유로 꼽힌다.


정치인 입문 이전의 무색무취의 평범한 아베 신조에게 굳이 정치적인 색채를 찾는다면, 추상적인 수준에서 기시 노부스케를 존경했다는 것 정도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극우의 상징'으로 성장했는가에 대해, 저자는 주위 사람의 말을 빌려 "마치 강아지가 늑대 새끼 무리에 들어간 뒤 늑대처럼 되고 말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평범한 청년에서 극우의 대표 정치인이 됐는가는 더욱 엄밀한 추적이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아베 신조가 외할아버지를 가장 닮으려고 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실 신조는 상당히 질이 떨어지는 '기시의 복제품'"이라고 평가했다. 친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는 외할아버지를 닮으려고 했고 닮았지만, 땅에 발을 붙인 정치 경력에서도, 지성에서도, 에너지와 정열 면에서도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열화하는 일본 정치의 원인 중 하나를 세습정치에서 찾는다. 아베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지역 기반(선거조직), 가방(돈), 간판(학력)만 물려 받으면 쉽게 정치가가 될 수 있는 세습정치가 일본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습정치라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아베 신조라는 괴물 정치인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동감이다. 세습정치가 일본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일본 정치 개혁의 주요 과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덧붙이자면,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는 아베 신조 가문과 관련이 없다. 한국에서는 아베 노부유키가 아베 가문이라는 틀린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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