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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Oct 22. 2023

뒷좌석의 베스트프렌드

27년 만에 그러니까 인생 처음으로 혜순은 나에게 ‘알 권리'를 허락했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캐나다로의 출국을 몇 달 남겨두지 않았던 어느 날 식사를 함께 하던 중 혜순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캐나다에 가기 전에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평생 바라오 던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쿨한 모녀 관계'의 서막을 여는 그 질문에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며 대답했다.


“좋지.”


그 주 주말 나는 혜순의 남자친구(라는 호칭이 다소 남사스럽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달리 다른 표현을 못 찾겠으므로 사용)를 정식으로 소개받았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과거의 무수한 소개팅과 선자리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랍스터 꼬리와 안심 스테이크 구이가 메인인 디너 코스를 먹었다. 아름다웠을 창밖의 전망과 훌륭했을 요리들이 무슨 맛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 중매 선자리에 앉아있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어색하고 민망하고 불편했다. 혜순과 나란히 앉아 나와 마주 보며 식사를 했던 아저씨는 나보다 어색하고 민망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하고 민망한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모든 걸 공유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게다가 그것이 현재나 미래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상대방에게 이해를 받든 못 받는 알려야 하고, 상대방은 ‘알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럴 권리가 있다는 걸, 그리고 배려받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혜순에게, 그러니까 나의 유일한 가족인 사람에게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일은 내 안에 그동안 쌓아온 벽들을 허물어뜨렸다. 혜순이 나에게 ‘할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저녁에 함께 산책을 하고, 산책을 하다 막창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기도 하고, 술잔을 치다 흘러온 인생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그러다 함께 울기도 했다. 나는 처음으로 유년기의 괴로웠던 날들을 터놓았고, 아무것도 몰랐던 혜순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때는 병철과 남순에게서 나를 데려가는 게 그들에게서 유일한 낙을 뺏는 것 같아서 당신 나름의 배려였는데 그 선택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한 줄 여태 몰랐다고 했다. 알았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이 품고 키웠을 거라고. 나도 혜순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모르는 게 당연했고 내가 엄마였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는 혜순에게 이제 다 괜찮다고, 과거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때 그게 최선이었으며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고.


비싼 랍스터와 고급 스테이크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날 이후로 혜순은 옛날처럼 전화가 오면 문을 닫고 들어간다던가, 내 질문에 대답 없이 애매모호한 미소만 짓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수다스러워진 느낌이었다. ‘들어봐 봐.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하며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로맨틱한 말들과 카톡 문자를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했다. 연애고민을 털어놓는 여고생처럼 매일 다른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혜순의 말을 들어주며 27년 동안 어찌 참았나 싶을 정도였다. 갑자기 활짝 열린 관계 속에 때때로 티엠아이(TMI : Too Much Information)가 끼어있을 땐 ‘그런 것까지?’ 싶기도 했지만 대학생 때 동기들의 연애상담을 해주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맞장구를 쳐주고 (때론 나와 닮은 점이 많은 아저씨 편을 들기도 하지만) 추임새도 잊지 않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많은 것들이 버거운 변화로 느껴졌고 변화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가령 혜순이 운전을 할 때는 조수석은 항상 내 자리였고, 나와 통화를 하다가 나중에 다시 하겠다고 끊는 일은 없었는데 이제는 당연히 뒷 좌석이 내 자리가 됐고,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끊는 일이 많아졌다. 혜순이 나에게 공식적으로 아저씨를 소개한 날 그의 차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해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던 그 순간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상한 기분은 섭섭함이었을까. 적확히 형용할 수는 없지만 굳이 그게 뭔지 알아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변화와, 그 변화를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섭섭함이 아니라 그저 처음이라 느끼는 어색함이겠거니 생각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을 만큼 나는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이제 혜순은 엄마보다 친구 같다. 고민이 있으면 혜순의 생각을 물어보고 그의 의견을 내 삶의 중요한 선택에 적극 반영한다. 심심할 땐 별일 없이 전화를 걸어 세상 이야기도 하고 화상채팅을 켜놓고 같이 밥을 먹기도 한다.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던 ‘싸가지가 바가지’ 던 아이는 이제 말이 너무 많은 딸이 됐다. 그리고 말 많은 딸과 수다스러운 엄마의 관계가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혜순이 교제하는 사람을 나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부터 내 자리는 옆자리가 아니라 뒷좌석이라도 괜찮겠냐고, 통화가 자주 끊어져도 속상하지 않겠냐고 물어주고 허락을 구한 것일지 모른다. 혜순에게 내가 더 이상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겠지만 유감은 없다. 이제부터는 ‘유일한 가족'보다 ‘유쾌한 베스트프렌드’로 포지셔닝할 생각이다. 그런 혜순의 물음에 나는 흔쾌히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비록 오랜 시간 문을 닫고 들어간 시간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이젠 다 이해하고 용서하겠다는 의미로 별말 없이 쿨하게 뒷 좌석에 올라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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