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스라엘 왕국에는 솔로몬이라는 젊은 왕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했고 그로 인해 매우 지혜로운 왕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왕 앞에 한 아기를 데리고 두 여인이 다투며 찾아왔다. 두 여인은 함께 살고 있었고, 각자 얼마 차이 나지 않게 아이를 낳았는데, 어느 날 밤 한 아기가 죽고 말았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살아 있는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했다는 점이었다.
한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여자가 자기 아이를 깔고 자다가 아이가 죽었는데, 한밤중에 제 아기와 몰래 바꿔치기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은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러자 다른 여인은 강하게 부정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살아 있는 아이는 제 아기고, 죽은 아이는 저 여자의 아기예요!”
두 사람의 말이 완전히 엇갈리자,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재판장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솔로몬 왕은 놀라운 방법으로 진실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는 신하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아이를 반으로 나눠서 두 여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자 한 여인이 급히 외치며 말했다.
“제발! 아이를 죽이지 말고 그냥 저 여자에게 주세요. 아이만 살 수 있다면 괜찮아요!”
하지만 다른 여인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요. 둘 다 못 가지게 하죠. 반반 나눠요.”
그 순간, 솔로몬 왕은 이렇게 판결했다.
“아이를 죽이지 말고, 아기를 살리자고 한 저 여인에게 주어라. 그 사람이 진짜 어머니다.”
그 판결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진짜 어머니를 알아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솔로몬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꿰뚫는 지혜로, 어머니의 진심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날, 사람들은 단지 왕의 지혜를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사람을 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열왕기상 3:16-28
“제발! 아이를 죽이지 말고 그냥 저 여자에게 주세요. 아이만 살 수 있다면 괜찮아요!”
이 대화의 부분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기만이 아이 어머니에겐 유일하게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길이었다. 결국 그 포기함으로써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지만, 말할 땐 아이를 포기한 상태였다. 얼마나 쓰라렸을까
사랑을 포기했다고 하니 내 동생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글을 절대 볼 일 없다는 가정하에 쓴다.
막냇동생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여자 친구가 먼저 동생을 좋아하고 고백을 했다.
동생은 처음에 '얘가 왜 날 좋아하지?' 의아해하며 여자애가 아깝다고 했다. 본인에게 너무 과분하다며. 여자친구가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 (칭찬에 박한 동생이 해준 몇 안 되는 칭찬이기 때문에 기록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동생이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와중이어서 연애를 하면서도 자주 못 만났다. 흔히 연인사이에 하는 기념일 챙기기, 선물 같은 것도 못해줬다. 동생은 사전에 '나 남자친구로서 잘 못해준다. 그래도 괜찮냐' 물어보았고 여자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어느 날 동생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헤어졌다고 한다. 이 아이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여자 친구가 너무 손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다시는 이런 여자애 못 만날 것 같다고 한다. 동생이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당연히 여자 친구는 싫어했고 엄청 울었다.
이 여자 친구가 나와 비슷하다면 만약 동생이 확신을 주었을 때, 기다렸을 것이다. 동생도 동의했다. 남자의 생각은 좀 다른가보다. 사랑해서 포기했다니 이런 일화가 생각난다.
이 판결을 내린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불린다. 구약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지혜의 단어로 히브리어인 '호크마' חָכְמָה (ḥokmâ)가 있다.
숙련, 기술, 분별, 통찰, 올바른 판단을 포함한 폭넓은 개념이다. 단순한 똑똑함이 아니라,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과 도덕적 감각까지 포함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다들 제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산다. 모든 상황이 다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때 감정은 잠시 뒤로 배제한 채, 상황을 분별하고 통찰력 있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한 어른이 내게 조언한 말씀이 있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겁게'
처음 들었을 때 '음......... 왜 차가워야 하지? 뜨거운 게 좋은 거 아닌가?'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현상을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동시에 뜨거운 열정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깊은 뜻이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맥락의 구절이 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은 성경에서 종종 교활함이나 민첩함의 상징인데 이 구절에선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위험한 세상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상징으로 쓰였다. 현실 감각 있고, 상황을 잘 판단하며, 불필요한 위험을 피할 줄 아는 영적 지혜를 뜻한다.
비둘기는 순수함, 평화, 성령의 상징이며 거짓 없고, 정직하며, 마음이 깨끗한 태도를 말한다.
솔로몬의 아기를 둘로 나누라는 잔인해 보이는 말속에는 뱀처럼 지혜로운 판단과, 진짜 어머니의 마음을 끌어낼 순결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결국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포기했고, 솔로몬은 그 사랑을 알아보고 아이를 그녀에게 주었다. 이것이 바로 호크마, 참된 지혜의 힘이다.
이상향이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그래도 최소한 이 내용을 알고 있으니 행동을 할 때 생각을 하며 저런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각을 품고 있으면 행동으로 나온다.
나는 때론 감정적이고, 뜨겁기만 할 때가 있다.(때론이 아닌가..) 하지만 옆에서 차분히 식혀주는 사람이 있고, 나 또한 반대로 꽁꽁 얼어붙은 듯한 이성을 녹여줄 때가 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너무 차갑기만 해도, 너무 뜨겁기만 해도 균형을 잃게 된다. 부부처럼 가까운 관계에는 특히 더 이런 상호보완적인 모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상’에 가까운 가정의 형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그것들이 나를 만들어 갈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신 분께도 감사드린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인상 깊었다.
'해는 언제나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향한다. 구름이 낄 때조차 해는 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볼 줄 아는 지혜의 영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