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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18. 2022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국과 일본의 특수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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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검사 출신이 검찰 밖의 공직에 진출하는 경우가 두드러지게 늘었다. 윤 정부 이전에도 검찰이 자기가 가진 권한 이상의 위세를 부린다고 해서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성행했었는데, 윤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이 검찰 왕초 출신이어서 그런지 검찰과 검찰 출신 인사들의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따지고 보면 윤 정부에서는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도 사치인 것 같다. '윤석열파(윤파) 검찰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게 더욱 적절한 것 같다. 공화국도 '왕국'으로 표현을 바꾸고 싶다. 최근 윤 정부에서 등용된 검찰 출신의 면면을 보면 거의 다가 윤 대통령과 특수부에서 일을 같이했거나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이른바 '윤파 특수 검찰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행정조직이 일본의 것을 본 받아 만들어졌지만, 검찰 조직이야말로 일본의 검찰을 그대로 복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정부에서 검찰 출신과 검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을 보면서, 일본 검찰과 한국 검찰의 모습을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래서 20여년 전 특파원 시절 사 놓은 <특수 검찰>(암파신서, 우오즈미 아키라 지음, 1997년 9월)을 꺼내 다시 읽었다. 

<교도통신>의 사회부 기자 출신으로 검찰을 취재했던 저자가 정계, 재계 핵심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활약상을 다룬 책이다. 일본 정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리쿠리트 사건과 제네콘(대규모 건설사) 부정 사건을 직접 밀착 취재했던 저자가 일본의 역사를 바꾼 특수부 수사 사건과 함께 전후 특수부의 성립과 이후의 족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 정치 최대의 거물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를 기소했던 록히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취급한 사건 중에서 가장 빛나는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나카는 록히드 사건과 관련해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를 받을 당시 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후 실세로 군림하며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시퍼렇게 살아 있는 권력'이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지금도 일본 시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록히드 사건 때 정치권의 갖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에 과감하게 메스를 댄 것에 기인한 면이 크다. 물론 그 이후 오사카 특수부 검사가 증거를 조작한 것이 발각되어 기소되는 등, 일본 특수 검찰의 위신이 예전에 비해 추락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특수부 검사에 비하면 일본의 특수부 검사는 훨씬 기개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잡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죽은 권력'에만 주로 손을 대왔다. 전직 대통령 수사만 하더라도 정권이 바뀐 뒤 새 권력의 의중에 맞추어 벌이는 '정치 수사'가 대부분이다. 이명박 정권 때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문재인 정권 때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도 그런 범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검찰에 대한 신뢰는커녕 검찰에 대한 비아냥만 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검찰은 한국 검찰보다 돈과 권력에서도 깨끗하다. 저자는 맺은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검사들)이 자랑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금전과 주색의 유혹과는 무연해왔다는 것이다. 전후 고도경제 성장 아래서 비대화하고 부패해온 일본의 관료기구 중에서 특수부는 이권에 연루되지 않은 아주 드문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깨끗한 처신을 해왔기 때문에 일본 검찰은 더욱 당당하게 수사를 해왔을 것이다. 한국의 특수부 검사가 스폰서나 변호사 등 사건 관계자들이 제공하는 술과 여자, 그리고 돈과 관련한 추문에 휘말리는 경우가 간간이 드러나는 것과 잘 대비된다.

또 한 가지 일본 검찰과 한국 검찰이 가장 다른 것은 검찰 출신 국회의원을 눈을 씻고 찾아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판사 또는 변호사 출신도 거의 없다. 내가 2009년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일본의 국회의원 편람을 일일히 들추며 찾아본 결과, 창가학회의 정치조직인 공명당에 단 1명 검사 출신이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판사, 변호사 출신도 찾기 힘들었다. 우리나라는 모르면 몰라도 국회의원 가운데 검사를 포함해 법조인 출신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심판자가 공정성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플레이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심판자이면서 플레이어까지 하려는 한국의 검찰과 시종 심판자에만 머무는 일본 검찰의 차이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차이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과 일본의 특수부 검사의 공통점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특수부 검사들은 엘리트 의식이 매우 강하다. 일본 특수 검사의 경우 검사 임용자의 극히 일부만 특수부 검사로 임용될 뿐 아니라 '내가 나라를 지킨다'는 자만심이 아주 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를 실행하기 위한 처신과 자기가 처리한 사건을 입신출세에 활용하는 행태가 다를 뿐이다. 특수부라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조직 보호 본능이 강한 것도 비슷하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제3장 특수부의 탄생이다. 점령군사령부는, 특히 일본의 전쟁조직 해체와 민주화를 담당했던 민정국은 경찰조직을 거느리고 있던 내무성을 해체했듯이 전전에 범죄 수사의 권한을 독점했던 검찰의 권한을 크게 약화시켜려고 했다. 그러나  1948년 소련의 베를린 봉쇄와 함께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도 민주화에서 반공기지 건설로 전환됐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

점령군사령부의 일제 전쟁 조직 해체와 민주화 작업의 일환으로 패전 2년 뒤인 1947년 내무성은 폐지됐다. 경찰은 자치경찰(인구 5천명 이상 도시)과 국가지방경찰(인구 5천명 이하)로 분할되는 대신 염원인 '제1차 수사권'을 손에 넣었다. 검찰은 해체를 의미하는 지방분권화를 피했으나 경찰이란 수족을 잃고 '수사의 지휘자'에서 '법정의 문'에 갇혀 경찰과 재판소의 중계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아시다 히토시 총리가 연루된 소화전공 의혹사건이 터지고 점령군사령부의 내부 알력 속에서 이 사건 수사를 민정국이 경찰로부터 빼앗아 검찰에게 맡긴다. 검찰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화전공 의혹 사건을 점령군사령부의 기대에 맞게 잘 처리했고, 이때 수사 조직이 도쿄지검 특수부의 모태가 됐다. 당시 소화전공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도쿄지검 차석으로서 '미스터 검찰' '특수부의 산모'로 불리는 바바 요시츠구다.  

현재 일본 검찰에는 도쿄 외에 오사카, 나고야 세 곳에만 특수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책이 나온 뒤 일본 특수 검찰의 행태를 보면, 반드시 우리나라 검찰이 본 받을 만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유죄를 얻어내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기도 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보석 불허 등으로 구치소에 한 없이 가둬 놓는 '인질 수사'를 마다하지 않는 곳도 특수부다. '특수부 수사 사건 100% 유죄'라는 신화는 이런 무리 속에서 이뤄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수부가 손 댄 사건은 100% 유죄를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일본 특수부 검사를 폭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특수부 검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의 유무죄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 사건이 보도를 통해 얼마나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느냐에 더욱 신경을 쓴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한 쪽은 유죄 100%라는 강박을, 또 한 쪽은 여론 재판 성공 여부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보기엔 두 쪽 모두 '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서 정상적인 행태가 아니다. 

조사를 해보니, 이 책은 <파워 검찰>(파라북스, 이문수 번역, 2004년)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한글로 번역 출판됐다.



*참고로 2009년 당시 썼던 칼럼을 붙여놓는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05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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