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 #6
"I love you 3000."(삼천만큼 사랑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딸은 자신을 재우러 들어온 아빠에게 장난스럽게 사랑을 고백한다.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명대사가 되었다. 아이언맨이 마지막 순간 딸에게 남긴 유언 역시 같은 말이었다. 그 문장은 영화가 끝나도 관객들의 마음에 남아 끝나지 않는 여운을 선사했다.
이 대사가 명대사가 될 수 있었던 건 흔하지 않은 부녀간의 사랑 표현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나와 아이들만 아는 우리만의 특별한 굿나잇 인사가 여럿 있다. 아이들의 성장과 관심사에 따라 조금씩 바뀌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우리 가족의 굿나잇 인사들을 소개해보려한다.
첫째, 소코소코의 탄생 : 굿나잇 인사는 자고로 너무 박력이 있으면 안 되고 속삭이는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기를 쓰고 잠들지 않으려는 쌍둥이들을 달래기 위해 내가 처음 시도한 방법은 귓속말이었다.
"엄마, 왜 이렇게 귀에 대고 작게 말하는 거예요?"
호기심 많은 쌍둥이들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응, 이 말은 너무 소중해서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귀에 대고 작게 말하는 거야. 속닥속닥하고"
앞의 설명이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속닥속닥'이라는 마지막 표현은 분명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속닥속닥’은 아이들 입에서 귀여운 '소코소코'로 바뀌었고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굿나잇 인사 '소코소코 사랑해'가 탄생했다.
둘째, 온 세상을 물들인 색깔 사랑법 : 아이들이 색깔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굿나잇 인사도 등장했다. ‘하늘만큼 땅만큼 바다만큼 우주만큼 사랑한다’는 흔한 표현 앞에 색깔을 붙여본 것이다.
"똘군아, 엄마는 똘군이를 보라색 하늘만큼, 노란색 땅만큼, 초록색 바다만큼, 핑크색 우주만큼 사랑해."
그러자 매일 밤 아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색깔의 바다와 우주를 만들어냈다. 어떤 날은 무지개색 구름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금색 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럼 엄마는 오늘 핑크색 우주에서 너희를 기다릴게.”로 대화를 끝내고 꿈나라 열차를 출발시키면 된다.
셋째,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는 마음으로 :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집에는 날마다 아이언맨표 사랑고백이 펼쳐진다. 색깔과 마찬가지로 숫자에 한창 흥미를 보일 무렵부터 숫자 사랑 고백이 우리집 굿나잇 인사에 스며들었다. 주차장에서 차 번호판을 읽으며 걷고, 서로 누가 더 빨리 열까지 세나 내기하던 아이들에게 어느날 밤 선수를 쳤다
"엄마는 똘양이를 954만큼 사랑해"
아이들은 질세라 대답했다
"나는 엄마를 구백오천사이육 만큼 사랑해"
감히 어떤 숫자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 이 오묘한 숫자의 정확한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어찌됐던 서로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내기하며 잠드는 건 충만한 행복감을 전해준다.
네번째, 사랑에 관한 세상 모든 스킨십 : 마지막 단계는 스킨십이다. 이 인사의 기원은 내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아빠는 주로 오후에 출근하셨다. 그래서 사춘기 딸에 대한 은근한 애정표현으로 아빠는 대부분의 날 나의 등교길에 차로 동행해주셨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기 직전, 손바닥에 하트를 그려주며 사랑한다는 표현을 대신하셨다. 분명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부모를 거부하던 시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아빠의 시그니처 인사만큼은 그럭저럭 받아줬던 것 같다.
그때를 추억하며 나는 아이들의 굿나잇 인사 사이사이에 우리만의 스킨십을 넣는다. 손가락으로 배나 엉덩이에 하트를 그려주며 간지럽히고, 아기 때부터 해오던 발 뽀뽀는 이제 아이들의 발을 맞잡고 비벼주는 것으로 진화했다. 마지막은 격한 포옹. 특히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져서 자는 날엔 이런 스킨십의 힘이 대단하다. 곧잘 "엄마 안녕, 잘 자요" 인사를 먼저 건네온다.
자, 그럼 이제 상상이 될 것이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려면 최소 네 가지의 굿나잇 인사를 거쳐야 한다. (쌍둥이이니 이것도 두 번씩이다) 침대에 누워서는 엄마아빠 머릿속에 있는 베드타임 스토리까지 하나 들려줘야 비로소 잠자리 의식이 끝난다. 이 긴 시간 잠들지 않고 버티는 게 매일 밤 엄마아빠에게 떨어진 가장 큰 숙제랄까.
우리 아이들과 나누는 이 번거로운 굿나잇 인사들은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만, 간간히 떠올릴 때마다 아이들의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머물길 바란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마 이 긴 인사가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이다.
“구백오천사이육” 만큼이나.
2025.08.07
가끔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말한마디에 예기치못한 선물을 받아 마음의 위안을 얻고,미처 자라지 못한 내 안의 나를 키워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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