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 #5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는 나는 내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그 작은 입만 바라보며 언제쯤 첫 말을 할까 기다리고, 혹시라도 첫 옹알이를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음…아'를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좋아서 "다시 해봐! 다시 해봐! 엄마라고 한 거지?" 호들갑을 떨며 영상통화로 이 행복한 순간을 아이 아빠에게 나누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아이들이 단어를 넘어 문장을 구사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나이가 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말이 너무 많아진 데다 서로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매달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두 개의 스피커 사이에 끼인 채 두 귀를 바짝 세우고 사는 행복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우리 사이에 의사소통의 벽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30개월을 지나고 있을 때 우리는 큰 마음을 먹고 친정부모님과 함께 베트남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말이 부모님을 모시고 간 여행이지, 여행 장소나 스케줄은 모두 30개월 쌍둥이에게 맞춰진 말 그대로 '키즈 투어'였다. 여행의 둘째 날, 리버 사파리에서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먹이고 원숭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신나게 보낸 하루 끝에 일어난 일이다. 전통시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아들이 불쑥 말했다.
"엄마, 우리 오늘 코삐또 봤어요?"
"응? 코피또?"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말을 엄마가 못 알아듣자, 성격 급한 아들은 답답함에 얼굴을 붉히며 "코피또코피또~~~~"만 반복했다. 그리고 차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어른들은 아이가 던진 수수께끼를 맞추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컴퓨터? 엄마 아빠 일할 때 쓰는 거?"
(아침에 급하게 온 메일을 컴퓨터로 보내는 걸 아들이 유심히 봤었다.)
"아! 커피똥?"
(베트남에서 '고양이 똥커피'로 유명한 루왁커피를 떠올리며)
오답이 계속될 때마다 아들의 답답함은 더 커졌고, 도저히 답을 알 길이 없었던 나도 함께 답답해졌다. 그때 등장한 구세주, 딸이었다.
"엄마, 코뿔또잖아요. 코뿔또."
"아~ 코뿔소! 동물원 코뿔소! 아니, 코뿔소는 못봤지~"
의외로 너무 쉬웠던 수수께끼의 정답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달리는 차 안에서 깔깔거리며 웃었고, 아이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건네며 "코뿔소"라고 발음을 교정해주었다.
분명 답을 찾기 위해 어른 넷이 머리를 맞댔는데, 왜 그때는 동물원 코뿔소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어른의 기준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범주에 속해서였을까. 아니면 아이의 세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 순간이 어른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간 풍경 중 하나였기 때문일까. 그날 이후로도 아이가 내주는 수수께끼는 계속되었다. 얼마 전에는 "수륙양용차"라는 수준 높은 단어를 들려줘서 이번에는 입을 쩍 벌리고 "이게 4살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말 맞아?" 감탄하기도 했다. 아이가 내주는 수수께끼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왠지 아이와 나의 세계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아서, 다른 부모들처럼 '조금 천천히 자라주겠니' 부탁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 작은 입에서 나오는 낯선 말들이 때로는 수수께끼가 되고, 때로는 놀라움이 되어 돌아온다. 아이의 언어는 그렇게 나의 일상에 작은 기적을 선물한다. "코삐또"라는 귀여운 별명과 함께 말이다.
2025.07.31
가끔은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말한마디에 예기치못한 선물을 받아 마음의 위안을 얻고,미처 자라지 못한 내 안의 나를 키워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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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기 아까운 미운네살 육아의 맛을 나눠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