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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지도 포도처럼 보라색이잖아!

혼자 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 #2

by 삐와이

워킹맘인 나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6시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6시 30분즈음 눈을 뜨는 먹돌이, 먹순이의 식사를 미리 챙겨놓고, 아이들이 일어난 뒤에는 등원 준비와 함께 책 한두 권을 읽어줘야 비로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다행히 많은 엄마들의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먹이는 전쟁은 우리 집의 아침 풍경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 오늘 아침은 뭐예요?”를 묻는 아이들을 키우는 내게는 “어떻게 잘 먹일까”라는 고민은 “어떻게 건강한 식사를 먹일까”로 바뀐지 오래였고, 바쁜 워킹맘의 입장에서는 꽤나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50709_121331074.jpg 가지소고기볶음이 포함된 쌍둥이들의 아침식사


늘 그렇듯 아침 독서까지의 루틴이 끝난 뒤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식판을 각자의 자리에 올려둔 뒤 딸아이 자리 뒤에서 머리를 묶어주며 이런저런 밥상머리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의 메뉴는 가지소고기볶음, 백김치, 된장국, 그리고 파인애플 새우볶음밥.

식판을 내려놓기 무섭게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딸 아이의 젓가락은 ‘가지’만 조용히 피해갔다.




“가지도 먹어야 더 튼튼해지고 키도 쑥쑥 크지~”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고 들어온 딸아이의 말

“네....다른거 다 먹구요”

‘오늘은 가지를 안 먹겠군’ 하고 단념하려는 찰나

“보아야, 가지는 포도처럼 보라색이잖아”


옆에서 밥을 열심히 먹던 아들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맞아. 포도는 보라색이라서 맛있잖아”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가지 쪽으로 젓가락을 뻗는 게 아닌가.

이제 엄마가 할 일은 약간의 양념을 더하는 일 뿐.

“어머, 그렇게 맛있는 보라색 가지를 먹는단 말이야? 어떡하지... 엄마가 몰래 다 먹어버릴까~?”

그 이후로는 말이 필요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식판 위 가지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손으로 가려가며 싹싹 비워냈으니까.




쌍둥이를 키우면서 감사한 순간 중 하나는, 때로는 아이들이 나서서 딱딱한 어른의 말을 말랑한 아이의 말로 바꿔서 서로에게 전해준다는 점이다. 어른의 논리로는 절대 도달하지 못할 그 어느 지점에 아이들의 언어는 놀랍도록 가볍고 정확하게 닿는다. 어딘가 혼내는 말처럼 들렸던 “가지도 먹어야지”라는 문장이 “보라색이잖아”라는 말 한마디에 딸아이의 마음에 착 달라붙은 것처럼.

(물론, 가지가 보라색이라서 잘 먹는 일이 식탁에서 매번 통하는 만능 공식은 아니다. 아이들의 변덕은 엄마를 능가하니까 말이다)


때로는 아이들이 서로를 변호해주는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아이들의 세계로 초대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세계는 예측 불가하지만 따듯하고, 비논리적이지만 납득 가능한 논리로 가득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늘은 왠지 목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날이다.


그 기분의 시작이 가지였다는 게 왠지 귀엽고, 왠지 기특하고, 왠지 또 다음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기분 좋은 목요일이다.



2025.07.10


가끔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말한마디에

예기치못한 선물을 받아 마음의 위안을 얻고,

미처 자라지 못한 내 안의 나를 키워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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