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존재함에 대하여

위치, 자리가 아닌 존재의 무게

by 무 한소

한 공간 시간 안의 존재에 대하여,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존재함에 대하여.

시간은 멈추기도 하고 흐르기도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각자 체감하는 공간에 대한 시간의 밀도는 더욱 다르게 느껴진다.


4인 가구에서 집이라는 공간을 이루는 철골과 벽면 지붕 그 안의 호흡, 각각의 객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마찰력만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습관과 같은 관성에 의해 부딪히고 넘어졌을 때 서로 잡아줄 수는 있는가.




끈끈하다고 치부했고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랑이 사라져 버렸어. 짧지만 욱하고 분출되어 자신을 괴롭혀 왔던 분노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어. 조금 긴 여운으로 남았던 무기력함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대부분의 감정은 변해 버렸어. 훼손된 것일까. 잠시 숨을 죽이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걸까. 좌표평면에 좌표로 옮겨 그렸던 그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휘둘렸던 시간을 지나 더 이상 서로를 향하여 하나의 감정으로 남아있지 않고 감정은 분리되었어. 아니, 감정을 분리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야. 꽤나 긴 시간 동안 두려움 때문에 감정을 분리할 수 없었어. 그곳은 마치 터널을 지날 때 어둠이라는 특별한 공간 때문인지 느껴지는 불안함이었어. 멍한 소리의 울림과 머리를 먹먹하게 만드는 터널을 지날 때만 나타나는 어지러움은 불안함이 원인 거처럼 감정 분리가 무척이나 어려웠어. 그래서 타자의 분노를 나의 자아가 느끼는 내면인 거처럼 비슷한 형태로 치닿았어. 이후 아이들의 불안은 그들이 느끼기 이전에 자신(나)이 먼저 겪어야 하는 경험이 되어 버렸지.




1호가 거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뿜어져 나오는 공기는 무겁고 침묵은 조금 더 탁하고 짓눌린 침묵을 불러들인다. 1호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소리를 내고 움직임과 소리를 통해 자신의 현재 상태나 영역을 보여준다. 자신이 잡고서 놓지 못하는 그 자리와 움직임의 반경을 통해 존재를 보여준다. 드러낸다. 그는 표출하며 소통한다.


2호는 공부방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1호와 같은 공간에서 둘은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숨결도 의식도 손짓, 발짓까지도 마치 새로운 차원의 삶에서 서로 부딪히거나 만날 수 없는 거처럼. 2호는 자신의 공간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조용히 침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누구도 서로에게 적극적인 사람은 없다. 1호와 2호가 터득한 삶의 방식인 서로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최선의 몸부림과 몸짓이 느껴진다.


3호는 1호와 2호가 만들어 낸 분위기 그 프레임에 등을 지고 서있다. 그래서 좀처럼 흐름을 읽을 수 없다. 때론 가면을 쓰고 '척'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3호의 삶의 태도는 까다롭지만 복잡함을 그 속에서 찾아낸 질서로 유연히 살아간다. 힘없는 단조로움은 자신만의 노선을 깔아서 다시 적당한 즐거움을 찾아낸다. 껍데기로 씌워진 가정의 공간 '집'이라는 것에 애착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진실이라고 가려진 현상을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호가 갇힌 자신의 세계에서 프레임을 뚫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1호와 2호 자신은 세월의 깊은 진통 후에도 인내가 필요했고 힘이 들었지만 3호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어설픈 가능성을 신뢰라고 착각하고 기억을 돌아본다.


4호의 자취나 흔적이 없었던 그 공간에 그녀가 당당하게 입성했다. 정확하게는 우아하게 침범했다. 4호는 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온몸으로 열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4호도 역시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에 애착이 많아서인지 다른 영역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 넘어서는 4호의 도발에서 에너지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 2, 3, 4호 모두가 함께 이루고 만들어 가는 집이라는 공간은 존재하는 걸까? 다른 시간을 살든 같은 시간을 사는 같은 공간에 그들은 각자의 존재함을 알고 느끼는 걸까. 좌표평면에 옮겨진 그들은 자신의 좌표에서 되도록이면 평행이동, 대칭이동을 하지 않는다. 자리 잡은 그곳이 처음부터 자신의 영역이었던 거처럼. 3, 4호의 존재함은 1호와 2호가 만든 고집스러움의 깊이와는 다르겠지만 색과 빛의 다름으로 이곳저곳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쩌면 4호가 가장 유연하게 감정을 잘 움직이며 흔들림이 없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감정에 휘둘리며 지배를 받는다는 건 분리되지 못한 감정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타자의 감정. 무조건적인 감정의 차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독립을 말한다.


2호는 외부에서 오는 수도 없는 자극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차단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수없이 많은 흔적이 남긴 상처를 겪고 잘 디딘 후에야 그것이 기억이나 감정의 차단이 아닌 감정 분리라는 것을 이해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분리한 이후에 우리의 시선에 보이는 존재는 적당한 무게감과 가치로 다가온다. 감정과 의식에서의 진정한 독립인 감정 분리가 되어야만 마침내 찾아오는 자유로운 시선이다.



그림 by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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