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 보상의 의미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by 뉴욕 산재변호사

산재보험 사건에서는 보상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최대’ 보상이 아닌, 여러 변수에 의해 주어지는 보상의 범위와 조건 내에서 ‘최적’의 보상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똑같은 사건이란 있을 수가 없고, 사건의 팩트가 다른만큼 보상의 액수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제가 아무리 최적 보상의 개념을 제 의뢰인에게 열심히 설명해 드린다 해도 늘 부딪히는 문제는 그 최적의 개념에 대해 저와 의뢰인이 입장을 달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만 불이 모든 조건 내에서 최적 보상이라고 설명드려도, 제 의뢰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적 보상은 적어도 2만 불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인 것이지요. 제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근본적으로 우리 언어 해상도의 한계가 변호사-의뢰인 사이의 보상 문제에 대한 이견을 갖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뇌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지 작용은 결국 외부 자극에 대한 뇌의 해석에 의한 것인데, 조금씩 다른 뇌를 갖고 있는 만큼 조금씩 다른 계산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희다고 믿고 있는 ‘흰색’조차도 사실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여러 가지 흰색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백조의 깃털 색깔도 흰색이라고 말하고, 구름 색깔도 흰색이라고 말하며, 겨울철 내리는 눈도 흰색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흰색’으로 통칭하는 이들 흰색이 사실 다 같은 흰색은 아닙니다. 백조의 깃털을 가만 보면 노란색도 보이고 회색도 보이고 사실 약간 얼룩덜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구름도 완전한 흰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회색빛이 감도는 경우가 많지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기상상태에 따라 오염물질이 섞일 경우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흰색 눈이 내리고는 합니다. 최근 세상에서 가장 하얀색이 최근에 탄생하여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퍼듀 대학 연구팀이 만든 이 흰색으로 만든 울트라 화이트 페인트는 태양광의 98.1%를 반사하며 동시에 적외선 열을 반사시킨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른 백조의 깃털, 구름, 눈, 페인트 색을 모두 흰색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여러 가지 종류의 흰색을 우리가 흰색이라고 이름 붙이고 아무런 문제 없이 의사소통하며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제 눈에 보이고, 제가 기억할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는 이 흰색을 완벽하게 구별하여 표현할 만한 단어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백조의 깃털, 구름, 눈, 페인트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한 단어로서 흰색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비록 흰색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사람마다 뇌가 다르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도 각각의 흰색이 분명히 저하고 다르게 보일 텐데요. 그런데 그 색깔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말이 없으니까, 여러분 역시 흰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백조의 하얀 깃털, 흰 구름, 흰 눈, 흰색 페인트라고 하면 여러분도 그렇게 공감하는 것입니다.


현대 뇌과학이 규명한 것 중 하나가 “언어의 해상도가 인식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폭넓게 인식하고, 높은 해상도로 구별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백조의 깃털, 구름, 눈, 페인트의 색깔을 모두 구별할 수 있는데), 일대일로 대응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뭉뚱그린 하나의 단어로 (예를 들어, 흰색)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같은 말, 동일한 단어가 오간다 해도 각자 생각하는 그 말의 의미가 다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언어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한계 때문입니다. 일찍이 노자도덕경에서는 이러한 언어 자체가 갖는 해상도의 한계를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는 언어 개념 속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 개념화된 도는 항상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도의 실상을 나타내지 못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보상 문제에 있어 변호사로서 생각하는 ‘최적’과 의뢰인이 생각하는 ‘최적’ 또한 이러한 언어 해상도의 한계 때문에 차이가 일어납니다. 변호사는 뉴욕의 산재보험법이라는 틀 내에서의 최적을 말하는 반면, 의뢰인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 한계상황, 부상에 대한 주관적 통증,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근거로 한 최적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최적’ 보상에 대한 이러한 해석 차이에도 불구, 양쪽의 ‘최적’ 개념 사이의 간극을 좁힘으로써 의뢰인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여전히 변호사의 소임임은 당연합니다.

keyword
이전 17화최후 통첩 게임