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동시간에 어떤 책을 읽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읽기 쉽고 편한 책들을 주로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소설이나 에세이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주로 정보성이나 배워 익혀야 하는 지식류의 이야기를 많이 읽는다. 종류로 구분 지어 말을 한다면 비문학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동 중에 비문학 책을 읽곤 하는데, 그러던 중 분명한 대비를 느낀 어느 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난 화요일에 쉬는 날의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하지만 많이 피곤한지 자기 만화책을 보고 있으라고 하고는 마저 잠에 들었고, 나는 재밌었던 만화책의 2권을 골라 읽었다.
만화책의 경우는 문장이 짧고, 그림도 함께 나와 있어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나같이 책 읽기를 많이 해보지 않았고 많이 더디고 서툰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아주 빠르고 가볍게 읽어낼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책 읽기를 연습하고, 문장을 될 수 있으면 정확히 이해하고 머릿속에 입력해 보는 것을 훈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만화책도 꼼꼼히 읽느라 다소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그렇게 2권을 다 읽어 내고 난 뒤 친구를 빼꼼하고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길래, 만화책 3권을 이어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집에 늦게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가지고 온 책을 보았다. 문제집이든 읽는 책이든 하루에 조금이라도 문장을 읽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건 약속이 있다고 예외는 아니었다. 만화책도 문장은 맞지만, 그림 없는 글만 있는 책이 기준이었으므로 마저 못 읽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우리말 어원사전을 읽기로 했다.
확실히 그림 없이 글로만 가득 차 있어서 만화책에 비해 난이도가 꽤 있었다. 읽기 시작한 부분이 고조선 시대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우리나라 고조선 때의 어휘보다는 동시대에, 인접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한자 어휘가 많았다. 우리말로 된 문장도 완전한 이해가 어려운데 한자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다 보니 더더욱 이해가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나와 심리적으로 가깝고 편한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었고 외부와는 차단되어 있다. 그래서 크게 방해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는 것 없이, 편한 자세로 무언가에 쫓길 필요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온전히 집중하는 게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해가 어렵고 속도가 많이 느려도 몇 번 반복해 보다 보면 부드럽게 한 문장씩 읽어 나가는 게 가능했고 편안하고 집중 잘 되는 독서가 됐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밤늦게 지하철을 탔다. 집에 가려면 1시간가량이 넘게 남았었다. 지루하고 긴 시간을 보내는 건 역시 아까 마저 읽다만 책을 읽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더불어 지하철이란 환경에서 1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일날에도 밤을 꼬박 새우고, 이동 시간 동안 1-2시간가량만 잠을 잔 상태여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꽤 오래 지나버린밤이 되자, 더 피곤함을 느꼈고 특히 뇌의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거기에다가 시끄러워 정신없고, 어디쯤 왔는지 신경 써야 하는 지하철 환경까지 더해져 책을 읽기는 꽤나 어려웠다.
하나라가 덕에 어두워 도탄에 빠지거늘 하늘이 탕왕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온 나라에 바로잡아 나타내시어 우의 옛땅을 잇게 하시니 이제 그 가르침에 따라 천명을 좇을지어다.
책의 내용 중 도탄에 대한 어원을 설명하는 부분이자 그때 읽고 있던 부분이다. 현대식 문장도 아니고, 다른 건 몰라도 '온 나라에 바로 잡아 나타내시어'라는 부분을 정확하기 이해하기 어려웠다. 밑에 나온 한자 원문을 보아도 표정(表正)하다였는데, 지식사전에 쳐봐도 이해를 돕기 위한 예문 없이 직역한 한 줄 설명이 다였다.
여러 악조건에다가 하필 읽어야 할 부분이 이전에 읽었던 부분보다는 좀 더 어려운 부분이어서였을까, 문장을 잘 넘어가질 못했고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대충 넘어갈 수 없어 더듬더듬 읽어갔다.
그렇게 머물러 생각하는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쯤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음에도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틈새를 파고들었다. 남을 흉볼 때의 악한 마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느리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었다.
일단 일정한 속도로 가는 지하철이 느릴리는 없었고, 그저 자기네들이 아는 사람에 대한 욕일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고개를 들고 찬찬히 목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둘러보았을 때나 책을 잠시 보지 않을 때는 왜 그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부자연스러게 끊어지는 걸까?
나는 거기에서, 사람이 앞에 있는 것을 서슴지 않고 하는 나를 향한 못된 평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특히 학생 때 많이 겪어 본 적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버스 같은 데서 학원에서 영단어 시험을 보는 통에 영단어를 외우고 있을 때에 겪었던 일과 같이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거나 평범한 행동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지만, 공부같이 자기들이 싫어하거나 거리가 먼 것을 하는데 그것을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 짜증을 담아서 평가와 욕을 하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는 애들 중에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보다는 공부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놓아 버린 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나는 그게 하나의 열등감이자, 경쟁에서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데 상대방이 크게 잘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을 때, 무시와 비웃음으로 심적인 위안을 얻는 못난 마음에서 비롯되는 못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 재미난 건 학생 때 통학을 하고 지나갔던 그 지역 부근쯤에 가까워졌을 때 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멎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 애들이 그대로 커서 여전히 저렇게 입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참 우습기도 했다.
억지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면서 계속 책에 집중했지만, 아까 친구네서 글을 읽을 때보다는 훨씬 잘 읽어내지 못했다. 확실히 내부와 외부라는 환경에 의해 나의 독서는 영향을 많이 받는 중이라는 걸 대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책을 보다가 시간을 보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할 때는 그런 욕들이 뚝뚝 끊어지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쳐다보면마치 의식하고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그 지질한 모습들이 무시하기 어려운 커다란 불쾌함으로 독서에 지장을 많이 주는 것이었다.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만한 거리에서 그런 평가를 왜 대놓고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 이해가 안 갈 수는 있지만, 경험이 있거나 사고의 폭이 넓다면 쉽게 술술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 아니라 어려운 책인가 보다 같은 생각은 못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타인을 생각하고 너그럽게 봐주는 행동 따윈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자신의 짜증스러움으로 욕만 내뱉지 못해 안달이 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악의적인 행동에 못 이겨서, 남을 의식해서 하는 독서를 할 생각은 없다. 이해를 못 했는데, 내 인생과아무 상관도 없는 남들이 빨리 못 넘어간다고 욕을 한다고 해서 쫓기듯이 넘어가는 독서를 하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처럼 책을 천천히 읽는 건, 사실 과거의 경험이 크다. 초등학교 때에 다독상을 여러 번 받곤 했는데 어느새 읽어내는 책의 양을 늘리는 데에만, 그저 책을 빨리 읽는 속도에만 혈안이 되었던 어린 지난날들이 있었다. 그때결과적으로 뭔가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내용이든 뭐든 남는 것이 없었다. 그저 책을 많이 읽었다는 뿌듯함과 위안, 문장을 빨리 넘어갈 수 있는 능력 정도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건 빛 좋은 개살구였고 나에게 맞는 의미 있는 독서가 아니라 그저 남의 시선과 인정으로 한 독서 흉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저 책을 빨리 읽어 나가고 흥밋거리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내 지난날의 경험으로 뼈 아프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한 무시로 화가 난다 해도 휘둘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을얼마나 잘 소화해 내고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게 중요하지, 겉보기에 빨리 읽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수박 겉핥기로 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시간낭비니까 말이다.
또한 꼭 자신의 소신과 페이스를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시간을 들어 천천히, 쉽게 읽어내선 안 되고 여운에 잠겨 머물러 있어야 할 책들도 있는 법이다. 의미나 정보를 곱씹어서 소화시키고 익혀야 하는 책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시집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는 비록 문장은 짧지만 시인이 자신의 삶을 압축시키고 녹여낸 글이다. 지울 수 없게 잉크로 글을 쓰듯이, 새하얀 눈 밭에 정돈된 길을 만들기 위해 발자국을 찍어가듯이 신중하고 내려놓기 전에 무수히 많은 준비를 거치며 힘이 드는 집중으로 쓰인 글이다. 그런 글을 어찌 쉽게 읽는가.
책의 두께는 얇아도, 한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을 어찌 그리 쉽게 읽겠는가. 빠른 독서 속에서 과연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충분히 느껴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오히려 빨리 읽었다고 자랑스러워하거나 빨리 못 읽는다 무시하는 게 무식하고 유아적인행동일 것이다.
책과 글의 종류에 따라 반복해서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거나, 때로는 여운에 잠겨서 때로는 머물러 곱씹으며 그 사람의 심정을 내 것처럼 가져와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을 어찌 빠르게 지나가는 글 읽기에서 할 수 있겠는가.
지하철에서의 그 경험이 있던지 이제 막 일주일차라 자꾸 떠오르고 여전히 불쾌하지만, 그래도 나는 천천히 글을 읽어가고 있다. 스쳐가는 사람들의 별 도움 안 되는 말이 나에게 영향을 주도록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다. 계속 읽어나가느라 누적된 양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책 읽는 속도가 붙는 것이라면 몰라도, 타인을 깔보는 마음만이 가득 찬 악의적인 말에 따라 억지로 무리하게 쫓겨서 할 생각은 없다. 그건 내 마음의 소리도 아니고, 나에 맞춰서 하는 독서도 아니며 나의 만족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적 건강함이나 기초가 탄탄한 견고한 실력을 위해서라도 뭣도 모르는 남의 말에 휘둘리기보단,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이것은 비단 책 읽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다른 일들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믿고, 하고자 하고, 이유가 있는 일들이라면 남의 생각을 따라가거나 모진 비난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느리더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데에 더 중점을 둔 독서를 계속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