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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나에요"

혼자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9

by 삐와이


태명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정말 아이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연애할 때도 애칭을 불러본 적이 없다는 지인조차 아이에게는 “우리 강아지, 우리 왕자님”등의 낯간지러운 애칭을 부른다. 그 모습을 보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세상 그 어떤 애칭으로 불려도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도 한때는 ‘희망’, ‘소망’으로 불리다가 태어난 뒤엔 같은 뜻을 품은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내가 만화를 그릴 때는 똘군, 똘양으로 불리고, 아침마다 나는 “우리 애기, 공주님, 왕자님, 멋쟁이, 이쁘니” 등 그날그날 떠오르는 애칭으로 아이들을 부른다.


그런데 변덕쟁이 아이들은 가끔 내 애정 가득한 호칭을 단칼에 거절한다.
“어디 보자, 우리 공주님—”
“공주님 아니야!”
“우와, 이걸 혼자 했어? 우리 씩씩이—”
“씩씩이 아.니.야!”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가 “그럼 뭐야?” 하고 묻는 순간 두 아이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그냥 윤○○이야!”


그 당찬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응~그냥 윤ㅇㅇ이었구나. 미안해”사과를 건넨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이들의 머리속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대체 “나는 그냥 나에요” 라는 당찬 대답을 나오게 하는 근원은 무엇일까.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이름과 역할을 덧입는다. 누군가의 딸, 손녀, 친구, 제자, 동료, 연인, 아내, 그리고 엄마. 그렇게 여러 겹의 나를 살아내면서 늘 묻는다. 그중 진짜 나는 누구일까?
때로는 전공 선택의 문제로, 때로는 직장과 결혼의 문제로, 혹은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그 물음은 다른 얼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러곤 하루하루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또 슬며시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최근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대표, 료님의 책 프롤로그에서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만났다.

‘왜 우리는 이렇게나 진짜의 나로 가는 길에 용기까지 필요하게 된 걸까?”
내가 나로 태어나 내가 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자주 생각하던 제가 모여,
이 책이 된 것 같습니다.
KakaoTalk_20250827_214533501.jpg PHILOSOPHY Ryo, 료의 생각없는 생각 중



우리는 모두 나로 태어났지만, “나는 나에요!”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나다움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복잡한 세상, 복잡한 역할에 짓눌린 나머지 우리는 그 단순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 무엇도 될 수 있지만, ‘나는 그냥 나’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아이들을 보며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다운게 뭘까’ 무겁게 고민하던 나를 슬며시 내려놓아본다.

그리고 복잡한 고민들 앞에 ‘나는 그냥 나에요’라는 단순한 대답을 슬쩍 내밀어본다.

역시 돌고 돌아 결국 가장 나다운 순간은 “그냥 나”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25.08.28


※ [엄마의 쉼표], [이맛육]은 아래의 링크에서 인스타툰/카드뉴스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D

https://www.instagram.com/ddol.mom_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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