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를 감추게 하는 감정, 수치심

2부 존중받지 못한 감정들, 그림자가 되다.

by 한아름

엄마는 그 지역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넷째 딸이었고, 아버지는 같은 지역 머슴집 장남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부터 외면받았고, 외갓집에서는 엄마를 서울로 보내 결혼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엄마 뱃속에는 내가 있었다.
결국 결혼은 이루어졌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엄마는 무서워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나을까 말까를 고민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그런데 나으니까 딸인 거야. 그래서 너를 낳고 사흘 만에 밭에 나갔지. 죄인이 된 것처럼. 할머니 할아버지 눈치 보면서.”

엄마는 추억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너무나 아팠다.


엄마와 이모들은 모이면 꼭 그 얘기를 녹음기 틀듯이 했다.
“엄마가 너 아니었으면 그 고생 안 했어.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

그 말이 농담처럼 웃으며 나올 때,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엄마의 그 추억담은 내 안에서 ‘존재의 부끄러움’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끄러운 아이라고 느껴졌구나

그래서 나는 튀지 않으려 조심했고, 말할 때는 목소리를 낮췄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그동안의 내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부족하고’, ‘나쁘고', 미움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감정을 숨기고, 욕구를 숨기고 나를 숨겼다. 대신 엄마의 감정을 알려고 하고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를 알려고 하고, 그리고 엄마를 알려고 했다. 그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숨기려고 하는 그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었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미안하고 미움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느낌,
말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에 새겨진 감정.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두려웠고,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망설여졌다.
항상 누군가가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도,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창중 씨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때 힘든 엄마를 웃게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창중 씨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전교 1등을 한 날, 담임선생님 말했다.
“창중이는 참 기특하지. 집안이 어려운데도 전교 1등이잖아.”
그 말이 칭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창중 씨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뭔가를 증명해야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 한 자리를 차지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창중 씨는 오랜만에 아빠 집에 갔다.
아빠는 전교 1등 창중이를 자랑하고 싶으셨나 보다.
“창중아, 축구장 가자. 아빠 친구들도 온다.”

함께 축구장에 가서, 아빠 친구들께 인사도 하고, 처음엔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한참 후, 창중 씨는 축구공보다 가지고 간 닌텐도에 빠져 있었다.
그러자 아빠는 갑자기 다가와
“지금 뭐 하는 거야? 버릇없이"라며 뒤통수를 때렸다.

“너 때문에 창피하잖아. 애가 눈치가 없어!”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아빠 친구들이 아무 말도 못 한 채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창중 씨는 아프다기보다 부끄러웠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엄마랑 아빠가 또 싸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수치심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문제처럼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날 창중 씨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아픔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건 ‘사람들 앞에서 아빠에게 모욕당한 나’에 대한 존재 자체의 부끄러움이었다.

잘못한 게 없었는데도,
“내가 뭔가 잘못했나 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창피한 사람인가 봐.”

이 감정은 마음속에 오래 남아,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자신의 감정은 숨기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삶으로 이어졌다.


창중 씨는 지금도 웃는 얼굴이 익숙하다.

누군가가 뭔가를 요구하면 “응, 괜찮아. 나야 뭐”라며 흔쾌히 들어준다.
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을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뭘 느끼는지 잘 모르겠어요.”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그날의 축구장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느꼈던 작아진 나,
모든 잘못이 내 탓이 된 것 같던 그 순간이 지금도 여전히 마음 한편을 눌러앉고 있다.


수치심은
어릴 적 반복적으로 받은 '존중받지 못한 경험'들이 쌓여
"나는 있는 그대로는 사랑받기 어려워"라는 믿음을 만든다.


수치심이 쌓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표현하다가도 “오버하는 거 아냐?”라는 시선을 걱정하게 되고, 칭찬을 받아도 “아니에요”라며 급히 선을 그으며, 나를 드러내는 일이 자꾸만 두렵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튀는 것 같으면 움츠러들고, 내가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해서 얼굴을 못 들고, 내 속마음을 말하고 나서 “괜히 얘기했나?”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배운다.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이 낫다.
기대하기보다는 내려놓는 것이 안전하다.
있는 그대로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사랑받는다.

그렇게 수치심은 우리가 가장 우리다워야 할 순간마다 조용히 발목을 잡는다.


사실, 틀린 건 내가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한 상대의 반응이었다.

수치심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은 어른들이었다.

“왜 울어?” “그건 네가 잘못했잖아.”
감정을 듣기보다 판단했던 말들,
그 말들이 내 감정을 ‘틀린 것’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존중받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고,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서툴렀던 것뿐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기뻤던 순간,
속상했던 말,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내가 나로 존재했던’ 중요한 순간들이라는 걸.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성숙한 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용기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연습해보려 한다.
민망해도, 어색해도, 내 기분을 말하는 연습.
내 속마음을 그대로 안아주는 연습.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을 느껴.”
“그건 내게 소중한 일이야.”
“이 감정은 나를 위한 신호야.”

수치심은 감추는 감정이 아니라, 회복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회복의 시작은
내가 내 감정을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다.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혹시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잘못한 게 없는데
괜히 미안해졌던 순간.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처럼 느껴졌던 기억.
화를 내지 못하고,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웃으며 넘겼던 감정들.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이,
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입을 닫고 감정을 감춘 것뿐입니다.


오늘 하루, 그때의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래, 그땐 너무 부끄러웠지.
그 감정은 틀린 게 아니야.
넌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었던 거야.”


감정은 드러내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제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사례는 창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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