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살아낸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일 수 없었다.
일어나야 하는 걸 알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해야 할 일도 있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난 마음과 몸의 언어를 무시하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의 말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천근만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큰 눈으로 슬픔을 표현하며
온몸으로 몸부림치듯이 나도 그렇게 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정말 꼭 해야 하는 일만,
간신히, 어떻게든, 겨우겨우 해냈다.
그 외의 시간은 멍했다.
말도 줄었고, 눈물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가 40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늘 앞만 보고 달려왔고,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멈춰버린 것이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제 나도 나이 탓인가?’
‘내가 너무 약해진 건가?’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알 것 같다.
그것은 나이 탓도 약해진 것도 아니고
너무 오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버텨온 마음의 경고음이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무기력이라는 벽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을.
무기력은 단숨에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다.
감정들을 너무 오래 억누르고,
마음속에 쌓이고, 응어리지고,
결국 감정의 회로가 멈추며 생긴 그림자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다.
너무 많이 해내려고 애썼고,
너무 자주 꺾였고,
너무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제로가 되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찾아온 감정이다.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경민 씨는 1년 정도를 매일 이력서를 썼다.
서류, 면접, 또 서류, 또 탈락..... 끝없는 반복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지쳐서 이젠 멈추고 있다.
“이젠 어디에도 내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안 될 걸 알면서 왜 해야 하죠?”
그는 이불속에 누운 채, 하루 대부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게임 속으로 도망간다.
그에게 사람들이 말했다.
“그렇게 누워 있지 말고, 뭐라도 해봐.”
“네가 의욕이 없으니 일이 안 풀리는 거야.”
"넌 지금 게임이 하고 싶냐? 생각이 있냐? 없냐?"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경민 씨가 얼마나 기대하고, 실망하고,
다시 또 애써왔는지를.......
그의 무기력은
포기의 결과가 아니라,
희망이 자꾸 꺾인 끝에 남은 지친 마음이었다.
30대 초반의 주영 씨는 하루가 정신없이 바쁘다.
모든 일이 동시에 쏟아졌다.
보고서, 회의, 전화, 메일…
어떤 걸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걸 말할 수도 없었다.
우물쭈물하다가 상사에게 깨지는 것은 매일의 일과가 되었었던 어느 날,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그날은
“넌 왜 이렇게 우유부단하니”라는 한 마디에 무너져 버렸다.
그는 사무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후, 출근이 무서워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는 멍했다.
“왜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지?"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지?”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너무 약한 건지…다른 사람들은 다들 잘하는데....”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주영 씨의 무기력은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끝없이 채워야 하는 역할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마음의 무력감이었다.
무기력은 이렇게 다양한 얼굴로 찾아온다.
이유 없이 모든 게 귀찮아질 때, 좋아하던 것도 시들해질 때,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냥 가만히 있고 싶고, 아무와도 말 섞고 싶지 않을 때......
겉보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같지만 그 안은 너무 많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픔, 분노, 자책, 두려움, 실망, 포기…
무기력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차단해 버린 상태다.
무기력은 우리를 해야 할 일을 미루며 자책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피하며 외롭게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게 되고, 끝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다.
정신력이 약한 것도 아니다.
그건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너무 많아진 끝에
마음이 스스로를 꺼버리는 보호 반응이다.
무기력은 우리가 보지 못한 감정의 그림자다.
실망과 좌절을 말하지 못한 채 누적된 슬픔, 책임과 역할 속에서 사라져 버린 나, 하고 싶은 말, 표현하지 못한 욕구, 꾹꾹 눌러온 ‘도움받고 싶다’는 마음......
이 모든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무기력으로 모습을 바꾸고 우리 삶을 멈춰 세운다.
무기력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제 나를 좀 돌봐줘.”
“그만 참아도 돼.”
“나를 먼저 사랑해 줘.”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 깊은 공허함으로 빠져든다.
이제는 안다.
무기력은 내가 약해서 생긴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애썼던 마음의 마지막 저항이었다는 것을.
움직이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견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 해낸 것이다.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혹시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 있었던 날.
다른 사람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춰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밤.
괜히 미안하고, 말없이 눈물이 났던 시간들....
그건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만큼 많이 버텨왔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그때의 당신에게 말해주세요.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야.
너는 살아냈잖아. 지금은 그것으로도 충분해.”
무기력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이 필요하다는 마음의 신호입니다.
숨이 차도록 달려온 당신, 조금 멈춰도 괜찮습니다.
다시 천천히 살아도 됩니다.
이 글에 나오는 사례는 창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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