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은 오전의 풍경 1+1=1, 2+1=1

경계의 해체. 자기 분열 다시, 시작하다.

by 무 한소

지금 나는 스스로 정해둔 경계에 있다. 경계의 주변에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계 안에서는 치열하다. 일요일 오전은 여러 소리에 노출되어 있다. 치열하게 소리 내며 행동으로 드러낸다. 치열하다고만 하기엔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한가하기만 하다. 하늘과 맞닿은 공기는 여유로움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신했다. 경계를 벗어난 다른 세상은 내가 존재하는 세상의 공기와는 무게도 압력도 다르다.


다만 그 상반된 일상의 풍경이 그림처럼 느껴질 뿐이다. 무료하고 한가한 일상처럼 보이는 일요일 늦은 오전의 풍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마음처럼 위태하다. 건물 곳곳에서 숨기듯 눌러왔던 경박한, 처절한 소리가 슬픔으로 외벽을 뚫고 나온다. 평온함이 선사되고 묵직한 정적이 함께 딸려온다. 이전에 느꼈던 쿵쿵대며 여기저기 터지는 폭죽이 장식해 주는 피날레보다는 잔잔하지만 움직임이 없는듯한 정체를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오늘과 같은 일요일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움직임이다. 의식과 생각, 실천까지도 느린 움직임이다. 잠시 머무른 풍경 뒤의 숨어있는 나의 울적함이 애틋하고 좋아서 이 감정을 놓칠까 순간에 빠져서 잠시 침잠된 깊이의 우울감으로부터 애써 뛰어오르지 않으려 다.




창밖으로 보이는 우울한 회색의 주변 분위기, 잿빛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아니 에르노의 책, 마시다 멈추기를 반복한 식어버린 농도 짙은 커피, 조금 먼 거실 저편에서 들려오는 슬픔을 토해내는 발라더의 잔잔한 호소력이 모여 눈물을 만들어 낸다. 볼과 코끝을 조용히 타고 흘러서 제 역할을 다한 거처럼 방울방울 맺힌다. 그러다 다시 뭉쳤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1+1=2가 아니라 1+1=1, 1+2=3이 아니라 1+2=1, 2+3=1이 되어 수학에서의 공리를 비웃는다. 1+1의 개념에서는 반드시 단서가 필요하다. 양과 밀도 부피의 개념이 일치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모순이 따른다. 화학적 변화가 늘 일어나기에. 어쨌든,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다시 뭉친 그것으로 슬픔 안에 깔린 사랑과 신념, 믿음과 가치가 드러난다.




삶은 모순적이게도 유의 세계 안에서 무한하며 무의 세계 안에서 유한하다. 죽음이라는 명료한 단절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이 거듭된 문화나 역사 안의 사건과 인물을 통해서 보이는 거처럼 영속된 삶과 그들의 반복된 의식을 보여준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의 관계 덕분인지 때문인지 정서적 아픔과 사랑 속에 성장했다. 다만 나와 아빠가 함께한 그 시간, 세계에서만. 이제는 아빠의 죽음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가끔 추억이나 악몽과 같은 기억으로 여전히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지금의 세계 안에, 아빠와 그 의식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 엄마는 나를 지켜주는 방어벽이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딛고 나갈 수 있도록 지켜준 담쟁이덩굴이었다.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그 끈은 어디까지 또 얼마나 이어질지.


타자와 나는 서로를 비추는 각자의 거울이며 경계밖에 있는 다른 세계이다. 하지만 경계 바깥세상이 무한한 동경이나 그리움만으로 자리를 잡는 건 아니다. 그저 망연히 바라보던 그 세상은 지금 내가 실존해 있는 이곳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그토록 그곳으로 한 발 내딛기를 원하는 걸까? 내가 부모님을 가슴 가득 담았던 시간이 지났다. 이후 편안하게 고개를 돌려 시선에 담아 두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딸아이는 나를 그 자리에 앉혀둔다. 혹시,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뛰쳐나갈까 봐. 손끝에 잡히는 옷자락과 모유를 고집하고 끊지 못하는 철이 안 든 어른처럼 아픈 젖꼭지를 물고 마지막 힘을 내며 버티고 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서도 의지가 보인다. 그것으로 내 의무는 규정된다.




태양이 반대편 하늘로 넘어가려고 대칭을 찾을 때도 여러 색깔의 상실된 감정이 담긴 일요일 늦은 오전의 풍경은 여전히 마음을 담백하게 위로해 주는 척한다. 나올 수 없는 슬픔으로 침잠한 그곳에 여러 감정의 총체인 슬픔의 여운이 공기와 머물러 있다. 슬픔은 잿빛의 모호한 형상으로 학교 건물과 운동장 사이를 빠져나간다. 후련하지는 않지만 알고 있다는 듯 깊은숨이 마음을 대신한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선이 지워지지만 경계의 해체는 동요되지 않는다. 나에게서 의식이 다른, 자신이 빠져나오고 통증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분열일 뿐이다.



분열된 자아와 형상의 몸은 한꺼번에 의식의 경계를 넘나 든다. 경계를 벗어나 바라보니 육체가 꿈틀댄다. 자기 분열 또한 다른 경계의 해체이다. 머물렀다. 다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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