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의 퇴사, 실업급여 수급, 현 직장의 입사까지 한꺼번에 존재한 여러모로 공사다망했던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찾아와 추운 겨울이 지나가니 어느새 입사한 지 6개월이 넘어 있었다.
우려가 무색하게 6개월이 지났음에도 정직원에 대한 제의는 일절 없었다. 괜한 걱정을 했었나 싶어 안심이 되면서도 혹시 전환이 안 될 수도 있을까 싶어 작은 걱정이 또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은 너무 이른 시기이기에 잠잠한 지금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직장생활과 더불어 채무생활을 한다고 해도 나도 그 외의 내 생활과 주변의 사람들과의 사적인 일들은 있는 법이었다.
입사한 해였던 작년 그리고 올해 초인 겨울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사적인 부분과 사람들에 더 집중하고 직장생활만 성실히 하면서 빚에 대해선 많이 의식하지 않았기도 했다.
사람들과 함께 즐거웠고 상대의 마음과 관계에 더 신경을 썼고 소소하게 꿈꾸고 행복해하느라 바빴다. 메마르다시피 살아왔고 지긋지긋하게 시달려온 채무를 얼마간만이라도 잊고 행복하고 싶어서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일정 깊이 이상 깊어진 몇몇 사람들의 좋지 모습을 보게 되고 인간적으로 실망스러운 일도 겪고 나 역시 열악한 경제 상태로 인한 한계가 뒤섞여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아졌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지고 어느새 찾아온 봄날도 흘러가며 1년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고 흐릿했던 현실도 선명해졌다.
마음 아프고 힘든 인간관계에서는 얼마간이라도 멀어지고 다시 현실에 집중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니 등한시했던 내 상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고 월급과 하고 있는 것 외에 추가 수익 및 이력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추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쉽게 말해 돈 버는 것 외에 자기 계발을 하고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운이 좋다면 커리어가 되거나 최소한 보탬이 될 것들 말이다.
비록 아무 상관없는 일을 돈 때문에 하고 있는 중이긴 해도 언제나 마음속에는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관련된 이력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공모전 같은 것들 말이다. 공모전의 경우 상금도 주니 지금 상황에서 좋은 성과만 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사실 3월쯤부터 공모전은 준비하고 있었다. 그 쯤에 부산에서 올라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고 고된 생산직 일로 힘들어하던20대 중반의 회사 동생에게 커피도 자주 사주고 챙겨주고 있었는데 그 동생의 동거인으로부터 데리고 사업해야 하니 접근하지 말라며 문자를 통한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협박 범죄로 교도소에도 다녀온 전과자라서 그런지 온갖 음해나 사실을 왜곡해 몰아가면서도 법망은 피해 가는 교묘한 가해를 일삼았고 신고조차 어렵게 자기 핸드폰이 아닌 동생의 계정과 핸드폰으로 비열한 개짓거리를 일삼은 것이다.
그 동생도 역시 맞서 싸울 생각은 없이 책임 없이 회피하는 상당히 비겁한 모습들과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한 동거인을 자길 걱정해서 그런 거라는 식으로 옹호하는 걸 보고 공범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완전히 손절을 하고 씁쓸하게도 관계는 파탄이 났다. 너무나 큰 배신감에 용서가 되질 않아서였다.
그런 일을 겪으니 당연히 공모전에도 큰 지장이 생겨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물론 결과는 5월 2일쯤 나오는 것이었지만 솔직히 내가 봐도 수상은 어려울 수준이었다.
공모전은 그렇다 쳐도 직장 내에서 계속 불편하게마주치니까 당연하게 하는 일조차 괴롭고 힘들었다. 예쁘게 마음을 주고받기는커녕 마음을 주며 노력했음에도 철저히 짓밟혔기에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과 함께 상당히 우울하기도 했다.
그 우울함과 치밀어 오르는 화, 마음속 고통에 빠져서 내 채무생활에 까지 무책임해지지 않도록 많이 애썼다.그 기점으로 좀 더 나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책임 없는 피해를 감당하고 수습해야 하는 건 나였다.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것들에 닥치는 대로 손도 대고 새롭게 도전도 해봤다.
하나는 퇴근 후에 시간은 짧지만 힘든 고강도 전신 운동이었고 4월 21일쯤에는 지금 쓰고 있는 이 채무 생활 이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생산적인 편의 활동과 노력도 많이 했지만 한 번씩 그저 즐기기만 하는 시간도 보냈다. 어떤 매력 있고 재능 많은 유튜버에 빠져 영상을 많이 보게 된것이다.
애써도 오랫동안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여기에 몸도 아프고 이상해 검사도 받았다. 심신이 모두 아프다 보니 우울감이 한층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게는우울하기도 하고 배신당할 일 없고 실망할 일도 없는, 안심하고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해서 보는 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람에게 다친 상처를 사람으로, 불완전해도 좋아하는 행위로 치유하려 했던 것이다.
하루하루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4월 30일, 4월의 마지막날은 평소보다는 좀 더 기분 좋게 퇴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다음날이 바로 5월 1일, 즉 근로자의 날이라 출근을 안 해도 됐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틀 가량은 더 출근해야만 하지만 그래도 내일만큼은 잠시라도 생각 안 나게 신경 쓰이는 것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에 조금 즐거울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에 오니, 먼 지방에서 객지생활로 일을 하셔서 평소에 평일에는 볼 수 없던 아버지도 근로자의 날로 인해 올라오셔서 계셨다. 다만 내가 퇴근을 했을 때까지도 엄마가 집에 없어서인지 상당히 언짢아 보였다.
아버지는 잠시 밖에 나가셨고 그동안 나는 씻고 난 뒤 운동까지 하고 나서 시간을 보자 저녁 8시가 되었다. 내일은 출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휴일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10시까지는 간간이 친구에게 운동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권유하는 이야기도 하며 평소보다 조금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그런데 쉬고 있는 방의 닫힌 문 너머로 갑자기 긴장감이 감도는 큰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부터 벌써 20년 넘게 반복되어 온 부모님의 싸움이었다. 아무래도 엄마의 뒤늦은 귀가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언짢았던 아버지의 감정이 폭발하게 된 것 같았다.
싸움의 원인은 언제나 엄마에게 있었고, 그내용은경제관념이 없고 외벌이를 하는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에 대한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위태로운 앞 날에 관한 막막한 걱정과 처지 등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이 크게 폭발하는 것이었다.
또 한바탕을 하고 이제 겨우 집에서나마 쉬나 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똑같은 문제로 싸우고 있는 부모님에게 나 역시 지긋지긋함을 느끼고 화가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언제까지 맨날 이럴 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부순 물건들과 깨진 유리 파편들을 치웠다.
날카롭게 쪼개진 식탁 의자 다리 같은 것들을 내다 버리고 방으로 들어오니 참으로 참담한 기분이 몰려와 눈물이 났다.
내가 모든 이야기를 하고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알지만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조금씩 도와주고 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내 처지로 인해 당분간은 도와주기 힘들 것 같다는 상황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내 처지와 상황에 대해서 너무나 비참하고 좌절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티가 날까 봐, 그리고 괜히 내 짐을 얹어주기 싫어서 일부러 더욱 말투를 가볍게 하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정말 너무나 안 좋았고 답답했다. 그걸 충분히 아는 친구라서 그런지 내 힘든 마음과 기분을 건드리지 않고 잘 헤아려 대답해 준 친구에게 작은 안도감이라도 느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연락을 마무리 짓고 마음과 정을 나누고 사는 것도 좋지만 그 역시 어느 정도 인간성을 갖춘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과 당분간만이라도 어설프고 피상적인 사람들에게 마음과 시간을 쏟을 바에야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고 다짐하며 복잡한 심정으로 겨우 잠에 들었다.
휴일의 시작부터 시끄럽고 괴로움만 얹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밝은 아침은 찾아왔고 정신없고 고통스러운 나날 중에 잠시 선물 같은 휴식이니 어제의 여파에 빠져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집에서 푹 쉬는 걸 좋아하는 나일지라도 원래 계획했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미루지 않기 위해 기준전환을 위한 외출을 했다. 근로자의 날은 나 같은 고용자, 근로자들에게나 쉬는 날이다 보니 다른 가게 같은 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해서 돌아다니기도 좋았다.
또 일 때문에 관리하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던 기타도 줄을 갈아야만 했기 때문에 미리 알아보고 약속을 잡아 나가야만 하는 일정을 미리 만들어 두었기도 했다.
그게 가장 주요한 일정이긴 했지만 요즘하고 있는 운동한 결과를 알고 싶었고 더 열심히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 보건소에 들렀다.
인바디도 측정해 본 것인데 타 지역이라 돈은 조금 내야 했지만 지방량과 근육량 그리고 얼마나 더 체중 조절을 해야 하는지 등이 상세히 나와 좋았다.
보건소를 나와 도착한 매장에 기타를 맡기고 집에 오는 길에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여유도 생겨서인지 평소에 궁금해서 늘 가보고 싶던 빵집에서 들러서 빵을 사고 집에 먹어보기도 했다.
할 일을 다하고 먹는 빵인지, 어제 유독 더 많이 힘들었어서 그런지 괜히 더 맛있게 느껴지고 그랬다.
내일 다시 출근하고 또 시달리는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고 해도 남은 시간만이라도 잘 보내자며 느긋하고 소소한 개인 시간을 보내다가 휴일을 잘 마무리 지었다.
혹독한 추위가 있고 많이 추웠던 겨울은 오히려 활기차고 따뜻하고 행복함이 넘쳤던 것에 반해 정작 따뜻하다 못해 점점 더워지는 봄날이 내게는 우울하고 시리고 괴로움이 넘쳐 잔인한 계절이었다.
그 계절 속에서 그래도 무책임하게 자빠져 있지 않으려고 긍정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참 부단하게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