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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엄마를 지켜줘야 해요! 꼭이요!

혼자 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 #4

by 삐와이


쌍둥이의 숙명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된다. 엄마 뱃속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부터 말이다. 세상에 나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품도, 아빠의 관심도 자연스레 반으로 나뉘었다. 어쩌면 평생의 경쟁자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한 명이 안아달라며 손을 뻗으면, 다른 한 명도 얼른 따라 손을 내밀고,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한 명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 자기 존재를 알린다.

초보 엄마인 나는, 준비도 여유도 없이 두 아이와의 전면전을 매일 마주했다. 버겁고 미숙한 채로 하루하루를 지나오다 보니, 어느 날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끼니를 대충 때우기도 했다. 또 어느 날엔 두 아이를 양팔에 안아 들고 “엄마한테 어쩌란거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내며 하소연하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쌍둥이라서 힘든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태어나자마자 ‘낯선 세상을 함께 헤져나갈 친구’를 짝 지어준 것은 백 번 다시 생각해봐도 엄마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어딘가 흐뭇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은 낯선 어린이집도 둘이 함께 들어가 서로를 의지하며 적응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볼 때는 진료 받는 아이를 다른 한 명이 “잘한다, 잘한다” 박수를 치며 응원해서, 의사 선생님들이 웃음을 참아내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말이 통하기 시작한 뒤로 집에서는 둘만의 언어로 만든 놀이에 푹 빠져있다. 가끔은 엄마마저 뒷전인 듯 신나게 논다. 물론 싸울 때는 UFC도 울고 갈 기세로 이 악물고 맞붙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서로에게 잘 의지하며 지내는 이 둘의 사이가 오래 이어지길 바라며, 나는 자주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진아, 보아가 무서울 때는 아진이가 지켜줘야 해.”
“보아야, 아진이가 울면 보아가 안아줘야 해.”
특히 동화 속 악당 이야기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연결해본다.
“엄마, 호랑이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엄마가 지켜줄 거야. 그리고 엄마가 없을 땐, 누가 지켜줘야 할까?”
그러면 어김없이 두 아이가 번갈아 대답한다.
“내가 지켜줄 거예요!”

서로가 서로의 수호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이것은 쌍둥이 엄마가 누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특권이다.




얼마 전, 내가 무너져 내릴 뻔한 날이 있었다. 쏟아지는 업무량을 처리하기도 급급한데, 대규모 인사 발령으로 조직 전체가 휘청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업무 의욕은 사라지고, 앞으로 더 쏟아질 업무에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그날 밤, 늘 하듯 잠자기 전 서로를 위한 인사를 나누던 중이었다.

아들이 대단한 말을 할 것처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진이는 이제 형아라서, 아진이를 지킬 수 있어요.
엄마도, 엄마를 지켜줘야 해요. 꼭이요!”


스스로를 지켜내겠다는 각오와 함께 엄마도 엄마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당부까지.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하루에 이보다 좋은 격려가 있을 수 있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단단한 아이’를 키우겠다는 사명감으로 이 시기를 버티고 있지만, 정작 내가 단단해야 아이가 단단해질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을.

“응, 엄마도 엄마를 꼭 지킬게. 고마워.”

세상이 던지는 돌덩이들에 하염없이 휘청이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을까. 든든한 네 살배기 아들이 던진 아주 조용하고 담담한 응원은 앞으로도 내 마음을 지켜주는 단단한 부적이 될 것 같다.



2025.07.24


가끔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말한마디에 예기치못한 선물을 받아 마음의 위안을 얻고,미처 자라지 못한 내 안의 나를 키워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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