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맛육#8. 쌍둥이 워킹맘의 어린이집 등원 특급비결
우리집 쌍둥이들은 15개월이 되던 달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갔다.
길게는 36개월, 짧게는 24개월까지는 가정보육이 제일이라는 전문가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하루가 다르게 하고싶은 게 많아지는 쌍둥이들의 울음소리에 지친 내게 가정보육은 사치였다.
엄마 껌딱지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번갈아 가면서 울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1~2시간동안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보내면서 나는 어린이집 보내는 걸 포기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적응기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복직과 함께 찾아온 이른 등원 시간. 우리 어린이집은 전반적으로 등원시간이 늦는 편이었다. 8시 즈음 등원할 경우 2명정도의 나이 많은 아이들만 와있었고, 선생님, 교실도 달라져서 아이들은 이른 등원을 싫어했다. 정해진 출근 시간이 있기에 급하디 급한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어린이집 교실 문 앞에서도 내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엄마, 오늘 우리가 1등 했다요!?"
그랬던 아이들이 어제는 어린이집에 자기들이 1등으로 등원했다고 자랑을 하는게 아닌가. 아이도 그대로, 어린이집도 그대로, 엄마도 그대로.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8시즈음에서 7시30분으로 더 당겨졌는데, 왜 아이들의 반응은 달라진걸까?
나는 그 비결을 스토리텔링에서 찾았다. 아이들에게 똑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들려준 것이다.
첫째,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에서 '어린이집을 가면 좋은 이유'를 찾아 연결짓기.
우리 아이들은 요즘 공주님 스토리에 빠져있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공주와 왕자가 만나 파티를 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조금 이르게 등원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나는 현관문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똘양이 똘군이가 어린이집에서 손님들을 초대한 공주님, 왕자님이 되는거야. 제일 먼저 가서 오는 친구들에게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거지. 어때?"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며 바뀌는 순간이었다.
빈 교실을 보고 실망할 것 같았던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오늘은 우리가 파티 준비하는 거지?"라며 신나하며 들어갔다.
둘째, 어린이집 식단표나 활동 정보 알려주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거나 좋아하는 활동이 예고된 날에는 "우와. 좋겠다 오늘은 똘군이가 좋아하는 짜장면 나오는 날이네?" 하거나 "오늘 어린이집에서는 물김치 만들기 요리교실이 열린대요!! 대박. 엄마가 대신 가도되나요?" 오바하며 미리 귀뜸해준다.
이때 중요한 건 엄마의 연기력이다. 정말로 부러워하는 연기를 해야 아이들이 어린이집이 재미있는 곳이라고 인식한다. "엄마도 같이 가고 싶은데!"라는 말까지 덧붙이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엄마보다 더 특별한 곳에 간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엄마는 어른이라서 안되요”하고 귀엽게 우쭐거린다.
셋째, 하원 후 활동을 예고하기.
"오늘 아침에 똘양이랑 더 놀고 싶었는 데 못 놀아서 속상하네. 엄마 회사 빨리 갔다 와서 누가 먼저 퍼즐 맞추나 놀이할까? 뽀로로 퍼즐이 좋아, 아님 숫자 퍼즐이 좋아?"
이런 식으로 하원 후 시간을 기대하게 만들면, 엄마가 빨리 회사로 가야 하원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아이가 먼저 "엄마, 안녕. 빨리 와요"하고 쿨하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에게는 이별이 끝이 아니라 더 재미있는 시간의 시작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공주도, 요리사도, 탐험가도 모두 주인공의 역할이다. 어린이집 등원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아이가 주도하는 특별한 모험으로 바꿔 들려주는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그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 어린이집에 일찍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모험'으로 바꾼 것이다. 같은 상황이지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같이 있으면 진이 빠지다가도 떨어지면 또 그렇게 다들 보고싶은건지 우리 회사의 모든 워킹맘, 워킹 대디들의 책상 한켠에는 늘 아이들의 사진이 놓여있다.
아이들에게 어린이집 등원이 '어쩔 수 없는 일과'가 아니라 특별한 모험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오늘도 퇴근 후 정신없이 뛰어서 육아로 출근할 엄마아빠들에게도 스토리텔링의 마법을 걸어주고 싶다.
당신의 하루 끝이 지친 퇴근길이 아니라,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의 기분 좋은 포옹이 되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절히 기도해본다.
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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