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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퇴사 고민과 첫 아홉 시 특근

 사람으로 인한 중단의 고민과 지속의 용기

 어느덧 입사 일주일차를 맞이하였고 하루하루 돌아가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다양하게 하고 있다. 일을 함에 있어서 적응하는데 완료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적응을 완료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한 달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하지만 모두가 빠르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 공장에선 능숙한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져 있는가 보다. 또 생산직이라는 업무 특성에 따른 것도 물론 있겠지만, 명절 대목을 앞두고 처리할 물량이 많아서였기 때문인 게 더 알맞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그만 눈물을 찔끔 빼고 말았다. 아직 서툰 실력으로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나열을 할 때 바로 앞에 사람이 대 놓고 빈정대면서 아주 하루종일 걸리겠다며 불평을 쏟아내듯 뭐 하냐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며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그만 주눅이 들면서 얼어 버리고 말았다.

 그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다른 선임이 하던 일에서 나를 데리고 가서 다른 일을 시켰다. 말로는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면서 하는 거였다고 하고 나도 신입인 만큼 배우는 입장에서 이거 저거 할 필요는 있는 게 맞았다. 그런데 자리를 옮겨 설명을 듣는 순간부터 갑자기 뒤늦게 파도가 몰려오듯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냥 울고 말았다.

 모른 척한 건지 보이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거기에 큰 반응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은 울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도록 눈을 내리깐 채 대답을 했고 목소리 같은 게 떨리지 않도록 해서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후 하게 된 일에서, 다른 분이 내게 잘 대해주시며 잘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시긴 했지만 신입이니까 으레 해주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그 후에도 왔다 갔다 거리며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날 하필이면 평소와 다르게 짧은 양말을 신고 와서 인지 장화가 맨살에 닿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쓸려서 무척 아팠다. 하지만 여분의 양말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여분의 양말 같은 것은 없을 것이며 일은 계속해야 하니 그대로 계속 일을 했다. 대신에 고통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어서 버거웠다.


 아픔을 참고 일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얼얼하고 또 무거웠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하며 출구 쪽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는데 아까 나열을 제대로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아픔 때문에 둔해진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퇴근 후 가로질러 지나가야 했던 식당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혼자 마시던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물을 마시고 있다가 내가 지나갈 때쯤 갑자기 대뜸 작게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일을 못한다고 중얼댔다.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못 마땅했던 걸까. 하지만 너무 악의적이었다. 나는 애써 그런 말을 떨치려 했지만 어쩌면 내가 숙달되지 전까지는 또 비슷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때엔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집에 도착한 후에 씻고 나와서 통증이 있던 발목 부근은 보았다.

퇴근 후 보니 쓸림이 심해 짓물렀다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짓물러 있었고 상처를 봐서인지 더 아렸다. 하지만 그보다 일주일차인 나에게 냉담하고 못되게 구는 사람들에 의해 마음이 더 쓰라렸다. 내가 저런 사람들을 견디며 계속 일할 수 있을까 하며 걱정스럽고 몸과 마음의 아픔 때문에 서러웠다.


 7일 차의 밤은 평소처럼 희망이나 긍정, 더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잠드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버거운 기분으로 불편하게 잠에 들었다.


 일을 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다치기도 하고  마음이 생각보다 많이 상해서 걱정과 고민이 가득한 채 다음 날을 맞이했다. 여전히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착잡했는데, 잘 못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불려 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날들이 며칠 지속되자 많이 옅어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행히 심한 질책을 하지 않고 친절하고 아낌없이 잘해주던 다른 사람들 덕분이었다. 혼자서 옮기기 힘든 수레 같은 걸 자기 일을 하다 말고 와서 밀어준다던가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봐준다던가 하면서 잘할 때는 아낌없이 칭찬도 해주었던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수의 몇몇 사람들 때문에 생각보다 이르게 퇴사 위기를 겪었지만 또 대비되게 좋은 사람들로 인해 금방 관두지 않고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몸이 힘든 일은 오히려 신체적인 것보다 사람으로 인해 지속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확실히 크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3일 뒤, 처음으로 아홉 시까지 특근을 하였다. 시간으로만 보면 평소보다 2시간 더 한 것인데 쌓인 피로가 많지 않았고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생각보다 덜 피곤했다. 그리고 9시까지 일을 하니까 회사에서 점심처럼 저녁도 주면서 30분의 시간을 주면서 점심만큼은 아니어도 쉴 수 있었다. 9시 특근으로

시간이 추가되면서 오늘 일당은 11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루를 꼬박 일에 바치긴 했어도 꽤 큰 액수였다. 아직 내가 내 능력으로 크게 버는 돈이 없어서인지 금액만 보면, 굉장히 커 보이기도 했다.


 비록 일을 나가게 됨으로써 더 이상 마음껏 충분히 쓸 수 없는 개인 시간에 대해서는 아쉬워했고 여전히 아쉽지만,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버는 지금이 더 좋은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어디 가서 11만 원 돈을, 그리고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빚을 갚기도 해야 하고 생활을 유지하고 필요한 물건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내 개인시간을 포기하는 대가로 적지 않은 돈을 받는 게 훨씬 나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래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면서 돈을 갚아나가고 그래서 나가는 돈이 줄어들어, 적은 돈으로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해지거나 그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면 매일같이 이어지고 하루를 꼬박 매이게 되는 노동보다는 글과 책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9시 특근을 마치고서 통근버스를 타고 내린 다음, 깜깜한 밤에 집까지 걸어가는 20분가량 했던 돈과 시간에 대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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