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밥 먹지

산티아고순례길. 온타나스 - 보아딜라델카미노 28.4km

by 실버레인 SILVERRAIN

6:35 다른 순례자들이 자고 있어 조심히 나왔다.

쌀쌀한 새벽아침

다른 알베르게에서 나온 순례자들이 보인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약간은 긴장한 채로 걸었다.

먼저 출발했는데 어느새 아저씨들이 나를 뒤따라 잡아 앞서간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어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기한 하늘

구름으로 인해 반으로 딱 갈라진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가려져 보지 못할 때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 간 순간이다.

숲 속 오솔길을 쭉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고대 유적지 같이 생긴 건축물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이곳도 알베르게라고 한다.

마을도 아니고 길가에 알베르게만 덩그러니 있다.


이곳에 묵은 순례자가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너무 좋았다고 같이 식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축복해 주었다고 말했다. 다음에 오면 묵으라고 추천해 주었다 (다음..?!)


낯선 땅에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순례자들이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일이다. 비록 언어가 다 통하지 않을지라도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진심 어린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순례자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디너에서 ‘식탁교제’라는 말이 떠올랐다.


식탁교제는 기독교 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인데 단순히 식사하는 것을 넘어서, 함께 삶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Table Fellowship 혹은 Breaking Bread라고도 한다.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먹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그런데 그 단순한 행위가, 누군가와 함께할 때 공감과 유대를 만들어내는 신기한 경험이 된다.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서로에게 감정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웃음소리가 오가는 식탁은 늘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심리학에서 식사는 관계 형성의 열쇠다.

공통된 관심사인 음식을 통해 대화를 유도하고, 방어기제를 낮추며, 심리적 거리감을 좁힌다. 비즈니스에서 식사 자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함께 있음(being together)'을 공동체적 실존으로 보았다. 식사는 그 어떤 활동보다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행위다. 누군가와 식탁을 나눈다는 건, 그 사람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 집에서 함께 끼니를 나누는 사람을 '식구(食口)'라 부른다.


공유된 음식은 신뢰, 환대, 평등의 상징이기도 하다. 식탁은 위계가 없는 공간.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며 마주 보는 자리다.




여자들의 식탁

여담이지만, 여성들은 대개 식사 자체를 즐기고, 대화를 통한 정보 교류를 자연스럽게 한다.
식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옷, 날씨, 가족, 인간관계, 육아, 미용 등 삶의 모든 것이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소비 습관과 가치관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여성은 정보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성향이 강하다. 브랜드 스토리와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신뢰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래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이 더 효과적이다. 식료품, 생필품, 아이들 용품, 의류, 가전 등 일상적 소비의 대부분은 여성의 손을 거쳐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여성 소비자가 약 70~80%의 구매 결정권이 있다고 본다. 돌아다니다 보면아줌마들 신발이나 옷이 너무 비슷해서 놀랄 때가 많다.

식탁에서 공유된 정보와 감정의 힘이 크다는 증거다.


결국, 함께 식사한다는 것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단순한 생리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신뢰하고, 환대하는 인간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사람과는 밥을 먹으려 하고, 갈등 있는 사람과는 식탁에조차 함께 앉기 꺼리는 것이다.


섬김과 환대가 실천되는 식탁교제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누구랑 밥 먹지'

다음 마을을 향해 뚜벅뚜벅

쉬어갈 카페에 도착했다.

이전 카페들과는 다르게 현대식 건물이다.

열심히 커피 만들고 계시는 사장님

옥수수빵도 맛있어 보였다.

오늘은 초리조가 들어간 토르티야

초리조(Chorizo)는 스페인 전통의 건조 숙성 소시지로, 주로 돼지고기와 파프리카, 마늘, 소금을 넣어 만든다. 짭조름하니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먹고 쉬었으니 다시 걷기.

Castillo de Castrojeriz 중세 성곽 유적

걷다가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다. 폐허지만 일부 성벽과 구조물이 남아있다.

벽과 벽 사이로 보이는 저 찰나의 풍경을 왜 찍고 싶었는지

앞 뒤로 순례자들이 안 보인다.

나 홀로 총총총 걸었던 마을

유럽 특히 오래된 건축양식을 지켜오는 곳들은 공사를 쉴 새 없이 한다. 건축물을 계속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보수공사가 끊임없다.


독일에 살 때 뉘른베르크에 살았는데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중세도시로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전통 독일 양식의 목재 골조 건축이 특징인데 그곳도 공사를 계속해서 '저긴 공사 언제 끝나나..‘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장면을 보고 떠올랐다.

오늘은 언덕도 나왔다.

언덕에서 바라본 순례길은 나의 숨을 한 번 크게 쉬게 한 풍경이다.

이번엔 고원으로 가는 길

'야-호' 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길

진부하지만 ‘멋있다, 평화롭다, 고요하다’의 형용사가 떠오른다.

Ermita de San Nicolás de Puente Fitero

피테로 다리의 성 니콜라스 예배당


하지만 이 건물이 예전에는 실제로 순례자들을 위한 hospital (순례자 숙소 겸 간호 시설)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Hospital de Nicolás"라고 부르기도 한다.간판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솔-직히 이때 좀 지루했다.

옆에 열무 같은 작물이 있어서 갑자기 열무비빔국수가 간절히 생각난 기억이 난다.ㅎㅎ

오늘의 마지막은 걷기 좋은 단단한 흙길

화려한 그레피티가 순례자들을 환영해 주는 마을

쉬어가는 김에 남은 빵 먹기

내가 머문 카페 말고 마을 안쪽에 카페가 하나 더 있었다.

거기도 영업 중이었는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있던 곳은 마을 입구라 순례자들이 바글바글 했다.

순간 공부할 때 상권의 중요성에 대해 공부했던 게 상기되며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이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는 만큼 보이는 거겠지'

마지막 걸음

나무 한그루 우뚝

외로워 보이지만 든든해 보이기도 하고

오늘도 무사히 잘 걸어서 감사하다.

인구 100명 미만의 작고 아늑한 마을이다.

호텔과 알베르게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장소였다.

주인아저씨가 너무 친절하게 호스팅 해주신다. 유머도 있으시고

페인팅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푸릇한 잔디밭, 무심하게 돌에 꽂혀있는 꽃, 순례자들의 빨래, 쉬고 있는 순례자, 큰 나무


이 모든 게 합쳐 하나 되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마을 산책하러 나갔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 급하게 돌아왔다.

오늘은 저녁을 생략하고 그냥 숙소에 머무는 중

정돈 안된 듬성듬성 핀 꽃들도 그 자체로 너무 예쁘다.

오늘도

'부엔까미노'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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