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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06. 2022

알아서 기는 '천황 관련 보도'의 배경

저널리즘, 테러, 폭력, 금기, 황실 보도

전후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안보투쟁이 끝난 1960년 12월, 월간 잡지 <중앙공론(츄오코론)>에 충격적인 내용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풍류몽담>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어느 날 밤 꿈을 꾼 내용을 담았다. 도쿄에서 폭동이 일어나 황궁이 점령되었다. 황궁광장에 가보니 황태자와 황태자비(지금의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비)가 목이 잘린 채 숨져 있고, 천황 부부(히로히토 당시 천황 부부)의 목 없는 시체가 땅바닥에 굴러 있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은 60년 안보투쟁과 천황제를 패로디한 작품으로 문학계에서도 평가를 받았지만, 천황제를 신주 단지처럼 모시는 우익을 크게 격분시켰다. 그 여파로 다음 해인 61년 2월 우익 소년이 중앙공론사 사장 집을 칩입해 가정부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하고 사장 부인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 5명을 살상하는 비극을 불러왔다.


이 테러 사건은 언론, 출판계에 충격과 공포를 줬다. 이 사건 이후 천황가를 폄훼하는 내용의 연재나 기사를 스스로 검열하여 자숙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건이 일어난 61년 2월  잡지 <문학계>에 연재됐던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 제2부 '정치소년 죽다'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고 봉인된 것이 좋은 예다. 즉, '풍류몽담 사건' 이후부터 언론 출판계의 황실 폄훼 보도에 대해 우익과 궁내청이 항의하면 출판계가 사과하거나 출판물을 회수하고, 심지어 스스로 보도를 자제하는 관행이 확립됐다. 이런 점에서 이 사건은 2차대전 뒤 언론 출판계에 황실 타부(금기)를 부활시키고 자기검열의 풍조를 불러온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황실 타부>(창출판, 시노다 히로유키, 2019년 7월)는 쇼와시대(1926~89)부터 헤이세시대(89~2019), 최근의 레이와시대(2019~)까지 언론 출판계의 황실 타부의 실태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시대 변화와 함께 어떻게 변용돼왔는가를 살펴본 책이다. 이 책은 60년 풍류몽담 사건부터 최근 현 천황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황태자의 장녀 결혼 소동까지 17편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각 사례가 시대 순서대로 소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시대에 따라 황실 보도 금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우익은 절대로 천황가를 비판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신우익인 네트우익은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천황가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2015년 아키시노노미야 황태자의 둘째딸이 온라인 협박을 받았는데 범인은 아사히신문을 공격한 바 있던 네트우익 청년으로 드러났다. 그가 한국에 대한 비난 분위기를 자극하기 위해 한국 사람을 가장해 황족을 협박한 것이다. 또 우익 잡지가 상업적 이익을 노리고 천황가의 비행을 해명해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며 비행을 폭로하는 기사를 싣기도 한다.


저자는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황실 타부는 타부 중에서도 '최후의 타부'로 남아 있다면서, 타부의 대다수는 미디어 쪽의 자기규제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애초 폭력에 대한 공포로 시작한 황실 타부가 실제로 폭력이 행사되지 않는데도 공포 이미지가 영향을 주어 타부를 지탱해가는 구조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황실 보도를 둘러싸고 과잉의 자기규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한 발 삐끗하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황실 타부를 너무 언론 출판 쪽의 자기 규제에 돌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황실을 폄훼하고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 우익이 실제로 항의, 총격, 편집실 난입, 테러 등의 폭력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언론 출판 쪽의 자기 규제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언론 출판 쪽의 책임보다 자유스런 보도와 표현을 자유를 힘으로 억압하려는 우익의 폭력행위가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풍류몽담>은 사건 이후 절판됐다가 2011년 11월 전자책으로 복간됐다. 전자책을 낸 사람은 이 사건 당시 <중앙공론>의 편집부 차장이었다가 좌천된 직원의 아들이다. 이 아들이 왜 그 시점에 전자책으로 문제의 소설을 부활시켰는가를 밝힌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풍류몽담>이 쓰여진 것은 그토록 뜨겁게 타올랐던 60년 안보투쟁이 끝난 시기로, 결국 이 나라는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작가에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에서 엄청난 원전 사고가 일어나 시민이 분노했는데도 정치도 사회도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3.11 후의 상황과 60년 안보 투쟁 직후의 상황이 매우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실 타부라는 책의 주제를 떠나,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그동안 언론 보도로는 알지 못했던 일본 황실과 관련한 내막을 알려주는 것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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