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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초원에서 피어난 꽃
Jul 24. 2023
그래도, 티끌만큼이라도 놓지 않고 해 나아가 본다면
생산직을 다니며 독서를 계획해 보다
몇 달간의 퇴사 후 백수 생활을 끝마칠 때가 된 것 같다. 백수 생활이라고는 한대도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 제대로 푹 쉰 날은 이틀 가량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즉각적인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잠깐만 고생하자고 되뇌는 중이지만, 그건 일하는 걸 버티기 위해 하는 자기 최면에 가깝다. 아마 이제부터 다시 쭉, 쉬지 못하고 일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경제 상황이 많이 열악하다. 그동안 쉬면서 마땅찮은 수입이 없어서, 내가 내야 할 돈들을 내기 빠듯해져서 다시 일하러 가는 정도가 아니다. 단지 그 정도라면, 조금 부족한 거지 열악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수입은 조금 적어도 괜찮은 일자리를 골라 구했을 텐데 내가 1-2주 안으로 구하려는 일은 생산직이다. 무려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가야만 한다.
엄마가 다시 돌려주겠다며 50만 원을 가져갔다. 그런데 내야 할 돈이 부족하다며 10만 원도 추가로 가져갔다. 언제쯤 다시 줄 수 있냐 물으니 한꺼번에는 못 주니, 좀 있다가 일단 10만 원이라도 주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거기에서 드렸던 돈을 다시 돌려받아 내 생활과 취업준비를 하기는 틀렸다는 생각을 했다.
나가는 돈들은 한꺼번에 적지 않은 돈이 나가서 한 번에 돌려받아 메꿔야만 한다. 그런데 10만 원씩 쪼개서 돌려받으면 반드시 모자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번에만 잠시 돈이 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못 받는 상태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얼마가 부족하니 달라는 식이겠지. 그렇게 나는 내몰릴 수밖에 없음에 착잡해하며 하려 했던 사무직이 아니라 생삭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미 생산직의 경험이 많이 있다. 그래서 잘 알고 있다. 생산직의 장점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지만, 그 돈을 망가지는 몸에 쓰게 된다는 것을.
거기에다 육체 노동인만큼 지쳐서 집에 와서는 쉬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하기가 무척 힘들다. 자기 계발은 정말 꿈도 꾸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어 버리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가 다시 일하러 가는 것의 반복이 되기도 쉽다. 그러면서 그저 공장의 부품처럼 일을 하고 집에서는 쉬기만 하는 식으로 생활이 단순화가 된다.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는 치명적인 단점을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의 고됨과 단점보다도, 당장 급한 돈 때문에 누릴 수 없는 것들과 내 손으로 놓아야 하는 기회야 말로 내 마음을 안 좋게 만든다.
일단 하던 취업 준비도 멈춰야 하지만, 최근에 서류전형을 통과했다고 연락이 온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도 취소를 해야만 한다. 훈련수당도 받을 수 있고 취업 연계까지 되는 좋은 기회였는데, 내 손으로 포기를 해야만 한다. 그러고서 가는 곳이 식품 생산직이다. 솔직히 마음이 많이 착잡하고 좋지 못하다. 그러나 우울해하면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고, 일단 급한 불이라도 끄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원래의 계획은 아직까지 따지 못했던 운전면허도 같이 따며 취업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는데, 그조차도 다시 기약 없이 미루어져 버렸다. 열심히 살려 버둥거려도 뒷받침되지 않는 환경과 상황들로 참 괴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잠시 기다려야 하는 때라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리고 완전한 중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생산직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을, 유지나 준비가 될 수 있는 것들을 하기로 했다.
힘든 생산직을 한다고 그저 일만 하고 남은 내 시간에 회복하고 쉬기 바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티끌만큼이라도 뭔가를 같이 하기로 말이다. 그것이 절망 속 희망이겠다.
취업 공부를 그대로 이어가도 되겠지만, 노동량과 내 몸상태에 따라선 비연속적이 되기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다른 생산직에서 연장 근무를 할 때 기절하듯이 잠들어서 아무것도 못 했던 경험이 몇 번 있다.
그러면 공부를 하는 의미나 효과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취업 공부를 하는 동안에 부족을 느꼈던 부분을 채우는 준비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고 그를 위해 책을 읽기로 결정했다. 특히 어휘에 관한 책부터 말이다.
공부를 할 때 가장 답답했던 건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정확하게 의미를 짐작해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간 동안만이라도 책을 보는 정도로 배경지식을 쌓고 많이 글을 접하면서 읽는 속도와 아는 어휘도 늘어나면 취업 공부를 다시 이어갈 때 무척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 감정은 비우며 버티되, 그 자리를 책으로 채워 보는 것. 궁금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만 다니면서 돈을 벌 때와 어떻게, 얼마나 다를지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책을 보면서 출근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출퇴근 시간엔 힘들겠지만, 퇴근 후에라도 하루 단 한 페이지만이라도 읽는 것을 시작으로 몇 페이지로 늘려가고 점차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어 나가면 분명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반복적이고 삭막한 일을 하는 정신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피어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지금 내 상황에 딱 맞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 실험을 해보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궁금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성장이 가능할까 하는 것 따위가 말이다.
일을 적응하기 전에도, 적응한 후에도 어차피 엄청 힘들 거라는 걸 아니까 그런 기대나 궁금증, 즐거움이라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단순히 돈 때문에 아깝게 기회를 놓친 후 멈춰서 뒤쳐지기만 한 시간으로만 남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돈만 버느라 바빴던 시간 이상의 가치는 되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고된 생활 속에서 일기처럼 기록해 나아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