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공휴일 특근은 7시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시간만으로는 나쁘지 않았는데 아직 적응기였기 때문일까? 어째선지 무척이나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다 조금 늦게 잠들었다.
사실 이 전화는 오늘만 걸려온 것이 아니었고 매일 그리고 친구로부터 걸려 오는 것이었다. 시기로는 생산직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이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일정한 시간대에 전화가 걸려온다.
매일 전화를 건다는 게 말로는, 생각으로는, 겉으로는 쉬워 보일지 몰라도 막상 직접 해보면 생각보다 번거롭고 상당한 정성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세심한 배려라는 걸 알 수 있다. 꼭 용건이 있어서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별다른 할 말이 없어도 전화를 걸어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나는 이것의 의미와 이유를 굳이 묻지 않더라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다시 취직하여 고된 일을 이어가며 바쁜 나를 위해 일부러 해주는 연락이라는 것이라는 걸.
어느덧 10년에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함께하고 곁에서 봐 온 모습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을 사려 깊음을 가진 나의 친구. 자기 살기 바쁘고 어느새 거기에 젖어 자기밖에 모르는 마음과 행동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가득한 세상에서 참 보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역시 연락이 안 오면 따로 묻거나 재촉하지 않고 할 일이 있거나 바쁘다 보다 하면서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나를 위해주는 건 고맙지만 무리를 하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배려에는 배려일 수밖에 없어진다.
통화를 할 때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친구에게 근로 시간이 긴 편이긴 하지만 시간에 비해서 일 자체는 견딜 만 한데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고 했다. 그에 친구는 자기도 현장 일 할 때 2주 동안은 무척 피곤했다면서 한 달 정도 있다 보면 적응하게 될 거고 그 후에는 다시 글을 쓰라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시점이 되면 추석이 코 앞이라서 어려울 것으로 예상이 됐다. 인건비기 나가더라도 공휴일 특근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곳인 데다가 이제 일주일에 2번은 9시까지 야근을 한다고 했다. 근무를 7시에 시작하니 14시간 정도를 회사에 있다가 와야 하는 것인데, 지금이야 일주일에 2번이지 물류의 특성상 추석에 가까우면 일을 더 했으면 했지 적게 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직전에 가까워서는 평일 내내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말에 대해 확답은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 있게 그럴 거라 말하고 그러길 바랐지만 현실적으론 어렵겠단 생각에 입을 열기 무거웠다.
추석에 가까워지면 돈이야 많이 벌겠지만 체력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제도 7시에 끝나 8시쯤 집에 왔는데 너무 피곤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잘 뻔했다. 겨우 차례 부분을 3개 정도만 읽고 잤던 게 다였다.
적응기간인 것을 감안해도 이 정도인데, 야근이 몰아칠 대목 앞에선 씻고 기절해 버리는 모습이 일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적인 요구를 했다는 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늦어지고 미뤄질 순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에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으로부터 나의 자아실현을 바라는 말을 들었다면 보답해야만 하기에 글을 써야 하고 써 볼 거다.
사실 글만 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지만 공모전같이 신경 써서 잘 다듬어야 하면 그 질을 신경 쓰느라 오히려 못 쓰게 되는 것이 있다. 그러니 너무 그런 강박과 완벽주의에 매이지 않고 일단 완성이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마음엔 차진 않을 것이다. A+ 받으려다 아예 포기할바에는 B-라도 받아보려고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언어공부처럼 미약할지라도 약간씩이라도 이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래도 너무 강박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손 가는 대로 슥슥 써지는 부담 없는 수필정도는 쓰려고 해야겠다. 일요일에는 쉬니까. 다른 것들은 문예 공모전이 몰려있는 시기에는 조금 미루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로.
공휴일 다음날이었던 6일 차에는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오늘 하던 것이 중간에 기계고장으로 넉넉히 쉬는 시간이 생겨나서 인지 퇴근하고 나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늘어져 있는 시간 없이 집에 와서 간단한 문장 읽기와 국어와 더불어 글쓰기까지 하였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슷한 작업을 해서일까. 아직도 몸에서 원료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고 날카롭고 시끄러운 절단음의 기계소리가 여전히 내 근처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웅웅 거리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좋았다. 중간중간 잠은 잤어도, 오늘은 컨디션이 좋네라고 생각했고 퇴근할 때 버스에서도 피곤이 쏟아지지 않아서 더 확신했다. 퇴근 후에 커피를 먹어서였을까?
이른 새벽, 좀 늦게 일어난다 싶으면 4시 반에 일어나고 출근해서도 쉬는 시간엔 잠을 자기 때문에 책을 읽는 식의 활동을 하는 건 거의 집에서 뿐이라고 보면 되겠다. 즉 집에서 일 외적인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건너뛴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퇴근 후에도 바로 자지 않고 단 한 문장이라도 글을 읽고 자려고 하는 중인데 오늘은 3종류의 것을 하니 뿌듯했다. 다음날 출근을 위한 수면시간 확보를 위해서 11시를 넘겨선 안 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렇게 5일 차와 6일 차를 지나 이제 내일이면 일주일차가 된다. 일주일이라는 단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래도 일주일은 다녔구나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의미 있게 느끼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