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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27. 2022

일본에선 '공기'를 읽지 못하면 살기 어렵다.

<공기와 세간>

'KY'를 아시나요. 일본어로 '공기(쿠키, KUKI)를 읽는다(요무,YOMU)'는 문장에서 '공기'의 K와 '읽는다'의 Y를 따서 만든 조어다. 그러면 "공기를 읽는다"는 뜻은 무엇인데라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 말로는 "분위기를 파악한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일본에 살기가 어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정해진 답변이 있다. "여행하는 사람한테는 최고지만, 사는 사람에게는 최악인 것 같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일본 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을 어겨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친철하게 대한다. 여행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착해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을 부과한다. 재일동포가 생존을 위해 일본 사회의 공기를 읽어야 하는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만큼 재일동포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

작가이자 연극연출가인 코우카미 쇼지가 쓴 <'공기'와 '세간'>(강담사현대신서, 2009년 7월 초판)은 외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 사회 특유의 '공기'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한 프랑스 유학생이 지하철에서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 몇 시간 만에 그대로 지하철 차량 선반 위에 있는 가방을 찾고 일본 사회의 훌륭함을 절찬한다. 얼마 뒤 이 유학생은 지하철에서 지팡이를 집은 노인이 서 있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유모차를 혼자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부인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데 분개한다. 저자인 코우카미는 이 두 일은 실은 '세간'과 '사회'를 나눠 이중기준으로 사는 일본인의 습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간이란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가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아줌마 집단이 다른 사람들이 앉으려고 하는데도 동료들의 자리를 맡아놓은 채 미안해 하지도 않는 것도 세간의 논리로 설명한다. 세간은 아는 사람들만 중시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 즉 사회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세간'과 '공기'의 관련성에 관해서도 설명하는데, 공기는 "느슨해진 세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간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세간을 "자신과 이해관계에 있거나 장차 이해관계를 가지게 될 사람들의 총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세간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증여와 호혜 관계에 있고, 둘째 장유유서의 질서가 있으며, 셋째 공통의 시간의식을 지니고 있고, 넷째 차별적이고 배타적이며, 다섯째 신비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농어업을 하는 예전의 촌락공통체가 전형적인 세간이다. 일본 특유의 부락 차별도 차별을 통해 자신이 사는 공동체(세간)의 단결을 이루려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으로 단단히 엮어 구성원의 사회안정망 노릇을 했던 세간이 세상의 변화, 즉 도시화와 경제 및 정신의 국제화와 함께 느슨하고 유동화하게 됐고, 이런 유동화한 세간이 '공기'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결국 세간의 다섯 가지 특징 중에서 한두 가지가 빠진 것이 공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직장과 학교, 사회에서 아직도 일본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을 억압하고 있다. "공기를 읽어라"는 말은 이렇게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세간, 즉 공기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들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 일본 사람들은 친구가 만나 음식을 시킬 때도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이 있음에도 전체 분위기가 어떤지를 살피면서 메뉴를 선택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것이 공기의 예라고 말한다. 

저자는 전체적으로는 국제화의 가속 등 사회의 변화와 함께 공기의 압력도 옅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해 오히려 공기가 강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환경파괴가 일어나는 동시에 환경 보호도 강화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그는 재일동포에 대한 증오 행위도 우익적 생각이 아니라 '예전의 좋은 시절'을 재생하려는 '세간 근본주의자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일본 사회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이 책을 보니, 바로 공기와 세간의 탓이 큰 것 같다. 저자는 세간과 공기의 압박에서 이기는 방법으로, 그런 굴레에서 도망가거나 복수의 공동체에 속하면서 위험을 회피할 것을 권한다. 공기와 세간이란 개념을 그대로 사용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설명하기는 힘들겠지만,  이지메나 히키코모리 등 일본에서 현저했던 현상이 우리사회에도 점점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의 현상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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