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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Oct 22. 2023

엄마의 남자친구

인사과에 퇴사 이야기를 하고 퇴직서를 쓸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엄마의 지인이 소개해준 철학관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를 이제 곧 좋아하게 될 거야.”


혜순이 ‘얘는 저 안 좋아해요'라고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말한 후 들은 답변이었다. 왜 그때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혜순이 그렇게 말할 때의 표정과 말투는 확실히 기억난다. 내가 무뚝뚝한 딸이긴 했지만 혜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한 딸'이라는 건 귀여운 표현이고 내가 생각해도 나는 ‘싸가지 없는 딸'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혜순을 나의 엄마를, 하나뿐인 가족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걸까? 분명히 그건 아니었다. 다만 마음의 벽이 혜순에 대한 애정을 가로막고 있는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왜 내가 그랬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주 어렸을 때 혜순의 품에 안겼던 희미한 기억 이후에 갑자기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서 사라졌다. 사라져 버린 그 존재를 내가 찾았는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시 혜순을 만나기 전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그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유치원을 다녀오니 웬일로 안방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왔다. 90년대 초 그때만 해도 에어컨은 장식품이었을 뿐 비싼 전기세 때문에 대구의 여름에도 한두 번 켤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낀 순간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눈치를 챘고, 안방에 있던 병철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젊은 여자가 다리를 옆으로 모으고 병철과 마주 보고 있었다. 수년 만에 다시 만난 혜순이었다.


그렇게 ‘주말 모녀' 생활이 시작됐다. 평일에는 병철과 남순의 집에서 머무르다 주말이 되면 혜순이 나를 데리러 왔다. 갑자기 주말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2박 3일을 함께 지내려니 어딘가 데면데면하고 영 어색했다. 그러다 한 아저씨를 알게 됐다. 우리는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혜순은 그 사람을 나에게 정확히 소개해 주진 않았지만 눈치껏 그가 만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도 곧잘 대해줬기 때문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셋이서 영화관도 가고 혜순의 집에서 밥도 먹었다. 그들이 와인을 마실 때 나는 포도주스를 마셨다. 마음을 활짝 연 것까진 아니어도 주말을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해져 갈 무렵의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아저씨'를 볼 수 없었다. 소개도 없이 내 인생에 들어오더니 작별 인사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다. 딱히 내 입장에서 크게 아쉬울 건 없었으나 전보다 우울해 보이고 간혹 슬픈 표정이 되는 혜순을 보는 것은 좀 싫었다.


시간이 얼마쯤 흐르자 혜순은 누군가와 길게 통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전화가 걸려오면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통화 내용에 최대한 관심을 쏟지 않으려 애쓰며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하거나 색종이를 접었다. 그러다 하루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혜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을 포기했다.


“엄마, 누구야?”


긴 통화가 끝나고 내가 물었다. 어색하게 웃을 뿐 혜순은 대답이 없었고 나는 다음번 통화 때에도 다시 한번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도 어색하게 웃었지만 혜순은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말했다.


“왜? 엄마가 누구랑 통화하는지 궁금해? 왜 궁금해?”


그건 반칙이었다. 미취학 아동을 상대로 되받아치기 수법이라니, 비겁했다. 나는 이미 꽤 프라이버시를 존중했고,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인데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곤란한 질문으로 내 입을 막아버리다니. 그것도 내 질문에 절대 대답을 해주지 않을 거라는 얄미운 웃음을 짓고서. 야속했고 서운했고 솔직히 짜증도 좀 났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미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 질문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 이후로 ‘아저씨 같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었지만 혜순이 통화하는 상대가 간헐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과 오가는 대화 내용(아무리 듣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한 공간에서 나는 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혜순의 집 앞에 한참을 서있다 가는 자동차의 색깔 등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번엔 다른 사람인가 보네. 지난번에 혜순이 통화하며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던 차는 은색이었는데 이번에는 검은색이었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굳이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혜순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다. ‘딸린 자식'이 있긴 했지만 여자의 직업으로 최고라는 무려 ‘초등교사 공무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선자리를 구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였다. 적당한 키에 48킬로그램과 50킬로그램 사이를 벗어난 적 없는 몸매, 하얀 피부에 의학기술에 도움을 받은 쌍꺼풀까지, 나의 육친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혜순은 객관적으로 ‘돌싱 마켓'에서 인기 있을 여자였다. 혜순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매우 합법(?)적인 일이었고 창창한 나이를 생각하면 매우 합리적이기도 한 일이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린이 답지 않게 쿨했다. 다만 유감이었던 점은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거부한 것이었다. 내가 만난 최초의 ‘아저씨'와의 경험을 통해 나는 ‘그런 점'에서 ‘쿨한' 어린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텐데, 허심탄회하게 ‘이러면 이렇고 저러면 저렇다'라고 속시원히 말하면 피차 눈치 볼 필요 없이 모두 평안했을 텐데, 혜순은 그런 상황을 딸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론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매번 바뀔 때마다 소개하고 떠나보내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대비하고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나를 데리고 재혼을 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면 아니, 나를 떼어놓고 한다고 하면 더욱더 나에게 혜순의 상황에 대해 ‘알 권리'가 있었다. 이런 식이면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이 사람이 너의 새아빠란다'하며 드라마에서 종종 보던 진부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마찬가지로 드라마에 나오는 뭇 자식들의 반응처럼 나는 고분고분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착하고 순종적인 딸이 될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혜순에 대한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청소년이 되면서 나는 더욱 무뚝뚝해졌고 오늘 학교 어땠냐는 일상적인 질문을 포함한 혜순의 모든 질문에 서술형으로 대답한 적이 없었다. 종종 그때를 회상하며 혜순은 말한다. 싸가지가 바가지였다고. 아니, 그러게 왜 소녀시대 노래처럼 어리다고 무시를 했냐고요. 나는 충분히 ‘성숙한 어린이'였고 ‘열린 딸'이었거든요?! 하지만 6살 무렵부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입을 닫고 싸가지가 없었던 나를 견뎌야 했던 혜순은 무척 답답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춘기 반항아 코스프레(반항 자체는 진심이었으나)를 하고 있는지 왜 마음의 벽을 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알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어린 날 내가 겪은 ‘미움'이라는 감정과 받은 상처에 대한 화풀이를 했었던 것 같다.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혼란스러워할 내가 걱정돼 포기를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누굴 만나도 상관없으나 ‘호적만은 가져가지 말라는' 시(부)모의 이기적인 부탁이 마음에 걸렸는지 알 길은 없으나 내심 긴장하고 있었던 식상한 드라마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고 어른이 되어서야 나는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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