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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Oct 26. 2024

디테일을 무시하지 마세요

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3화

해외에 살다 보면 악센트 안테나가 발달된다. 우연히 한국사람을 만나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체온을 감지해 숙주를 찾아 헤매는 모기의 그것처럼 더듬이가 바짝 곤두선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게 무엇이냐면 한국어 사투리의 억양이 영어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캐나다로 이민 온 1세대의 경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 바탕으로 가지고 있던 모국어의 억양과 강세가 그대로 영어에 반영되는데 경상도 출신인 나에게는 타지역에 비해 경상도 억양은 좀 더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들린다. 솔직히 마창진(마산창원진해)의 차이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경북과 경남, 대표적으로 대구와 부산의 차이는 영어 몇 문장만으로도 알 수 있다. ‘대학교', ‘니가 가라 하와이', ‘니 왜 카는데 (니 와 그라는데 : 부산)’의 경북과 경남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고선 무릎을 치고 달아나는 배꼽을 부여잡으며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뭐가 다른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친구는 충청도 출신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은 경북과 경남 사투리의 디테일을 감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차이가 왜 나는 건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굳이 그 차이를 인식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나도 경북과 경남 사투리의 차이를 설명해 보라면 한 시간을 떠들 수 있지만 전북과 전남 사투리에 대해 얘기해보라면 ‘허벌나게'나 ‘거시기' 따위를 아는 척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건 내가 속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지식의 차이가 만든 당연한 결과다.


캐나다에 온 후 솔로의 세계 속엔 훨씬 다양한 서사를 만났다. 결혼을 원하지만 ‘아직 못한' 사람(그래, 이 게 바로 ‘미혼'이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했었으나 아이가 생기기 전에 이혼을 한 사람, 장성한 아이들이 독립 후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사람, 정치적인 신념으로 비혼주의자가 된 사람, 신념은 없지만 그냥 혼자가 편하고 좋아서 혼자인 사람, 연애는 언제나 웰컴이지만 결혼은 원치 않은 사람, 결혼한 적은 없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 무지개가 실제로 빨주노초파남보의 경계가 없는 스펙트럼을 이루는 무수한 색깔이듯 싱글인 사람들도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다(이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다양한 ‘솔로'가 캐나다에만 존재할 리는 없는데 나는 왜 캐나다에서 유독 많다고 느낄까? 그건 ‘존재의 수’라기 보다 ‘발견의 수’ 차이였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이 십대였으니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 즉 ‘솔로'인 상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때는 내 세계에도 결혼한 사람과 ‘아직’ 안한 사람만 존재했다. 사회적인 문제 혹은 미래 내 인생에 대해 별 생각 없었던 나는 사회가 가르쳐주는 동사무소적인 인간 분류법을 그대로 내 의식에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서른이 넘자 그 편협했던 세계는 조금 확장 됐다. 싱글인 경우 미혼 상태 외에 비혼이라는 보기가 하나 더 생긴 것이 대표적인 확장이었다. 전자는 결혼을 할 생각이 있지만 아직 그 상태가 되지 못한 경우, 후자는 본인 의지로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경우였다. 그러다 나이를 좀 더 먹고 현재의 내 삶을 관찰하고 미래의 삶을 고민하면서, 빨강에도 빨주노초파남보를 넘어 자몽 과육 빨강, 저녁 노을 빨강, 완벽한 미디움레어 빨강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비혼'에도 빨강 만큼이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는 뜻이다.


피차 마음 편하게 ‘기혼'의 입장으로 전환하면 해결될 일 아니냐고, 이 머리 아픈 비혼의 다양함을 굳이 다 인지하고 이해해야 하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사회가, 시대가 변했고, 나 하나의 개인을 떠나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예전보다 더 인지하고 더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게 맞다고 믿는다. 경북과 경남 사투리를 경상도인만큼 구분해 내고 설명할 줄 안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대단히 나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열린 마음과 관심은 분명 좀 더 나은 삶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최근 ‘비혼주의자'라고 스스로 정체화하는 젋은 세대들이 더  많아졌다고 들었다. 사회 문제와 국가 안위는 일단 차치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만약 그들과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 한번 잘 둘러보고 우리 스스로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줄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인지 계속 탐색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들이 다양한 삶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많이 궁금해 하고 또 그 과정을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삶을 만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일주일 중에 엿새 반 정도는 집구석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집순이인 나는 요즘 최대한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부딪침 속에서 무언가 알아가고 또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어찌보면 캐나다에 오게 된 것도 다양한 삶을 만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탐색을 멈추지 않는 것이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내려놓고 살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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