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 한소 May 10. 2024

지극히 사적인 토론

잃어버린 블루투스 이어폰을 찾아라!

수애는 동아리 등록 인원을 확인하며 미소가 맴돌기를 잠시 다시 머리를 짜 내야 했다. 모집 인원은 계획한 만큼 모였는지. 또, 앞으로의 동아리에 대해 멤버와 장소 동아리를 끌고 갈 주제에 대해 다시 정리가 필요다.


동아리 인원을 확인하던 중 수애는 최종으로 마감 후 모집된 인원을 전달받으며 아이들 나이와 얼굴을 확인했고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호기로움을 자극하는 첫 논제 또는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지난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렘보다 앞선 두려움이 자신을 괴롭히기는 아이들과의 만남에 직면한 지금 순간도 마찬가지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기심 외에 다른 느낌인 싱글벙글의 에너지가 있었다. 첫인사를 나누려고 아이들 에너지와 태도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논제가 떠올랐고 아이들의 생각과 의견이 궁금했다. 음...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각자 모임에서 풀어야 할 자신의 서사 안에 녹아있는 마음과 나눌 논제에 대해 던질 것이다. 수애는 그렇게 하리라 다짐하고 첫인사 나누기를 조금 더 천천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먼저 논제를 던졌다.

 

자, 샘이 인사를 나누기 전에 먼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논제가 있어. 시작할게. 주말 오전 공원에서 산책이나 (길을 걷던 중) 운동을 하던 중 작은 무선 이어폰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험이 대부분 있으리라. 또는 목걸이, 팔찌 등 액세서리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을 좀 더 단축해서 그것을 찾으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움직임으로 다시 이전 기억을 쫓을 것인가. 분실물을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 찾을 것인가에 대해 나눠보려고 하는데...

질문을 하며 덧붙였다. 그 장소가 상당히 넓다고 가정한다면 각자 더 생각하거나 의견을 낼 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고.  친구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내며 기다리고 있으리라. 수애는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궁금증으로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가장 어리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빛났던 규선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발언권을 넘기며 수애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규선이는 멤버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친구이며 중학교 3학년이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등교하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학교라는 공간, 정체된 그곳 생활 곳곳에서 그녀의 호기를 자극하는 것은 많았다. 학교 각 학년이 위치한 층과 층 사이마다 계단이 존재한다. 그때 계단의 층과 개수는 어떤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각 층에 위치한 교실의 배치도 수와 관계가 있는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규선이를 자극한 건 그런 것들이었다. 친구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등 그녀는 관계를 힘들어하며 그 부담대신 자신이 관심 있고 잘할 수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규선이 관계가 힘들었던 건 그녀가 어릴 적부터 혼자 보낸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신들의 일이 소중했고 업과 관련된 스케줄이 모든 일정의 중심이었다. 다행히도 규선이는 착한 딸이었다. 부모의 무관심에도 성적은 항상 최상위였고 관계에 대해서는 당연히 스스로 잘해 나가리라 믿고 있었다. 부모님은 긴 시간 홀로 아픔을 견뎌낸 그녀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를 외면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된 현재 상황도 사실 잘 몰랐다. 최근 그녀가 등교를 거부하면서 규선이의 관계가 부모님에게도 큰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놀랐고 당황했는지 모른다. 전혀 몰랐기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황당함으로 미안한 마음보다 힘듦이 더 컸다. 규선이가 수학 토론 동아리를 신청하며 부모님은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토론은 고집스럽고, 방황하는 딸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되는 빛 같은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도 수학 토론 동아리에 규선이 이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녀가 앞으로 나가며 눈을 반짝인다. 앞에 나가 언니 오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보드판 위 허공에 손을 움직이더니 몇 가지 사례를 제안했다. 규선이는 언니 오빠들을 바라보며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보드판에 그림을 그리며 꼭 다물었던 입을 떼기 시작했다.

"지금 제가 보이려는 건 무게 중심입니다. 블루투스 신호가 끊기는 세지점에 점을 찍고 그림으로 그려 보겠습니다. 그 세지점을 연결하면 삼각형이 되고요. 그때 만들어진 삼각형의 무게 중심을 구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는 것처럼 무게 중심은 각 꼭지각으로부터 세 변의 중점을 연결한 중선들의 교점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무게 중심입니다." 규선이가 무게 중심을 보드마카로 표시하며 강조하는데... 뭔가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때, 민하가 갑자기 손을 든다. 뭔가 질문이 있는 듯하다. 수애는 규선이에게 질문을 받아도 되는지 눈짓으로 묻는다.  규선이도 잠시 생각 정리가 필요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수애는 민하를 보고 체크하며 발언권을 주었다. 민하가 웃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무게 중심은 중선을 꼭지각으로부터 2:1로 나누지만 그 길이가 같은지는 알 수 없죠." 민하가 말한 대로 무게 중심은 중선들의 교점이므로 처음 삼각형 안에 6개의 삼각형을 나눠 그릴 수 있는데 그 넓이는 6개의 삼각형 모두 같다. 그리고 꼭지각으로부터 중선을 2:1로 나눌 수 있다. 비가 같을 뿐이지 그 길이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지점을 찾는데 다시 시간이 걸린다. 갑자기 규선이가 활기찬 표정으로 신이 나서 말한다. 언니 오빠들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흥미롭게 규선이의 얘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처음 얘기와 마찬가지로 블루투스 신호음이 끊기는 세지점을 첫 번째 조건과 같이 찾습니다. 또 그 세지점을 연결해 삼각형을 그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삼각형의 외심을 찾습니다. 외심은 삼각형 세 변의 수직 이등분선들의 교점입니다. 외심의 성질은 각 꼭지각에서 외심에 이르는 거리가 같죠. 바로 그 지점을 활용하는 겁니다."


수애는 규선이의 생각, 민하의 적절한 피드백에 감탄했고 그들의 창의적 사고, 논리를 존중했다. 규선이가 찾아낸 세 지점의 외심을 활용하면 어버린 블루투스를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것만이 정답이며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까부터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고 있던 영성이가 수애와 눈을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든다.

이전 02화 동아리의 시작_ 문을 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