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7
"똘양아. 그럼 이 신발을 하나씩 신을래?"
"그래 좋아. 그럼 이 신발도 하나씩 신자."
등원을 앞둔 어느날 현관에서 두 아이가 같은 신발을 신고 싶어 했을 때 나는 ‘아….또 싸우겠네’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30개월 남매 쌍둥이는 나를 놀라게 했다.
사실 우리 집 신발장에는 '네 것, 내 것'의 구분이 애매하다. 엄마인 내가 꾸미는 데 재능이 없어서 인스타 속 감성 코디는 포기한 지 오래, 나는 성별 구분없이 어릴 때부터 아이들 옷가지를 돌려 입혔다. 어떤 날은 딸아이가 파란색, 어떤 날은 아들이 노란색. 그래서 지금은 그 색들이 각자의 최애색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양말이나 신발 사이즈가 비슷해서 둘은 외출을 위해 현관문을 나설 때도 딱히 가리지 않고 고르는 대로 신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똘군이가 먼저 손을 뻗은 분홍 장화를 똘양이도 신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갈등을 스스로 풀어냈다. 그것도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짝짝이 신발’이라는 방식으로.
왼쪽은 분홍 장화, 오른쪽은 초록 장화.
똘군이와 똘양이는 각자 서로 다른 색 신발을 신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 패션이야 더러워진 집안꼴처럼 약간 흐린 눈을 하면 그만이기에, 나는 아이들이 직접 찾아낸 이 중재안이 제법 마음에 들어서 폭풍 칭찬을 해줬다.
"우와... 그런 신발은 엄마 처음 봐. 엄마랑도 신발 바꿔 신자."
"엄마는 안 되요! 엄마 발이 너무 크잖아요!"
그렇게 둘만의 세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게 보였다. 그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등원길을 나섰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신발에 시선을 주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시선쯤이야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쌍둥이를 키우며 가장 놀라운 건, 아이들이 서로에게 갖는 특별한 연대감이다. 물론 싸울 땐 문자 그대로 피가 터지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늘 서로를 먼저 생각하고 둘만의 세계, 둘만의 놀이를 키워간다.
"똘양아, 우리 퀴즈 놀이할까?"
(단어 카드를 들며) “이건 뭐게?”
“고양이!” “딩동댕!”
하며 단어카드를 들거나,
"똘군아 우리 바다100층집 놀이할까?"
"좋아. 나는 꽃게."
"나는 그럼 해파리."
"해팔아(ㅋㅋ) 안녕. 나는 꽃게야."
하는 다소 노잼으로 보이는 역할놀이도 둘의 세계에선 깔깔 소리와 함께 한참 이어진다.
하지만 짝짝이 신발의 시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조금만 더 크면 짝짝이 신발을 신으래도 질색팔색할 테니까. (딸아이가 공주 캐릭터, 드레스, 구두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으니 이제 정말 곧이겠지.) 그 날이 조금은 천천히 오길 바라며, 오늘도 ‘장화를 한 짝씩 바꿔 신고 나가겠다’는 아이들에게 "오~ 좋은데" 쿨한 칭찬을 날려본다.
이 작은 발걸음들이 언젠가는 각자의 길을 걸어갈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함께 걸어가는 짝짝이 신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어쩐지 빗길 출근도 산뜻한 아침이다.
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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